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적 인간의 후예, 하비
박쥐 2002/02/13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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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서를 읽을 때면 예외 없이 번역이 반역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이 책은 특히나 제목에서부터 그 말을 예증하는 듯싶다. 역자는 본문에서 '바로크'라는 말이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과학혁명과 바로크 문화'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까닭에 대해 해명해야 하지 않았을까. 하다못해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연관성에 대해서라도.
읽는 내내 번역서의 제목과 편집의 상태에 불편해 하면서도 나름대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요즘 들어 과학 혁명 시기에 이루어졌던 과학들이 그 이전 시대의 그것들과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는 연속성 논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까닭이리라. 사실 이 책만큼 르네상스 문화가 혁명기 과학에 남긴 유산들을 짚어내고 있는 책은 드물다. 쿤 이후 많은 주류 과학사가들은 너무나도 간단하게 근대 과학이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의 과학을 전복했다고 기술해 왔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거시적인 관점에서 과학이 점진적으로 진보했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 나는 이 책에서 시도하고 있는 것과 같이 폭넓고도 세밀한 문화사의 관점에서의 촘촘한 기술(thick description)이 과학사 서술에도 유용하다고 말하고 싶다.
이 책에서 하비는 기존의 의학을 한꺼번에 뒤엎은 혁명가라기 보다는 아리스토텔레스 및 갈렌의 전통을 흡수하면서 나름의 방법론을 개척한 동시에 르네상스적 전인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비의 '혁명'은 이전 시대가 남긴 것에 대한 세심한 통찰과 여러 분야에 대한 폭넓은 시야가 사상의 전환을 이루는 하나의 방식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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