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책을 읽다
  • 작별
  • 한강 외
  • 10,800원 (10%600)
  • 2018-10-19
  • : 7,922

 

  하얀 눈이 내릴 때마다 손을 내밀어 본다. 그러면 깃털같이 가볍고 폭신해 보이는 그것은 손에 내려앉자마자 사르르 녹아 없어진다. 눈(雪)은 그처럼 묘한 매력이 있었다. 새하얀 절경으로 아름다움을 선사하면서도 차가움이란 속성 때문에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해야만 좀 더 오래 두고 볼 수 있다. 놓치고 싶지 않다고 두 손에 힘을 쥐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빨리 사라져버릴 뿐이다.
  2018년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의 수상작 <작별>은 바로 이러한 점을 잘 담아냈다. 이 작품은 벤치에 앉아 깜박 잠들었다 깨어나 보니 눈사람이 되어버린 여자의 이야기로 시작되는데, 이런 일이 생기면 놀랍고 당황스럽고 무서울 법도 하건만, 여자는 오히려 담담하고 차분하게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한강 작가는 눈사람이 된 그녀를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양쪽 모두와 호흡하며 그 순간순간들이 얼마나 애틋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슬픈지 섬세하게 그려나간다. 그리고 이 책은 이 책은 「작별」 외에도 6편의 수상 후보작을 담고 있어, 다양한 작가의 개성 넘치는 글들을 한데 모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차라리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냐고 억울해하거나 아는 사람이라도 잡고 하소연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그녀는 자신이 눈사람이 되었음을 인정하며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직감할 따름이다. 그래서 그 모습이 글을 읽는 이로 하여금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했던 것 같다. 특히 아이가 걱정할까 봐 일부러 밝게 말한다거나 하룻밤 지나면 괜찮아질지도 모른다고 말했을 때, 부디 그녀의 시간이 좀 더 이어지기를 기도하는 마음이었다.

 

그녀가 아이를 안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의 팔이 그녀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마주 안았다. 순간 그녀의 왼쪽 가슴이 더워졌다. 얼어붙은 줄만 알았던 눈두덩 안쪽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새어 나오려 하는 것을 느꼈을 때 그녀는 아이를 안았던 팔을 풀며 말했다.
현관문 닫아야겠다. 공기가 너무 따뜻해.
아이가 돌아서서 현관문을 닫는 짧은 시간 동안 그녀는 열여덟 평 아파트의 내부를 일별했다. 그녀가 소유해온 모든 사물들이 그 안에 있었다. (「작별」, p.37)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졌지만 체감하는 속도나 양과 질은 저마다 다른 삶의 시간들.
그 시간은 유한하지 않음을 다시 한 번 느끼며, 조금만 더 버텨주기를 얼마나 바라고 또 바랐는지 모른다. 모든 것이 아스라이 흩어지기 전에.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