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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뇽뇽마님의 서재
  • 소희의 방
  • 이금이
  • 12,150원 (10%670)
  • 2021-09-10
  • : 2,992

작가님의 고백이 나의 욕망을 채웠다

<소희의 방>의 마지막 페이지, '작가의 말_개정판(310p)'을 읽다가 눈을 크게 떴다. <너도 하늘말나리야>를 따스해지는 마음으로 흥미롭게 읽은 건 분명하지만, 뭔가가...뭔가가...내 안에서도 깔끔하게 매듭지지 않아졌던 그 틈을 완벽하게 직접 정리해주시는 대목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지없는 '미르 과'였기 때문에, <너도 하늘말나리야>에서 보여진 소희의 어른스러운 의연함을 보면서, 전혀 '하늘말나리'스럽지 못한 자아로 가득했던 소녀시기의 나를 돌아보면 무안하고 부끄러웠다. 작가님은 <너도 하늘말나리야>(1999년 초판)에서 소희의 억눌린 본성을 모른 척 해온 것이 자꾸 마음에 걸렸고, 11년 만에 <소희의 방>(2010년 초판)을 세상에 내었다. 그리고 다시 11년 후 시대에 맞춰 재개정판(2021년)을 내어놓는 소회의 글에서도 집필의도를 거듭 명확히 밝혔다. 작가로서의 성찰이 담긴 고백과 청소년을 본성 그대로 존중하신 마음을 되새기며 가장 진한 밑줄을 긋고 싶다.


"가장 힘든 상황에 놓인 소희를 그리면서도 그 애의 현실, 그로 인한 심리나 상처를 핍진하게 표현하는 대신 내 아이들이 갖기를 바라는 마음가짐이나 삶의 자세를 그리는 데 더 애를 썼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바르게 잘 자라는 아이의 모습은 어른의 시각으로 그려진 것이다. ……소희를 이상적인 아이로 만들어 그 작품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소희처럼 되기를 은연 중에 강요한 것은 아닌지 뒤늦게 돌아보게 되었다.…… 그 뒤 10년 세월이 흘렀지만 아이들은 결코 일찍 철들 필요가 없다는 생각은 더 확고해지고 있다. 어른과 사회는 아이들이 그렇게 자랄 수 있게 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작가의 말_개정판 중' 312p)


"건강한 욕망은 인간을 성장하게 만들고, 삶의 질을 높이는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소희가 욕망을 표출하며 본성을 회복해 가고, 어렵게 이뤄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과 삶의 본질과 그 이면을 그려 보고 싶었다.(작가의 말_초판 중 310p)"

원하는 걸 말할 수 있을 때 길은 열려

이금이 작가님의 청소년 성장소설 3부작 시리즈[너도 하늘말나리야-소희의 방-숨은 길 찾기]의 두번째 작품 <소희의 방>. 책을 펼친 자정부터 몇시간을 내리 읽다가(멈출수가 없다!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자다 깬 아들의 거듭된 소환에 눈물을 머금고 도중에 덮어야했다. 그것도 소희 앞에 '디졸브'가 헐레벌떡 나타난 결정적 그 순간에잉! 다음날에야 남편과 아이가 놀고 있는 옆에서 틈틈히 읽으며 마침내 결말까지 확인했다. 아아, 기뻤다. <너도 하늘말나리야>의 마지막 장면 이후 소희는 어떻게 지낼까?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고, 소희가 '막연히'가 아닌, 정말로 '하늘말나리'가 되는 복잡다단하고 섬세한 과정을 몰입하며 지켜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희와 엄마 사이에 놓인 세월의 공백이 주는 거리감을 보는 동안엔 내내 마음이 먹먹했다. 친어머니의 대한 기억을 박탈당한 내 아버지의 어린 시절 모습을 그려보았다. 친모의 생사를 알아도 평생 만날 의사가 없으셨던 그 마음을 나는 헤아릴 주제가 못 된다. 가족사진 속 엄마와 닮지 않은 이유는 자기가 친엄마를 닮아서일 거라며 덤덤하게 사연을 말해주던 옛 남자친구도 떠올랐다. 소희의 마음을 읽으며 나도 너무 궁금했다. 자식에게 등을 돌리고 떠난(혹은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그 분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갔을까. 소희의 엄마는 대체 어떻게 살아온 걸까.. 소희와 엄마 사이를 가로막던 벽이 와해됐던 그 날, 어쩌면 나는 알고 있었던 걸 재확인했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되어보니 단언할 수 있다. 살아있는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사는 삶은 절대 진심으로 맘편히 행복할 순 없을 거란 걸. (물론...故구하라나 강한얼 소방관 사연을 보면 상식에 반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소희는 자신을 꼭 닮은 엄마를 만나고 설레던 마음에 서서히 금이 갔다. 별뜻없던 엄마의 말이나 행동들 하나하나가 슬픈 가시가 되어 박혔다. 어디에도 자기가 쉴 방은 없어 보였다. 외투를 입고 있어도 어깨가 시리는 기분이 그럴까. 고작 열네살, 열다섯살의 아이가 굽은 어깨로 비질을 하고, 으리한 식탁 구석에서 묵묵히 밥만 먹고 있을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도 가슴이 지르르하다. [잔뜩 웅크린 채 자는 버릇이 그 때문인지, 스스로를 거치적거리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몸이 무의식중에도 자리를 조금 차지하고자 애쓰는 건지 알 수 없다. (12p)]


친구들이 자신의 처지를 알게 될까봐 점차 거짓말을 하거나 과시를 하는 모습과 불안한 심리가 안타까우면서도 이해는 됐다. 열다섯살이다. 지름길을 놔두고 빙 돌아서 누가 보는 사람이 있나 확인하며 후다닥 귀가했던 그 나이의 내 모습이랑 사실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소희의 자존심이 자존감으로 변화할 때까지 피치 못할 과정으로 보고 싶다. 소희의 욕망과 자존심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면, 그건 타고난 자존감을 가진 승자 뿐이리라.


-소희는 그동안 떼 지어 몰려다니는 아이들과 자신은 다르다고 여겨 왔다. 그런 아이들과 어울려 돌아가니고 싶지 않았고, 유행 따위를 따르기도 싫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소희는 자신이, 동경이나 욕망 자체를 느끼지 못했던 게 아니라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무관심으로 자존심을 지켜 왔음을 깨달았다. 가장했던 무관심은 살얼음처럼 얄팍해서 채경의 말 몇 마디에 파삭하고 깨져 버렸다. (121p)


-문득 그동안 자청한 거라고 여겼던 모범생 역할이 실은 보이지 않는 강요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 없이 할머니와 사는 환경이, 할머니한테도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동정이나 손가락질이 죽기보다 싫었던 자존심이, 모범생 노릇을 할 때나 대견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는 어른들이.. (188p)


엄마에게 마음의 문을 닫는 심정 또한 정당하게만 느껴진다. 그런 감정의 혼란을 고스란히 겪어내는 소희를 가만히 응원하고 싶기만 했다. 부러운 건 부럽다고, 갖고 싶은 건 갖고 싶다고 말하고, 화나는 건 화난다고, 싫은 건 싫다고 말할 수 있는 것. 내 마음의 진실을 속이지 않는, 그게 진짜 자존감이야. 라고 나도 옆에서 자꾸 알려주고 싶었다. 의외로 소희 고모가 고마운 말을 해주셨다.

-"그동안은 일찍 철든 게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했는데 이제 보니 아니었다. 애들이 부모 속 썩이고, 반항하고, 형제들하고 싸우는 시간도 다 약정 시간에 있는 거야. 너희 때는 그게 당연한 거야. ……".. 자식이 속썩이고 대들 땐 미워 죽겠다가도 돌아서면 보고 싶고 그리워지는 게 엄마 마음이거든 (238~239p)


마침내 소희가 더이상의 상처나 인내를 거부하며 하고 싶은 말들을 지르는 모습을 보는 게 반갑다 못해 후련했다. 지하철역 사물함 안에 범생이 옷을 처박고 문을 닫았을 때, 엄마에게 억눌린 서러움을 표출하고 '질문' 을 쏟아냈을 때, 그리고 그 폭풍의 끝에서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바우가 그려준 하늘말나리는 정말 소희를 닮았을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비참한 감정이 옅어져 갔다. 내성이 생겨서가 아니라 어느날 문득 깨달은 생각 하나가 자리를 넓혀갔기 때문이다. 떨어져 산 내내 엄마 삶을 옥죄는 족쇄였다는 말은, 소희를 한시도 잊은 적 없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그 생각은 냉기로 가득 찼던 소희의 마음을 가장 깊은 곳부터 서서히 데우기 시작했다. (218p)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에서 진심이 읽혔다. 소희는 그 때문에 아파하고 힘들어했던 게 생각난 허탈하면서도 그때 그 자리에서 참지 말고 말했으면 풀렸을 텐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246p)

강해지고 싶은 욕망의 이유는 따로 있다

'상처입은 조개만이 진주를 키울 수 있다'는 말'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소희에게 친구 채경은 단비같은 아이다(내가 사랑한 '홍주('알로하, 나의 엄마들' 등장인물)'가 여기 또 있었네!). 영화감상동아리 모임에서 사복으로 만나는 대목, 아 기습당했다. 소희의 세상진지한 해석에 고개를 끄덕이며 씁쓸해하다가.. 채경의 해맑은 핀잔(120p)에 웃음이 터졌다. 둘이 옷 얘기를 하는 걸 보니, 새삼 나도 옷이 사고 싶어져서 읽다 말고 잠시 쇼핑몰을 서핑하는 샛길로 새기도. 응?

누군가는 소희가 사실대로 말해주고 난 후엔 그동안의 소희를 가증스럽게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채경이는 아예 진주를 투척해주었다. 소희 홀로 상처를 핥느라 낑낑대며 고군분투해야만 진주를 뭉칠 수 있는 걸까. 상처에 집중하는 대신 반질반질한 친구조개와 천천히 예쁜 바다를 감상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지 않을까. 그런 동행 자체도 '진주'가 아닐까.["뭐래. 정소희든, 윤소희든 너는 너잖아. 그거면 됐어. 너 오늘 햄버거 쏴. 부잣집 딸인 것도 그대로잖아"(306p)].


소희는 이제 점점 지켜주고 싶은 이들이 많아질 것이다. 엄마, 채경, 지훈, 재서, 우혁, 우진, (새아빠는 유보 : 솔직히 아직 못 미덥다), 양평 할머니, 그리고 다시 미르와 바우... 그동안 자신의 결핍만으로도 버거웠던 소희였다면, 앞으로의 결핍을 채울 자신만의 방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줄 수 있는 힘을 함께 욕망하게 될 것이다.


그저 배경적 요소의 인물 정도로 언급되는 줄 알았던 새아빠의 딸 리나가 가장 결정적인 이야기를 해주고 갈 줄은 몰랐다. 소희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고 회복하며 성장해가는 리나만이 자신있게 힘주어 얘기해줄 수 있는 조언이었다. 열다섯 살하고도 스물일곱살을 더 먹은 내 마음에까지도 그 진동이 오래 머무는 문장이다.


"엄마의 불행이나 고통을 외면하라는 게 아니라 그걸 네 것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는 말이야. 엄마는 엄마고 너는 너야. 우리는 모두 각자 인생을 사는 거야. 이건 닥터가 내게 해 준 말이야. 대신 넌 너나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부당한 일을 당할 때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돼. 네 마음이 건강해야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올바른 판단을 하고 당당하게 표현하거나 행동할 수 있어."



 

* 출판사에서 책을 지원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감상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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