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즈코 상> 소설에 대한 추천사에서 정혜윤 작가님이 이런 표현을 썼다. "나는 이 책을 읽고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마흔을 앓다가 나를 알았다(이하 마앓나알)>를 읽으며, 자꾸 눈을 꾸욱 감고 잠시 멈추어서곤 했다. 전화를 끊고 봇짐처럼 뒤에 아기를 업은 채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한 여성의 모습이 그려져서. 이제 손아귀 힘도 제대로 못쓰게 된 몸뚱이라, 식당 설거지 알바조차 못할 거라는 위기감으로 덜컥 겁이 났던 내 설움도 떠올라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며 경력을 쌓았고, 인정과 경제적 자립을 누리며 살아왔어도 소용이 없다. 안에서는 궤도에서 이탈된 무력감에 누가 뭐라하지 않아도 자존감이 위태롭기만 한데, 밖에서 찌르는 가시에 더욱 아프다. 싫든 좋든 엄마의 외피를 쓰고 속절없이 나이들어가는 여성의 삶은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여성작가가 쓴, 더 정확히는 '대한민국 엄마인 작가'가 쓴 '여자의 마흔 책'이 나왔다. 목이 빠질 뻔 했다. 왜 이제야 나왔냐고 엄한 작가님에게 징징댈 뻔 했다. 실은 재작년 겨울 나는 마흔을 앞두고, 마음의 의식 차원(?)에서 마흔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을 한 권 읽어보았지만, 해갈되지 않는 허기가 남았었다. 책에는 내 삶이 들어있지 않았다. 그러니 안타깝게도 나를 위한 지침으로 깊게 와닿지가 않았다. 그리고 당시 나는 여전히 고막이 찢어지게 악을 쓰는 꼬맹이를 폭풍육아 중이었기에, 내 나이를 셈할 여력보다는 내 자식 개월수를 셈하느라 절박했다.
나의 ' 마흔앓이'는 일년이 지나 마흔 한살을 코앞에 두었을 때, 잠복기를 깨고 실체를 드러냈다. 11개월 간격으로 무려 두번의 지독한 독감과 후유증으로 생전 모르던 식도염까지 앓으면서 나는 땅에 얼굴을 파묻고 싶었다. 아둥바둥 더 살아가야할 날도 벌써 지긋지긋해서 이대로 증발해도 미련이 없을 것만 같았다. 처음엔 이유를 몰랐다. 한 두번 아파본 것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유난히 우울해 죽을 것만 같지. 나중에야 '명료한 언어'를 통해 깨달았다. 그동안 깡으로 자만했던 내 몸도 이제 더는 '청춘'이 아니구나,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구나, 직시하고서야 말이다.
"'나이 든다'는 그 느낌을 자세히 말해보자면, 처음에는 긴가민가하다가 일정 기간에 이르러서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시간에 가속도가 붙는 순간이 오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비교가 될 정도로 나이가 든 느낌이 든다(21p)"
<마앓나알>에는 노산후유증이 노화와 조우했을 때, 삶의 질을 얼마나 떨어뜨리는지, 머뭇거리지 않고는 하기 힘들었을 고백까지 솔직하게 담겨 있다(케이트 윈슬렛 진짜 감사하고 멋지네요. 저도 사랑해도 될까요?). 나 역시 작가님과 유사한 고충은 물론, 더는 족집게 뽑기로 따라갈 수가 없는 흰 머리 자괴감, 비비크림을 발라도 푸석하기만 한 피부, 상냥한 눈웃음보다 더 먼저 눈에 띄는 눈주름, 만성으로 시큰거리는 손목, 어깨죽지마저 어긋난 것 같은 통증, 아랫니가 점점 비뚤게 돌아가고 있는 걸 발견했을 때의 충격, 세상 모르고 살았던 두통의 빈번함까지.. 모든 노화가 아주 신나게 현재진행형 중이다. 이 모든 게 정말 마흔을 기점으로 심화되었다. 그야말로 인체의 신비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내 노화가 대수롭지 않게 느껴진다. 나도 그래요. "나도 그래요"의 힘이 얼마나 큰 지, 알게 해준다.
하루 차이로 새해가 왔을 뿐인데 마흔이라고 유별나겠나 싶지만, 이 정의를 대입해보면 수긍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마흔이란, 젊지도 늙지도 않은 나이,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의 수가 비슷해지는 나이(4p), 무엇을 하기에도, 멈추기에도 애매한 나이(6p)" 정말 그렇다. 이십대에서 삼심대로 넘어가는 것과 차원이 다른 느낌이다. 아무리 말이야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마흔은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어지는 분기점임을 부인하기 힘들다. 하아. 당혹감을 분명 느끼면서도, 하루하루 육아와 가사 과업을 완수하느라 막상 진지하게 현 시점에 대해 사유해볼 기회를 갖지 못해왔다. 그런데, 책이 내게로 왔다.
마흔이 되고 보니
가만히 앉아서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나이와 노화뿐인 것 같다.
일부러 살아야 한다.
-<마흔을 앓다가 나를 알았다> 78p 중에서-
한혜진 작가님은 그동안 자신의 내면아이를 보듬으며 쏟아낸 눈물들을 거두어, 또 다른 마흔들에게 씨앗을 건넨다. 자기학대, 자기비하, 자기혐오의 고통에서도 끝내 생존해서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가 보인다. 글을 쓰면서도 울고, 원고를 다시 읽으면서도 울고, 책을 내고서도 떨고 있는 작가님.. 그런 그이기에, 그가 전하는 '일부러 살기' 미션이 겸허하게 들릴 수 밖에 없다. 일부러 살아가게 하는 동력은 다름아닌 '가장 나다움'을 되찾는 일이라고 말한다. "내가 나를 정확하게 규정하지 않으면 남들이 나를 부정확하게 규정한다(87p)"는 말이 참 와닿았다. 여자라서, 엄마라서 씌어진 잘못된 프레임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내가 정의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한다. 불혹은 무슨, 마흔은 흔들릴 일투성이지만, 흔들리지 않기 위한 내공 기르기에 열중해야 한다(18p)고 알려주었다. 살아지는 대로 살아서는 안되고 일부러 살아야만 쌓을 수 있는 내공 말이다. 나는 이제사 좀 앞으로 보람있고 즐겁게 임할 수 있을 나다운 평생업을 탐구해가고 있는 터라, 이 문장을 믿고 계속 용기내어 나아가고 싶다. "엄마의 일은 내가 눈높이를 낮춘다고 오는 것이 아니다. 로또처럼 한방에 인생역전하듯 찾아오는 것도 아니며, 남을 따라서 한다고 그 사람처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나를 제대로 알면 일이 생긴다.(112p)"
보통 마흔무렵의 엄마는 사춘기에 진입하는 자식을 양육하는 시기다. 내 아이는 이제 다섯살인 마당이라 당장 시급하진 않지만, 5년 뒤면 반드시 닥칠 일이다. 한혜진 작가님은 양육서 베스트셀러인 <극한육아 상담소>, <무조건 엄마편>, <위대한 유산>을 집필하신 분 답게 특유의 명민한 통찰이 이번 책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점점 떠나가는 큰 딸아이를 바라보는 변함없는 사랑과 마음의 준비, 중심을 단단히 세우는 양육철학은 작가님의 사적인 영역을 넘어서서 함께 지혜로운 엄마가 되자고 손을 내미는 공언이다. 나는 청소년은 무조건 반드시 기필코 "반항하는 망나니"라는 고정관념이 있어서 두려웠는데, "아이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아이가 가진 일부 행동이나 성격, 습관 같은 것이 문제(194p)"임을 깨닫고 "인간 존재로서 10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195p)"는 참지식을 얻었다. 인용된 기질 영어 전문가 김세희 님의 이야기에도 눈이 번쩍 뜨였다. "밖에 나가는 것만이 경험이 아니예요. 소통의 스펙트럼이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느냐가 진짜 아이의 경험이죠. 아이와의 대화가 어디까지 쭉쭉 뻗어 갈 수 있는지가 중요해요(201p)"
내가 필요로 했던 실질적인 마흔 책, <마흔을 앓다가 나를 알았다>를 읽으면서, 딱 이 생각이 든다. 같이 늙어가는 언니가 있어서 너무 좋다. 같이 늙어가는 마흔친구들이 있어서 좋다. 마흔의 고비를 넘어선 내가 좋다. 내가 나를 좋아하게 해주는 이 책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