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나를 압도하는 기억 중 하나는 검푸른 밤하늘을 끝없이 가로지르는 은하수였다. 안 그래도 밤하늘은 저마다의 밝기로 별들이 빼곡하게 빛나고 있었는데 거기에 거대한 빛의 물줄기까지 더해진 하늘은 계속 보아도 전혀 질리지 않는 장관이었다. 공기가 맑고 높은 건물이 없었기에 가능했던 강렬한 장면. 어른이 된 지금에도 별이라든가 우주 저 너머를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는 건 어쩌면 그때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중 읽게 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담긴 소설들은 내게 다시 한번 설렘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그 시절, 그곳의 밤하늘로 데려다 놓았다.
이 책에서 그려낸 인간배아 디자인, 생각-표현 전환 기술, 웜홀 통로를 이용한 성간 항해라든가 사이보그 그라인딩과 같은 신체 개조, 그리고 외계의 지성 생명체 발견과 같은 소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읽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가까운 미래에 그러한 일들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나 김초엽 소설가의 SF소설은 읽다 보면 그것이 다가 아님을 알게 된다. 선량함과 순수함, 따뜻함이 깃들어져 왠지 모르게 정말 그러한 세계가 어딘가 있을 것만 같은 아름다움과 유연함이 잔잔하게 우리를 휘감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각 작품은 등장인물들이 어떤 의문을 품으며 그 이유를 찾으려 하는데, 답은 정해진 게 아니라 결국 그것은 사람이든 외계 지성 생명체이든 상관없이 상대에 대한 사랑과 이해로 이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서 순례자들이 평화로운 행성 ‘마을’을 두고 고통과 쓸쓸함이 가득한 ‘지구’를 선택하며 그곳에 남았던 이유는 사랑하는 한 사람만으로 충분했다. 「공생 가설」에서 ‘그들’은 보통 일곱 살 전후로 기억과 함께 우리를 떠나지만, 류드밀라에게만큼은 끝까지 함께하며 곁에 있어 주었다. 그리고 「스펙트럼」에서 생물학자였던 희진이 우주탐사선에 올랐다가 실종된 지 40년 만에 발견되고도 외계 지성 생명체가 있는 행성의 위치에 대해선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은 이유 역시 그들을 지키기 위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다시 만날 때는, 우리는 더는 유약한 이방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도구를 가져갈 것이다. 그들에 관한 정보를 눈으로 확인하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말을 분석하고 그들의 문자를 분석할 것이다.
루이와 할머니의 관계는 재현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할머니를 이해할 수 있었다. (p.95, 「스펙트럼」중에서)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에서는 우주인 후보가 된 가윤이 자신의 우주 영웅이었던 재경이 미션을 앞두고 도망쳐버렸다는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처음에는 재경이 도대체 왜 그랬는지 의아스러웠지만, 어느덧 가윤은 그것이 그녀의 이기적인 선택이었으나 그녀도 할 만큼 했다는 것, 그리고 차라리 그것이 그녀다운 선택이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결코 녹록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너를 이해 못한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곤 한다. 정말 이해하려는 노력은 해보기라도 한 것일까. 자신의 잣대로 바라보는 게 아닌, 그 사람의 입장에서 그 사람의 상황에서. 그런 의미에서 「관내분실」은 특히 더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서는 죽은 사람을 데이터로 기록해 가상현실에서 만날 수 있게 해주는 도서관이 존재한다. 지민은 엄마를 만나기 위해 도서관을 찾지만, 도서관 측은 기록은 어딘가에 있지만 인덱스가 지워져 검색되지 않는다는 말뿐이었다. 사실 지민과 엄마의 관계는 보통의 엄마와 딸과는 조금 달랐다. 엄마는 지민을 출산한 후 심한 우울증을 겪었고 아버지는 그런 엄마를 방치했다. 지민과 동생은 엄마에게서 아빠를 저주하는 말을 듣거나 자신들을 원망하는 말을 들으며 자라다 보니 가족 간의 정이나 애틋함 같은 건 없었다. 지민도 딱히 도서관에서 엄마의 마인드를 만나 무슨 대화를 나누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엄마가 관내분실 되었다고 하니 지민은 당혹스럽기만 하다.
엄마에 대한 기억이 도통 떠오르지 않는 지민. 그녀는 엄마인 ‘김은하’의 마인드를 검색하기 위해 엄마의 유품들을 꺼내 봤지만 대부분 지민이 어릴 적 썼던 물건만 가득할 뿐 어디에도 ‘김은하’의 흔적은 없음을 깨닫게 된다.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물건도 별다를 것 없었다. 엄마로서의 물건만 가득할 뿐, 엄마 ‘자신’, 그러니까 ‘김은하’의 물건은 없었다. 그나마 결혼 전 다녔던 출판사에서 펴냈던 책이 그녀의 흔적을 대신할 뿐이다.
지민은 자신의 기억 속에서 엄마는 없다고 여겼겠지만, 아니다, 엄마는 그곳에 있었다. 결혼 후 경력이 단절되고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며 자신의 이름 대신 누군가의 엄마로서. 물론 그런 것을 뒤늦게 알게 된 지민의 입장도 충분히 공감하며 그럴 수밖에 없다고 본다. 지민이 감당하기엔 당시 그녀가 너무 어렸고, 가족이기에 더 힘들고 버거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으로 정말 알게 되는 것은 나름의 타이밍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그리하여 이해라는 건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선명하고 명확한 무언가가 아니라, 말로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스며듦 같은 것.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게 진짜 엄마의 지난 삶을 위로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중략...)
"이제......"
단 한마디를 전하고 싶어서 그녀를 만나러 왔다.
"엄마를 이해해요."
정적이 흘렀다. 은하의 눈가에 물기가 고였다. 그녀는 손을 내밀어 지민의 손끝을 잡았다.
(p.271, 「관내분실」 중에서)
한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 노인이 된 안나는 이미 폐쇄된 우주정거장에서 가지고 슬렌포니아 행성계로 떠나려 한다. 누가 봐도 그런 낡은 우주선으로는 그 먼 곳에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사랑했던 사람들의 생사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녀에게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그곳에 남편과 아들이 있기에 그녀는 떠나기로 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들에게는 비이성적이고 무모한 선택처럼 보일지라도 그녀에게는 ‘함께’이기 위한 결정이었을 테니까. 그 선택, 그 마음만으로도 우리는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빛의 속도를 넘어 서로에게 닿아 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