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단에 당첨되어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실체 엽서를 모은 다는 것을 이 책을 보며 처음 알았다. 누군가 이미 작성하고 보내진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지만, 그 짧은 글 속에 담긴 여러 감정들이 시대를 대변하기도 하며, 역사의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니 실체 엽서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이 실체 엽서 한 장으로 역사의 한순간 속으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체육시간이 끝나갈 무렵, 기환은 운동장에 뒤엉킨 친구들 사이에서 누군가 힘껏 공을 차는 순간 눈에 불꽃이 튀며 자신의 안경알이 깨져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렇지만 그때 공을 찬 아이는 없었다는 말을 듣고 그것을 이상하게 여긴 친구들과 최면으로 그 순간을 기억해 내려고 하는데, 오히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세계의 문이 열리는 것을 경험하며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등교하는 시간을 절약하겠다는 기웅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학교에서의 취침.
그날, 밤 학교에 남아 잠을 청하던 기환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12번의 괘종시계 소리를 들음과 동시에 칼을 든 사내가 복도의 짙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책상 밑으로 몸을 숨긴다. 그때 "빨리 가자! 곧 기차가 도착할 시간이야."라며 누군가 기환을 이끈다. 잠시 후, 기환은 전날 운동장에서 보았던 아이와 채가구역 승강장으로 이동하게 된다. 1909년, 이때는 안중근 열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기 위해 하얼빈으로 이동했던 시점이었다. 이처럼 매일 자정이 되면 학교는 아이들을 역사의 현장에 데려다 놓으며 생생한 경험을 하게 만든다.
이미 알고 있는 역사의 장면들 속으로 직접 들어가는 경험은 읽는 이에게 깊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아이들은 밤의 학교에서 권기옥, 윤동주, 김구, 안창호 등의 독립운동가를 만난다.
나라를 되찾겠다는 의지로 외로운 싸움을 하던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싶은 마음이 그려져 있으며 그들이 다칠까 봐 혹은 일이 잘 못 될까 봐 함께 노심초사하는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섬세하게 담겨있다.
또한 이 소설은 주인공 기환이 동아리 연합 축제에서 공연할 시나리오를 쓰고 연습하는 장면이 교차적으로 등장한다. 그 시나리오는 독립운동에 관한 이야기로 타임슬립으로 경험하는 일제강점기의 그 순간들과 맞닿아있고 학생들의 연극과 오버랩 되어 이야기는 더 역동적으로 전개된다.
축제 때마다 유독 사이가 좋지 않았던 문예부와 연극부. 그 누구도 왜 사이가 좋지 않은지 그 실체를 알지 못하며 선배들에게 일방적으로 물려받은 미움을 후배들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기웅과 기환은 경쟁할 때보다 협력할 때 더 즐거운 일이 많이 생긴다는 것을 알기에 문예부가 글을 쓰고 연극부가 연출을 그리고 밴드부와 풍물패는 노래와 음향을 맡는 것으로 각자의 역할을 나눈다.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동아리들이 연합하고 협동하는 모습은 과거의 독립투사들의 협력하여 독립이라는 역사의 순간을 만들어 냈듯이 현재에도 그 협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일본 덕분에 우리나라가 발전한 건 사실이지않아?"라고 던지는 말.
"물론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우리 민족을 탄압하고 수탈한 건 알겠어. 하지만 우리가 근대화를 이루는데 일본의 도움이 컸던 것도 인정해야하지 않을까? 일제강점기를 꼭 나쁘게 볼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해."라며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태원.
"갑신정변과 동학농민혁명에 대해 배웠잖아. 그때 이미 우리 스스로 모든 백성은 평등하다고 외치고 있었어. 시간은 좀 더 걸렸을지 모르겠으나 충분히 우리 스스로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었어."라고 이야기하는 은서.
"생각은 다를 수 있지. 아마 자세히 얘기해 보면 일제강점기를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씩은 차이가 있을거야. 나는 일본이 무조건 나쁘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야. 반일 감정을 자극하거나 애국심에 취해보자는 것도 아니야. 다만 일제강점기라는 어두운 역사를 통과하면서 자신의 삶을 희생해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자 했던 사람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그들의 선택에 관해 애기해 보고 싶은 거지."라며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드러내 보이는 인물들의 대화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곱씹어보게 한다. <p136.137>
" 3.1운동 때는 송죽회가 태극기 수백 장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나눠줬대.
당시에는 이게 다 목숨을 걸 고하는 활동들이었어."
태극기를 만드는 것으로, 태극기를 흔드는 것만으로 일본군을 죽일 수는 없다. 그러나 일본군의 손에 죽을 수는 있다. 무얼까 그들을 이 무모한 싸움에 끌어들인 것은. 아니 무력한 상황 속에서도 그들에게 이 싸움이 바로 자신의 것임을 받아들이게 한 무언가는.
p.69.70
나라를 위했던 그들의 마음과 의지를 생각을 해볼 수 있도록 하는 문장이다.
나라면 저 태극기를 만들고 흔들 수 있었을까? 자문해 본다. 절대 자신이 없다.
그래서 그들의 희생에 더 감사하다.
<밤의 학교>에는 역사적 사실이 인용되고 사건들이 전개되지만 단지 지나간 과거를 회상해 보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정신이 현재에 이어져 우리의 삶을 좀 더 올바르게 이끌어 가는 힘을 가질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한다.
과거가 있었음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
그 과거의 아픔을 함께 느끼며, 외롭고 무서웠을 그들에게 혼자가 아니었음을 지금에라도 이야기해 주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담겨있다.
역사 판타지 소설. <밤의 학교>는
아이 어른 모두에게 역사 교과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관심의 폭을 넓혀 줄 수 있는 간접 경험의 장을 제공해 준다.
"백범 김구 선생이 유관순 열사를 안아주다"
"백범 김구 선생과 유관순 열사는 서로 만난 적이 없습니다.
당시 유관순 열사의 나이는 열일곱.
3.1운동 중 부보님이 헌병에게 살해당하고
자신도 차가운 감옥에 끌려가 고문 당하며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저는 유관순 열사가 혼자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무후선열제단에 위패를 모신 분들에게도,
애국지사 묘역에 잠들어계신 많은 분들에게도 말입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