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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수님의 서재
  • 밤의 여행자들
  • 윤고은
  • 12,600원 (10%700)
  • 2013-10-11
  • : 6,837
‘밤의 여행자들’ - 윤고은 장편 소설

작가는 ‘재난 여행’이라는 소재를 사용하여 사건을 전개시킨다. 나는 이 재난 여행이라는 소재가 우리 주위에서 흔히 접하는 ‘불행 포르노’의 한 종류로서 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행한 일을 겪은 이들을 더욱 비참하게 표현하여 위안을 얻는 것.
소설 속 사람들은 재난 여행 상품을 통해 재난이 일어난 장소에 찾아가 관광 및 봉사를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이들 (관광객 혹은 봉사자들) 은 우습게도 위안을 얻는다. 그리고 이와 동반되는 동정심으로 재난 지역의 주민들은 살아간다. 더 큰 재난이 일어난 지역일수록 많은 관광객이 그 지역을 찾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돋보이지 않는 ‘재난 상품’은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잃고 인기가 떨어지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인공 ‘고요나’는 ‘무이’라는 지역으로 파견된다. 그녀는 회사에서 입지가 좁아진 상태였고 이로 인한 불안감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철저하게 방관하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회사의 상사에게 성희롱을 받은 그녀는 다른 피해자들을 만나게 되지만 그들과 시위를 함께하지는 않는다. 비록 그 사건에 관련된 인물이지만 멀리 떨어져 바라보며 그녀는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무이’로 간 주인공은 여행을 하고 돌아가는 날 가이드와 떨어져 길을 잃게 되고 짐마저 잃어버린 채로 다시 그녀가 묵었던 숙소로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정글’의 직원이라는 사실을 안 매니저는 그녀에게 은밀한 제안을 건넨다. 재난을 조작하는 일에 그녀를 가담시키려고 한 것이다. 그녀는 망설이지만 이내 수락한다.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과정은 철저한 분업 체계인데, 여기서 나는 ‘현실적으로 이 상황에 내게 닥친다면 저렇게 행동할 수도 있겠다.‘ 고 생각했다. 만약 직접적으로 사람을 죽이라고 한다면 할 수 없겠지만 단지 재난 여행의 새 프로그램을 맡을 뿐 이라고 생각한다면 별 것 아닌 일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재난을 수치화, 상품화 시키는 것의 위험한 단면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재난을 조작하는 프로그램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고요나는 ‘럭’을 만나게 된다. 그를 따라 무이의 이곳 곳을 돌아다닌 그녀는 어느 순간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주인공은 럭이 일요일에 그들이 일으킬 싱크홀 재난 시나리오에 피해자로 설정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매니저에게 부탁해 그를 다른 지역으로 빼돌린다. 그 때 쯤 그녀는 싱크홀 프로그램이 ‘악어’라는 주민들을 대거 희생시키는 프로그램임을 애써 모른 척 해왔음을 깨닫는다. 자신의 눈 앞에 벌어지지 않은 일이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나 또한 어떤 사고가 뉴스에 보도 될 때 그 현장에 있지 않았으므로 단지 수치로 그 사건을 재단했음을 새삼 느꼈다. 만약 사고 현장에 있었더라면 그 비극이 더욱 와 닿겠지만 다른 이의 슬픔 그 자체에 동화되는 것은 쉽지 않다. 그저 한 발짝 떨어져 그 상황을 바라보고 소비하는 것이다.
그녀가 사랑에 빠진 럭에게 고요나는 싱크홀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고 주민들을 대피시킬 장소를 말해준다. 럭은 주민들에게 사실을 알리고 계획대로 무이를 잠시 떠나 안전을 확보하고 그 곳에서 주인공을 만나기로 약속한다. 그 때 고요나는 자신이 싱크홀의 피해자 역할 ‘악어75’로 설정되었음을 알고 이 곳 저 곳 헤매며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상황은 좋지 않게 흘러가고 결국 주인공은 무이에서 흔히 일어나며 그녀 또한 목격했던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그녀는 싱크홀 프로그램에서 ‘고요나’라는 역할이었으나 갑작스레 ‘악어75’라는 역할로 변하여 재난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되었고 그 간극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주인공은 죽음을 맞이하고, 싱크홀과 쓰나미가 겹쳐 쑥대밭이 된 무이를 찾은 사람들은 이제 고요나와 그의 연인 럭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다. 그녀와 그에게 일어난 비극이 감동적이고 슬픈 재난 여행 상품으로서 가치를 가지게 된 것이다. 피폐한 삶을 강조하여 많은 관심을 얻고 많은 돈을 얻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사람들의 인식 에서 타인의 비극은 그 상황에서 한 발짝 떨어진 곳이라면 어떤 동정을 던져도 괜찮은 것이다. 진실한 공감이 결여되었던 주인공이 방관자의 위치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통해 우리 자신에게 물음을 던지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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