알라딘서재

안뇽뇽마님의 서재
  • 엄마보다 큰 세상을 너에게 줄게
  • 이수련
  • 13,500원 (10%750)
  • 2024-05-31
  • : 959

"건강한 분리를 행하세요"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서술한, 엄마의 역할 안내서

<엄마보다 큰 세상을 너에게 줄게>는 제목이나 표지 일러스트로 보면 여느 친숙한 육아 에세이처럼 보이지만, 양육서다. 양육에 관한 지침들, 즉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엄마가 해야할 역할을 알려주는데, 지침만을 전달하기보다 그 이유를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서술한다. 수수께끼같이 알쏭달쏭한 맥락을 이해하며 따라가는 과정에서 신선한 느낌표와 더불어 깊은 물음표를 유발하기도 했다. 훌훌 넘겨도 대충 이해되는 양육서가 아니라, 좀 꼼꼼하게 해석해야 내면화가 될 법하다.

4년전 이수련 박사의 <잃어버리지 못하는 아이들> 책을 통한 사유의 자극이 강렬했었다. 그만큼 이번 <엄마보다 큰 세상을 너에게 줄게> 신간 소식이 꽤 반가웠다. 책의 결은 전작과 비슷하지 않을까 짐작했던대로 핵심적인 메세지의 방향은 같다. 덕분에 희미해져가는 통찰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엄마가 아이에게 주어야 하는 진정한 사랑이란, 엄마로부터 떠나게 하여 더 큰 세상(사회)으로 안내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는 곧 엄마는 아이에게서 무언가를 박탈해야 하고, 종국에는 박탈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분리 과정의 필요를 납득하고 현명하게 실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안내서다.

아이를 세상으로 연결해주는 방법은

엄마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주는 것이다

만족을 원하는 충동과 사랑을 확인하고픈 아이의 요구는 끝없기 마련이다. 이 악순환을 멈추는 방법은 엄마가 가진 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다. 요술방망이 같던 엄마가 알고보니 '가지 않은 것이 있는 사람(=무언가를 꿈꾸고 바라는 사람)'이고, 엄마가 자신에게 주는 것은 원래 엄마의 것이 아니라 사회의 것(엄마 역시 사회 문화적인 영향을 받으며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사람)임을 알게 될 때, 비로소 아이는 세상에 대한 관심에 눈을 뜨게 된다. 엄마가 주는 것으로 자기의 만족을 채우기를 포기하고 밖에서 대상을 구하는 것이다.

삶이 지속되면서 찾아올 우연한 기회나 놀라움의 순간들을 궁금해하고 바라는 엄마. 자기의 고유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엄마. 바로 그런 엄마가 가지지 않은 것이 있는 엄마입니다. ···(중략)···그래서 우리 엄마는 세상에서 유일한 바로 그 엄마이고, 다른 엄마와 같은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지요.

···(중략)···

아이가 가지지 않은 것이 있기를, 아이가 무언가 결핍된 사람으로 자라기를, 무엇이 올지 아직 모르는 그 자리를 비워 두고 조금씩 채워 가기를 말이지요. 이를 통해 아이가 만남의 기쁨을, 지식이나 일의 보람이며 또 다른 의미를 경험하기를. 살면서 찾아올 어떤 고난이나 역경에서 삶의 또 다른 면모를 찾기를, 그 속에서 사람들과 따뜻한 연대를 누리기를. 그래서 결국 그 누구도 아닌 내 아이가 되기를, 유일하고 소중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엄마의 사랑은 그런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엄마보다 큰 세상을 너에게 줄게> 80p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학생이야'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일도, 생애 최초로 만나 나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엄마의 '말'을 통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에게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 쓰일 지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환경이 같지 않거나 관심사가 달라도 같은 반이라는 이유로 다른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요. 아이들이 그 시간을 지루하거나 괴롭다고 여기지 않으려면 부모가 먼저 그렇게 다른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의 가치를 인정해야 합니다. 부모가 세상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본다면 아이들이 궁금해하면서 질문하겠지요.

"엄마 아빠는 왜 세상에 관심을 갖는 거죠? 거기서 뭘 원하는 거죠?"

"엄마 아빠가 세상에서 찾는 것을 가지려면 나는 누가 되어야 하나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나요?"

그렇게 아이들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세상에서, 사회에서 찾을 수 있게 됩니다.

<엄마보다 큰 세상을 너에게 줄게>154p

엄마 너머 세상에서 필요한 것을 찾는 아이를

지지해 줄 토대는

'규칙'의 안내와 '금지'

아이들의 성장에서 금지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유해한 대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이지만, 아이로하여금 '자신이 모른다'는 인지를 만들기 위해서다. 금지는 매우 일찍 시작되어야 하는데, 그 최초의 금지는 몸의 만족(성)에 대한 금지다. 그 시작은 금지의 공간을 아는 일이다. 밤 시간 동안 부모 방의 출입은 금지되어야 하는 곳이고, 다시 말해 엄마와 아이가 잠자리를 공유해서는 안된다는 것과 같다. 성인의 성을 금지한다는 명목하에 아이에게 금지되는 건 현재의 엄마다. 왜냐하면 아이에게 이미 몸의 만족에 대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엄마 품에 안기거나 몸을 만지면서 얻는 따뜻한 존재감과 사랑받는 느낌 같은 기억까지 상실해야 한다. 유아기에 몸이 만족을 취하는 방식이 성인이 되었을 때 취해야 하는 방식과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유아기 몸의 만족은 몸의 특정 부분에서 집중적으로 얻어지는데 성인이 되어 타인을 사랑하고 욕망하며 인간관계를 구축하면서 이루어 내는 몸의 만족과는 전혀 다른 범주에 속한다.

만약 유아기적 만족이 중단되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면 아이는 유아기 성을 즐기는 상태로 어른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이는 자기가 이전에 알았던 만족의 경험을 잃어야 합니다. 그래야 몸의 만족과 성에 관해 모른다는 입장이 되겠지요. 성인의 성은 각 개인이 자기 마음대로 자유롭게 몸을 즐길 수 있는 게 아니라 사회적 지식과 상대방과의 소통을 통해 배워서 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성이 사회화되어야 하는 필요성 때문이지요.

<엄마보다 큰 세상을 너에게 줄게> 204p

이 8장 '금지에서 배움으로' 장에서는 아이는 유아기 동안 분리 작업을 거치며 사춘기 이전까지 몸의 만족에 관해 모르는 상태로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말한다. 좀 헷갈린다. 많은 양육서가 정서의 안정을 위해 아이와의 스킨십을 강조하지 않던가? 이 논리라면, 친밀한 스킨십의 경험과 만족을 많이 경험하고 자란 아이라면, 유아기적 만족을 추구하는 성충동이 더 심하다는 건가? 수면분리를 할 수 없이 단칸방 삶을 살아온 수많은 과거의 세대들은 어른의 성의식을 갖지 못한 채 성적 인간이 된다는 건데, 실제로 그러한가? 그렇다면 일찍부터 수면분리를 행하는 서구(특히 프랑스)에서는 일절 성적일탈이 벌어지지 않는가? 나의 해독이 부족해서일까, 성인의 성은 삶의 의미, 타인과의 관계, 세상의 다른 요소들과의 관계 속에 자리 잡아야 한다고 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유아적 성의 만족이 그러한 성인의 성을 배우는 것을 방해한다는 논리(?)가 아직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이 방을 만들어주는 시기를 좀 당겨야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여전히 모호함이 남는다. 이 파트 경우는 저자의 메세지를 명확히 전달하기에는 분량이나 설명이 다소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좀 더 이해를 보완시켜주는 추가적인 독서(특히 '라캉'과 관련된 책?)를 해야 할 것 같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후텁지근한 시간, 몇번씩 곰씹어 읽으며 이해하느라 낑낑댄 수고가 있었던 만큼 인상적인 육아서다. 이 책이 분리를 강조하는 건, 아이와 당장 정을 떼라는 말이 아닐 것이다. <엄마보다 큰 세상을 너에게 줄게>는 제목 그대로 엄마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란 아이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아이에게 엄마도 결핍과 욕망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함으로써 엄마 너머의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갖고 탐구해나갈 수 있는 능력, 그래서 스스로 온전히 자립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엄마의 레이더를 엄마 자신의 삶으로 돌릴 수 있게 하고, 먼저 세상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주면서 성숙한 부모의식을 심어주는 의미있는 책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나와 남편이 직접 지은 내 아이 이름은 "기둥이 완전하다"라는 뜻을 가진다.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 주체적으로 단단히 서 있을 수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이 이름은 내가 아이에게 '바라는' 이상향에 가장 가깝고, 마음에 든다. 아이에게도 이름의 의미를 말해주곤 한다. 그래서 책의 이 마지막 문장은 읽고 또 읽어도 코끝이 찡하다. 하지만, 슬픈 건 아니다. 그게 진짜 엄마의 행복이란 걸 아니까.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아이가 엄마를 필요로 하는 시기에 엄마의 사랑을 실행하여 시간이 흐른 미래의 어느 날, 엄마가 곁에 없어도 "엄마가 나를 사랑했구나." "당신이 내 엄마였구나"를 아이가 믿고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과거가 된 엄마의 사랑은 아이의 미래를 함께하게 되지요.

<엄마보다 큰 세상을 너에게 줄게> 234p~235p




-도서를 지원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