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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낭자님의 서재
사무실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러던 중 함께 일하는 분 중 한분이 책을 가지고 오셔서 읽어보라고 권하셨다. 저녁에 집에 돌아가 책을 읽는데 한편의 우화가 내게는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나에게 치즈가 무엇이 있을까? 나는 가진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편안함, 안락함을 누릴 수있는 여건보다는 걱정하고 헤쳐나가야 할 역경만 많은 것 같고 나의 치즈를 찾아 미로로 나서기 보다는 현재 내 주변의 치즈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힘겹게 느껴졌다.

마지막 장, 토론을 미쳐 읽지 못한채 다음날 사무실에 출근했다. 아침조회를 마치고 차를 마시면서 또 자연스럽게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미 30-40대에 이르른 분들은 이책에서 이야기하는 변화대처에 대해 중요하게 말씀하셨지만 나는 20대이기 때문에 내가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나이드신 분들이 왜 변화를 감지 못하는지 불만이 더 많다고 말씀드렸다.

또 나에게는 이미 얻어놓은 치즈도 없어서 지금 걷고있는 길이 아직 한번도 맛보지 못한 치즈를 찾아가는 길이라고 말씀드렸다. 아직 토론 부분을 읽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이책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 못한 채였다. 또 책에서는 치즈가 없어진 과정의 투명성이 보장되어있다는 전제가 있지만 우리 사회는 너무 투명성이 보장되어 있지 않아 치즈가 없어졌을 때 쉽게 다른 치즈를 찾아 마음을 돌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책을 읽는 동안도 그랬지만 나는 계속해서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이 떠올랐다. 그들의 잃어버린 치즈에 대해서... 하지만 나의 이런 생각에 대해 다른 분들은 새로운 의견을 내 놓으셨다. '유선생님은 글을 잘 쓰잖아요. 그것이 유선생님의 치즈일 수 있는데 유선생님은 그것을 치즈로 생각하지 않고 개발하지 않은 채 곰팡이가 슬도록 방치할 수 있는겁니다. 치즈란 크고 대단한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지요.'

나는 옆 동료분의 조언을 들으며 그날 퇴근하고 뒷부분을 이어 읽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치즈를 찾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아 존재한다면 나에게 치즈가 없을 수는 없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찾지 못하고 있는것이다.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면 어떻게 자신의 미래를 감지하고 변화에 대처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책이 자신을 발견하고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나의 모습을 정확히 보고 나를 사랑한다면 어떤 두려움도 이겨내고 미로로 달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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