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갈까?
보린아빠 2017/07/01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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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올의 로마서 강해
- 김용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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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 - 2017-04-01
: 2,126
나처럼 책읽기 훈련이 잘 되어 있지 않은 공대생이 이책을 시작한 것은 정말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일주일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이 책을 다 읽었다는 것에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다.
로마서 강해를 시작하기에 앞서서 성경이라는 문서에 대한 문서비평이 먼저 시작되었다. 성경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형성되었는지 (쓰여졌는지), 또한 언제, 왜 저술이 필요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선행된다고 하겠다.
성경은 역사서가 아니다. 당연히 사실을 기술한 것이 아니라 저자가 전달하고 싶은 주제가 있었던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여기서 기술된 사건들 하나하나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면 마치 신앙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그간 우리가 교육 받아온 기독교 근본주의의 의견일 뿐이다.
성경의 저자들은 어떤 사상적 기반으로 이 책을 썼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내려오는 아테네 문화의 학풍을 설명하고, 살아있는 예수를 만난 적이 없는 바울의 서신들과 예수님을 만난 적이 있는 4복음서 저자들의 공관복음의 차이, 그리고 바울의 서신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역사적으로 전해 내려온 인류의 지혜를 요약한 바울의 의견인지, 예수님께서 원하셨던 복음인지를 구별하는 작업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중요한 것 하나는 하나님/예수님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쓰여질 때는 인간의 언어로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사건들로 되어있다는 점이다. 그 말들이 하나님의 성품을 정확히 기술할 수 없고, 그 기술에는 저자의 주관이 들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배경을 설명하느라 도올 선생은 전체 500페이지가 넘는 책 가운데 거의 절반은 250페이지를 할애했다.
바울은 살아있는 역사적인 예수를 만난 적이 없다. 그거 만났다던 예수가 꿈에서인지 환상의 형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떻든 직접 생활하면서 겪은 적은 없다. 누가 누구를 잘 안다고 하는 것이 반드시 친한 사람이어야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너무 친한 사람은 그의 가치를 다 파악하기가 어려울 수가 있다. 베드로를 비롯한 12사도는 예수님의 3년의 공생애를 같이 했지만, 철학적으로 아니 쉽게 사람들에게 복음의 가치에 대해서 설명하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본다. 바울의 경우 신약의 많은 부분을 그의 신학적인 이야기로 채우고 있는데, 로마서에서는 "무엇을 믿어야 할지?"에 대해서와 그리고 당시의 민감한 사항들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위축되지 않고 피력하고 있다. 이는 예민한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한 발 빠져 있으면서 근본적인 이야기만 하는 많은 기독인둘에게 도전적이라 허겠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과연 복음을 전한다는 많은 사람들은 이걸 알고 전하고 있을까? 마치 예수를 믿는다는 것에 성경에 나오는 모든 것이 문서적으로 의미를 가지며 역사적으로는 아닐 수도 있다는 것까지 거부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는다" 라는 것은 율법으로는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선고받을 수 없고 때문에 예수님을 통해서 값없이 의롭다 칭해주셨다는 것을 믿는 걸 의미한다. 그리고 그 구원은 단편적인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완성해 나가는 것이라는 것.. 크리스찬이 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 늘 십자가에 나를 못박아야 하는 과정.. 그러면서 주님과 늘 다시 부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도올 선생은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정도의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을수도 있다. 하지만 아는 것과 살아내는 것이 차이가 있고, 머리로 아는 것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차이가 있다. 이 책을 통해서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고,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더 고민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달을 가리키는 손을 보며 달을 보지 않고 손만 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다시금 이야기하지만 성경은 역사서가 아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하나님 예수님에 대해서 진실하게 고민하는 것이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것처럼 대각의 과정을 지나게 되는 고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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