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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서재
  • 경우 없는 세계
  • 백온유
  • 15,300원 (10%850)
  • 2023-03-30
  • : 4,317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경우 없는 세계》는 오랜만에 참 흥미롭게 읽은 작품이다. 인물들의 성격을 말과 행동을 통해 입체적으로 잘 보여준 것 같다.

주인공 인수는 경우에게 많이 의지하고 그를 좋아하는 한편, 미워하기도 하는 복합적인 감정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경우가 자신을 위해 희생하고, 인수는 그에 대한 죄책감을 안은 채 지내다 결국 경우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됐을 때, 그때부터 인수가 느끼는 추위가 더 심해졌을지도 모르겠다. 인수가 말하는 ‘추위’나 ‘귀신들’은 결국 깊은 외로움과 죄책감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인수는 이호라는 아이를 알게 되고 함께 살아가며 점점 치유를 얻는다. 경우를 떠올리며, 자신이 정작 받지 못했던 부모의 사랑과 관심 같은 것들을 이호에게 나누어 준다. 인수는 그렇게 추위와 귀신들에게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게 된 것 같다.

'경우 없는 세계'라는 제목만 봐도 인수에게 경우가 얼마나 커다란 존재였는지 알 수 있다. 그 긴 세월 동안 괴로워하고 자책했으니, 이제는 인수의 삶도 조금은 편안해지면 좋겠다.


인수는 그저 부모의 사랑이 필요했을 뿐인데, 아버지의 가정폭력과 어머니의 순응에서 오는 무력감, 그리고 박탈감이 아이를 망가뜨렸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착한 아이', '밝은 아이'라는 칭찬을 들을 정도로 괜찮은 아이였는데, 도대체 뭐가 부족해서 아버지는 인수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없이 구박하고 때리기만 했을까? 어머니라도 옆에서 말려주거나 함께 저항해 주었다면 인수가 이 정도로 방황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럼에도 인수는 아버지를 온전히 미워하지 못했다. 가슴 한켠에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바람이 늘 남아 있었다. ‘내 집’으로 돌아가 따뜻하게 환영받는 상상을 인수는 얼마나 반복했을까. 부모님을 싫어하냐는 질문에 선뜻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던 인수가 너무나 가엾다.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니?"

어머니가 보낸 이 마지막 문자는 "집으로 돌아가면 다 괜찮아질 거야, 환영받을 수 있을 거야."라며 붙잡고 있던 인수의 마지막 희망을 무너뜨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3자인 나조차 그 말에 상처를 받았으니까.


10대들이 가출해 밖에서 생활하는 데는 수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그 고통을 겪다 보면 결국 집이 그리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끝내 돌아가지 않고 밖에서 버텨내는 것을 보면, 어떤 누군가에게는 집이라는 공간과 가족이라는 존재가 돌아가고 싶지 않은 '지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흔히 한 사람의 자존감을 결정짓는 건 가정에서 받은 사랑과 온기라고들 한다. 인수가 집에서나, 밖에서 사람들과 지낼 때나 늘 모든 걸 자기 탓으로 돌리고, 남과 비교하며 질투하고, 사랑받기 위해 추할 정도로 굴복하는 모습을 보며 그가 부모에게 사랑을 거의 받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것 같았던 성연에게도 어머니와 할머니의 사랑이 있었고, 경우에게는 엄마와의 짧은 추억과 믿음이 있었다. 경우가 어머니에 대한 불신과 불안을 직면한 뒤 곧바로 다른 길을 선택했던 것을 보면, 누군가의 믿음과 사랑은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임을 통감하게 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10대들은 처음 접하면 영악하고 혐오스럽거나 징그럽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부모가 채워주지 못한 결핍, 그리고 가정에서 비롯된 분노와 공포가 자리 잡고 있다. 그 감정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차가운 길바닥으로 내몰았고, 그 영악함과 교활함은 어쩔 수 없는 아이들의 '생존 방식'이었을 것이다. 우리 같은 어른들은 그 아이들을 그저 '나쁜 아이들'로 치부할 게 아니라, 불쌍히 여기고 손을 내밀어 줘야 하는 게 아닐까. 정말 악한 아이들도 있겠지만, 그저 도움이 간절했던 아이들, 부모의 사랑이 너무나 고팠던 아이들일지도 모르니까.


소설을 읽으며 참 이해하기 힘들 만큼 아이들이 영악하다고 느껴진 순간도 있었지만, 동시에 너무나 공감이 돼서, 부모들의 언행이나 바깥에서 마주한 차가운 현실이 아프게 다가와서 뒷골이 당길 때도 많았다.

그래서 10대들의 가출과 가정폭력, 애착과 결핍이라는 주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만들어 준, 지극히 현실적이고 먹먹한 소설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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