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hynerius님의 서재

 

강준만의 책을 어느 류로 묶어야 적당할 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요즘 인문사회 계통에는 그 만큼 흥행에 성공하는 작가가 없는 듯하다. 또한 그는 상업주의를 자신이 굳이 지양할 뜻이 없음을 공언하고 있으며 <인물과 사상>단행본 시리즈이래 과도한 다작에서 오는 작품하나의 퀄러티에 대한 독자들의 의구심을 쉽게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아직 많은 강빠(?)들을 거느린 독서시장의 거물로 성장해 있다. 이는 오히려 우리나라 인문사회 쪽으로 정말 실력있고 성실한 작자들이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런 류의 가벼운 농담을 곁들인 현대사류들이 권위있는 교양서역할을 대신하는 것이 아닐까? 그 나마 다행인것은 강준만의 자료실에는 학자들의 논문은 물론 일반 대중매체, 역사적 사료가 될 만한 갖가지 자료들이 무려 1만여 개의 테마별 파일 속에 정리되어 있다고 한다. 이 정도라면 비전공자인 강교수도 한국현대사를 논할 자격은 있지 않은가 싶다.

한국현대사에 관하여 대학시절 기억나는 책은 강만길의 <고쳐쓴 한국현대사>, 박세길의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정도다. 지금와 생각하면 강만길의 책은 너무 학술적이라 따분하고 박세길은 친북적이고 다분히 선동적 관념사관으로 문장이 거칠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강준만의 책은 흥미 본위의 사건을 많이 첨가했으며 저자 자신의 주관적인 역사의식이 과도하다고나 할까. 그는 마치 역사상의 실존인물들이 자신의 취향과 기호에 맞추어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한 면에서 그의 독특한 양비론이 이 책 전편을 휘감고 있다. 박정희의 기회주의도 문제지만 장면의 무능도 그에게는 도저히 봐줄 수 없는 문제다. 춘추전국의 대사상가인 한비자는 요를 칭송하는 동시에 순이 풍속을 바로잡았다는 유가의 주장을 모순이라 하였다. 그런데 강준만은 쿠데타세력과 장면을 번갈아 칭찬하기도하고 비난하기도 하는점이 의아하다. 저자에게 한가지 질문을 하고 싶다면 과연 저자가 516을 긍정으로 보느냐 부정적으로 보느냐에 대한 것이다.

어쨌든 나름대로 강준만은 균형적인 입장에 서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나름대로 박정희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면들을 실었고 장면을 위한 상당한 분량의 변명거리와 또한 그의 한계에 대해 나름대로의 답을 내놓고 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내가 저자의 서문에 조금도 동의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는 박정희를 말하여 마치 한국적 기회주의자의 대표인 듯이 묘사했는데 나는 그것이 저열한 포퓰리즘정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무슨 박빠라도 된 듯 생각할 지 모르겠으나 나도 박정희를 별로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의심할 바 없이 박정희는 합법적 민주정부를 폭력으로 뒤엎고 민중위에 군림한 폭군이고 독재자이며 옛날같으면 삼족을 멸할 역적이다. 하지만, 박정희를 좀더 깊숙히 연구해 본 사람이라면 그런 이면에 나라의 대통령으로서는 할일을 했다는 점을 쉽게 무시할 수가 없고 바로 그 점 때문에 박정희에게 침을 뱉기가 망설여 진다. 요를 말하면 윤보선이 516을 올것이 온 일종의 당위라 인정하여 당시의 상황을 말했듯 그 이후의 상황도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할일을 한 것 뿐었다. 나는 박정희정도의 인간을 가지고 기회주의자로 평가하는 것에 찬성할 수가 없다. 물론 포퓰리즘적으로 표피적인 면만 들여다 보면 천왕에게 혈서까지 쓰고 황군 장교로 자원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민족지상과 민족적 민주주의를 외쳤으니 대단한 위선이고 기회주의라고 봐줄 수도 있다. 인간이기에 물론 실수도 있었고 대통령 한 번 더 하려고 지역감정까지 부추긴 야비함도 있었지만, 박정희시대를 잘 들여다보면 의심할 바 없이 그가 대통령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최선을 다한 사람과 기회주의자가 동일시 될 수가 있는지 한국적 포퓰리즘을 오히려 단죄하지 않을 수가 없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