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는 모두의 기억을 일깨워주는 소설이다. ‘형제복지원’ 사건을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이 책을 집어들어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당신은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것은 소설의 시작인 ‘준’의 시선이 그러했던 것과 비슷하다. ‘준’은 아주 어릴 때 폴란드에 입양 와 지금의 부모님 밑에서 평범한 성장기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의 누군가로부터 편지를 한 통 받게 되고, 지금껏 한 번도 다가선 적 없었던 기억의 문턱에 발을 들이밀게 된다. 자신의 고향에 대하여, 자신의 출생에 대하여, 자신의 어머니, 은희에 대하여.
⠀
준은 편지 속 장소인 아우슈비츠 박물관에서 동양인 여성인 ‘미연’을 만나게 된다. 계속해서 미연에게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진실을 들려달라고 말하지만 미연은 그런 준을 피한다. (“시간 지나고 나면, 모르는 게 나을 수 있어. 진실이란 게 그래. 알면 알수록 괴롭고 귀찮아져. 네 나이 때는 진실이 너를 치료할 거라고 착각할 수 있어. 젊을 때는.”) 사실 미연은 그 ‘진실’로 인해 평생을 괴로움에 몸부림쳐야 했던 장본인이었기 때문에, 준 또한 진실을 알게 되면 그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임을 알았던 것이다. 그리고 미연이 그토록 묻고자 했던 진실이란,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기억이었다.
⠀
형제복지원 사건은 작품의 줄기가 되는 사건이자, 한국 근현대사에 실제로 존재했던 최악의 인권유린 사건 중 하나이다. 형제복지원은 군사정권 당시 ‘부랑아 단속’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세워진 사회복지시설이었다. 하지만 허울 좋은 명분과는 다르게 실제로 부랑아나 고아가 아닌 아이들도 납치하여 시설에 감금하기가 부지기수였고, 시설 내에서는 강제 노역과 성폭행, 살인 등 비인간적인 인권 유린이 만연했다. 실제로 1975년부터 1986년 사이에 형제복지원에서 살해 및 고문으로 사망한 피해자 수가 513명에 달하고, 형제복지원에서 살아돌아온 생존자들 중 대다수가 당시 기억에 대한 트라우마로 현재까지도 고통을 겪고 있다.
⠀
소설 속 은희와 미연 역시 형제복지원에 강제로 수감되었던 아이들이었다. 은희는 형제복지원에서 끝내 살아나오지 못했고, 미연은 살아나왔다. 미연은 가족과 사회가 자신에게 기대하듯, 평범한 일상을 살아나가고자 노력했지만 사실은 그때의 기억에 붙잡혀 아직까지도 고통받고 있었다. 미연을 통해 되감기되는 그때, 그 날의 기억들은 소설을 읽는 나에게도 슬픔보다 더한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이유 없는 죽음들, 아니, 이유 있는 죽음들과 그 이유를 모른채 해 온 국가와 재판부와 언론에 대한 분노가, 그리고 소설을 읽기 전에는 이런 사건이 있는 줄도 몰랐던 나 자신에게 밀려오는 부채의식이 소설을 읽는 내내 한 번씩 읽기를 멈추고 숨을 고르게 했다.
⠀
소설은 모두에게 기억하기를 종용한다. 소설 속 형제복지원을 운영했던 ‘방인곤’ 원장은 시간이 지나 치매로 자신의 죄와 기억을 모두 잊었다. 미연은 기억을 묻어두고 일상을 살아나가려 부단히 애를 썼지만 여전히 기억에 붙잡혀 고통받고 있다. 준은 어쩌면 영영 몰랐을 수도 있었을 자신의 탄생과 은희의 죽음을 알게 됨으로써 그 기억의 늪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는 나. 독자는 이 작품을 읽음으로서 또한 과거의 참혹했던 사건에 대한 기억을 갖게 된다. 이 책의 독자로서 내가 갖는 고통은 분명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갖는 고통들에 비하면 미미한 것일 테다. 하지만 <은희>를 읽음으로서 이 불행의 조각을 작게라도 나눠 갖게 되는 것은 지난 시대가 만들어낸 고통을 함께 감수하려는 최소한의 반성이며 노력이다. ‘잊지 않겠다’는 마음의 힘은 결코 작지 않다. <은희>는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할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
ps.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들을 구제하려는 움직임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