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 제공도서에 쓴 주관적 서평입니다]
요즘 이런 책들이 오히려 더 감동을 준다.
소설의 카타르시스나 시의 함축성이 주는 재미보다
삶속에 오래 전부터 존재했지만
잘 보이지 않던 관계의 사각지대를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 말이다.
이 책은 나르시시스트가 가진 속성을
헤어진 남녀관계에 국한해 알아보는 책인데,
남녀관계에 치중되어 있다는 그 점이 좀 아쉽다.
책이 가진 나르시시스트란 주제 관련해선 분명 정확한 컨셉임에도
좀더 확장할 수 있는 나르시시스트란 주제가
헤어진 연인 중 책임이 있는 상대방만을
악마화 해 회고하는데만 쓰일 수도 있겠기에.
다만 요즘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책 트렌드 상,
나르시시스트란게 일단 현시대에서
커플 중 '배신당한 연인'을 피해자로
'배신을 한 연인'을 가해자로 두고
나르시시스트가 이런 가해자들 중에 많다란
구조로써 많이 쓰이고 있는 부분도 한몫 함.
'나르시시스트'라 함은,
인간관계 전부에 포진할 수 있는 요소고
풀속에 잡초처럼 솎아낼 수도 없는 존재.
또한, 누구나 어느 순간 본인도 나르시시스가 될 수 있는
잠재정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부인해선 안될거 같은데 말이다.
예를 들면,
딸로써는 피해자였지만 어머니로써는 못다푼 정서적 허기를
본인 자식에겐 나르시시스트로 강요하는 삶도 살아갈 수 있겠고,
한명의 나르시시스트가 더 상위 나르시시스트에게
상하관계로 엮여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제, 책이 말하는 가장 기본적인 용어인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와
그 속성으로써 '수동공격성 및 연약함의 가면'부터 알아보자.
내현적(covert)이란,
일종의 숨긴듯 드러나지 않은 나르시시스트적 성향이다.
반대 말인 '외현적'은 우쭐거리거나 드러내려는거라
오히려 알아채기도 쉽지만 이런 성향들은
어떨땐 반대로 내현적 성향인 나르시시스트들에겐
가해자로써 미운털이 박히기도 쉬운 종류다.
내현적 나르시시스트가 가진 위험성은
조용하고, 수줍으며, 내세우지 않고 물러선듯한 처세로,
겸손해 보이고 때론 성숙한 인간형으로까지 보일 수 있기에
저자는 이를 '수줍은 괴물'이라 표현했고
아주 적절한 비유로 보인다.
결국 수줍은 괴물인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의 속내는
사실 누구보다 불만이 많고 시기심도 많을 수 있지만
마치 순수하고 착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 보호색이다.,
바로 드러난 공격성이 크게 없기 때문에
이런 숨겨진 공격성을 '수동 공격성'이라 부르는 것이고.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들은
다그침을 당하면 맞받아치진 않을텐데,
말대꾸 대신 깊은 한숨을 쉬거나 침묵할 것이다.
이건 반성도 아니오 수긍도 아니다.
한술 더떠 알겠다는 간단한 시인으로
본인으로 인한 특수상황을 무마시킬 줄도 안다.
하지만 속으론 자신이 틀켰다는 것에 대한
은밀한 복수심이 차오를 수도 있고,
기다리다 적절한 순간 자신을 비참하게 느끼도록
오픈시킨 악의없는 누군가의 당연한 반론을
마치 뼈에 새겼던 마냥
과거의 앙금을 보복할 수도 있는 성향이 내현성이다.
단순히 심리용어로 '수동공격성'을 말할 땐,
지각을 하거나 알고도 못들은 척을 하는 정도의
답답함을 상대에게 자아내는
소극적 처세 정도로 설명할 때가 많은데,
책에서 언급된 것처럼 나르시시스트가 보이는 수동 공격성의 무서움은
상대방의 방심이나 선한 마음까지 이용하는 것에
오히려 더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들은 진짜 빠져나가기 어려울 땐
상대의 동정심마저 활용할 줄 알기에,
연약함이란 말 끝에 '가면'이라는 이 단어를
꼭 붙일 필요도 분명 있다.
상대를 분석하고 조종할 데이터를 수집할 줄 알고
자신이 받을 비난을 빠져나갈 줄 아는 그런걸
영리함이라고 해야할지
영악함이라고 해야할지 이 부분은
세상속에선 그저 '처세'라고도 불릴 수 있는 부분.
그렇기에,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의 중요속성일 수 있다.
싸움을 걸지않은듯 괴롭히며
상대를 이기는 방식을 추구한다고 보이니까.
책은 남녀관계에 국한된 나르시시스트이 폐해를 주로 말하지만
앞서 말했듯, 전반적인 인간관계로 확장시켜
나르시시스트가 가진 위험성을 인지해 보는게
책이 지닌 가치를 더 잘 흡수하는 걸수 있다.
나르시시스트를 글로 풀어내는
저자만의 솜씨가 매우 훌륭했다.
같은 내용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180도 달라질 수 있는게 표현의 맛 아니겠나.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위험요소들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선행학습처럼 깊이 이해한다면,
각박하게만 보일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예방차원을 넘어 태생적 한계까지도 보일 수 있겠기에
부정적 시각이 다가 아닌
균형잡힌 긍정적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
순수하지만 순진해지지 않으려 읽어보려는 태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