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나를 지키는 문장 100일 원문 필사
벤저민 프랭클린이 25년간 모으고 다듬고 쓴, 인생 잠언집
Benjamin Franklin, 이혜진 (옮긴이) 여린풀 2025-11
벤저민 프랭클린이 25년간 모은 문장 모음집입니다. 그런 문장을 따라 쓰는 것만으로도 한 사람의 25년 인생을 손끝으로 더듬는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1732년부터 1757년까지 25년간 매년 발간된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입니다.
찰리 멍거가 평생 존경한 인물이 프랭클린이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책 제목을 ‘가난한 찰리의 연감’으로 지어 그를 기리고, 너무 존경한 나머지 자기 집 정원에 프랭클린 동상까지 세워 두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에 적어보는 분량이 좋습니다. 영어 문장 한두 줄, 그에 대응하는 한국어 번역 한두 줄, 아래에는 적절한 해설이 붙어 있어 하루 서너 개씩 써볼 수 있습니다. 필사를 하다 보면 한 페이지를 꽉 채우고 싶은 욕심에 종이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많이 쓰다 보면 이게 지금 나를 위한 시간인지, 숙제를 하는 건지 헷갈리게 됩니다. 이 책의 분량은 그런 부담을 자연스럽게 덜어줍니다. 해설문도 잘 되어 있어 본문을 옮겨 적고 나서 한두 대목은 더 따라 쓰고 싶어집니다.
번역이 특히 마음에 듭니다. 옮긴이 이혜진 선생이 서문에서 말하듯이 ‘차이를 인식하는 순간, 문장은 전혀 다르게 읽힌다‘가 전체 번역에 스며 있습니다. 영어 원문과 한국어 번역을 나란히 놓고 보면, 단순히 말을 옮겨 놓은 것이 아니라, 단어 하나, 어순 하나가 품고 있던 미묘한 온도 차이를 의식하며 고른 듯한 느낌이 듭니다. 한 문장을 예로 들었지만 다른 문장들에도 분명 비슷한 내공이 숨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됩니다.
영어와 한글이 나란히 놓여 있는 구성도 필사하기에 좋습니다. 영어를 따라 적을 때와 한글을 따라 적을 때 머릿속에서 움직이는 회로가 미묘하게 달라지는 느낌입니다. 영어 원문을 옮겨 쓸 때는 소리와 리듬이 와 닿고 (무슨 뜻인지 모르니) 곧바로 이 외계어같은 단어는 이렇게 쓰이는구나 이해합니다. 다음 아래에 있는 한국어 번역을 적어 내려가면 웬지 영어가 스스로 해석되는 기분이 듭니다. 좌뇌와 우뇌를 번갈아 쓰는 것처럼 한쪽에서는 의미와 어휘를 분석하고, 다른 쪽에서는 운율과 이미지를 즐기게 됩니다.
There are no ugly Loves, nor handsome Prisons.
추한 사람도 없고, 멋진 감옥도 없다. (24p)
Experience keeps a dear school, yest Fools will learn in no other.
경험은 값비싼 학교다. 그런데 어리석은 자들은 오직 경험을 통해서만 배운다. (52p)
Death takes no bribes. 죽음은 뇌물을 받지 않는다. (120p)
There is no little enemy. 하찮은 적은 없다. (152p)
필사의 장점이 있습니다. 눈으로만 읽으면 문장이 한 번에 스쳐 지나가 버리지만, 입으로 소리 내어 읽고 귀로 들으면 그 문장이 몸 안에서 한 번 더 공명합니다. 여기에 펜을 잡고 손으로 적어보면 글자를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읽는’ 상태가 됩니다. 글자 하나하나를 써 내려가면 그동안 놓치고 지나갔던 의미들이 떠오릅니다. 그때에 필사는 단순한 베껴 쓰기가 아닙니다. 문장을 통해 온몸으로 느껴보는 독서가 됩니다.
거기에 오늘은 어떤 펜으로 써볼까하는 설레임이 있습니다. 만년필, 젤리펜, 혹은 연필 등 다양한 종류를 고를 수 있습니다. 펜을 고른 후에 한 줄 한 줄을 천천히 적으면서 되새기다 보면 책을 쓰는 기분까지 만끽합니다.
이 책은 평범한 잠언집이 아니라 100일 동안 매일 자신을 정돈하는 의식이 될 수 있습니다. 한페이지만 적어봐도 그날 하루가 깔끔하게 정리되는 듯이 마무리가 됩니다. 나의 일기가 프랭클린이 알려주는 좋은 글로 덧씌여집니다. 필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해볼만한 프랭클린의 잠언과 영한문 혼용 필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