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친구네서 잤던 첫 날 밤 기억이 생생하다.
친구와 나란히 누워 밤 늦게까지 안자고 떠들며 만끽했던 자유와 해방감,
당시까지만해도 드물었던 폭신한 침대에서 누워 자는 호사스러운 느낌까지.
그 땐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친구의 매우 개인적인 공간인 잠자리에 초대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특별 대우를 받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한나절 놀기 위한 방문과는 다른 차원의 친밀감이 느껴졌고
실제로 그 밤 이후로 친구와의 우정은 더욱 끈끈해졌다.

이 그림책은 그토록 사적이고 특별한 아이들의 잠자리를 보여준다.
아직 친구네서 자고 온 경험이 없는 우리집 아이들에게는 다른 아이들의 잠자리가 흥미롭게 다가올 수 밖에 없다.

두어명을 제외한 책 속의 아이들은 모두 이미 잠들어 있다.
아무 말도, 행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자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책 읽는 소리도 소곤소곤해진다.
큰 소리를 냈다가는 잘 자는 아이들을 깨워버릴 지도 모르니까.
잠자리 동화로 아주 제격.


아이보다 먼저 이 그림책을 혼자 읽어보았을 때는, 마음이 한 켠이 짠했다.
모든 아이가 안전하고 평화로운 잠자리를 누리지 못하는 현실 때문이었다.
(병원에 입원한 아이가 잠든 그림을 보면서는, 둘째 아이가 병원에 입퇴원을 반복하던 시절이 떠올라 코끝이 시큰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내 아이는 책 속 아이들의 잠자리를 있는 그대로 아이답게 받아들인다.
초원에서 자는 아이들은 별을 바라보다 잠들 수 있어 좋고,
배에서 자는 아이들은 바다 속 생물들과 함께 잘 수 있어 좋고(우리집 큰 아이는 바다생물을 좋아한다),
일에 지쳐 쓰러져 자는 아이는 이제 쉬는 시간이라 좋을 것 같다는 식이다.
편견 없는 순수한 시선이 신선하다.
어디에 있든 그게 누구든 잠은 모두가 공유하는 공통된 일상이다.
그 일상을 공통분모로 하여 다양한 배경의 아이들을 담은 <달님이 보여준 세상>은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상황 뿐 아니라 장애와 종교를 모두 아우르고 있다는 점에서
제목 그대로 "세상"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맞다.
따로 또 같이 자고 있는 아이들을 상상하며 꿈나라로 떠난 아이가
편견 없는 사람으로, 모두의 안녕을 바라는 따뜻한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란다.
잘 자 아이야, 이 세상 모든 아이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