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가 남긴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에서 따온 것 같은 '그러므로 나는 의심한다'라는 제목에 끌렸습니다. 처음에는 철학 입문서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더 알아보니 신경과학을 중심으로 온갖 분야들이 섞여 있네요. 신경과학과 철학에 대해 알고 싶은 나에게 딱 맞는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어떤 책을 처음 읽으면 이 생각 저 생각이 머릿속에서 마구 스쳐 지나갈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이 계속 객관적인 진리(혹은 실재)라는 주제로 되돌아갔습니다. 특히 2장 ‘정보는 무의미하다’를 읽으면서 객관적인 진리에 대한 나의 입장을 한 번 더 정리하고, 엉뚱한 길로 빠지지 않고 논리를 전개하는 데 필요한 배경지식도 얻을 수 있었어요.
신경과학자인 이 책의 저자는 혀에 닿는 화학물질이나 귀로 들어오는 진동처럼 우리에게 들어오는 정보 자체에는 의미가 없다고 말합니다. 의미는 우리가 주변 환경 그리고 과거의 경험과 상호작용하면서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의미에 대한 논쟁은 객관적인 실재에 대한 논쟁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감각이 우리에게 객관적인 실재를 보여준다면 우리는 모두 같은 세상을 보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 뇌는 우리에게 객관적인 실재를 보여주는 대신 살아남기 편한 방식으로 들어오는 정보에 의미를 부여해서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객관적인 실재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몇 년 전에 화제가 되었던 드레스 색깔논쟁 같은 일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드레스 색깔논쟁은 인터넷에 올라온 드레스가 파란 바탕에 검은 줄무늬인지, 흰 바탕에 금색 줄무늬인지를 두고 시작되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드레스 색을 가장 정확하게 보았다고 생각했고, 누군가가 그 색이 아니라고 하면 당황했습니다. 우리는 평소에 우리가 객관적인 실재를 정확하게 본다고 가정하고 그 위에 세상을 보는 관점을 쌓아 올립니다. 다른 사람이 논리적인 근거를 들고 와서 설득해도 관점을 바꾸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입니다. 드레스 논쟁에서처럼 이미 그 주제에 대해 객관적으로 봐도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객관적인 실재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대신 우리가 세상을 지각하는 방식에 대해 자각하면서 그 방식들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금까지 철학적 질문으로 다뤄졌던 의미와 실재를 신경과학은 어떻게 다루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신경과학의 관점에 대해 알게 되어서 신선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의심한다>는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과학을 즐기는 사람에게도 모두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