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석 구석 예쁜 말들과 마음 깊은 곳에 울림과 공감을 남겨주는 이야기들로 가득 찬 이 책을 다 읽고 목차를 다시 보는 일에서 전영애 선생님이 글로 그려낸 그림이 눈앞에 전시되고 있는 느낌이 들었었습니다.
평생을 독일 문학을 공부하며 살아 온 선생님의 삶은 어땠을까? 그분이 만들고 계신 괴테 마을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등의 호기심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지만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을 넘어서 큰 가르침을 얻은 것 같고, 그리고 손해 보지 않도록 굳이 애쓰지 않아도 그저 선한 결단 속에서 묵묵히 가다 보면 무엇이든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삶에 담고 살아가고 계시는 모습 속에서 닮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길은 시작되었다. 여행을 마저 하라"
"낯선 세계가 하나 열려왔어요." 라는 제목은 가슴을 설레게 하는 문장이었습니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순조롭게 유학을 가고 박사 학위도 척척 받았다면 아마도 '공부 끝났으니 이제 대접을 받아야지'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늘 부족했기에 여건 하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야 했지요." 모자람이 가져온 탐구력을 발휘하신 걸까요? 지금의 세대에서는 너무나 많은 정보가 활자화되어 인터넷 세상을 통해 넘쳐 나며 그 옥석을 가리기 위해 허비 되는 시간이 아깝기도 합니다. 이럴 때 차라리 기본을 찾아서 처음부터 내가 해내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알맞은 것 같은데 전영애 선생님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같은 속도와 같은 열정을 고르게 배분하며 그분에게 열려온 세계에 잘 참여하여 삶 전체에 독일 문학을 녹아들게 하신 것 같아요.
"그냥 언어를 하나 배운 게 아니고 어느 사이 세계 하나가 제게로 왔더군요. 낯선 세계가 하나 열려왔어요. 엄청난 작가들을 읽게 됐고, 거기서 끝이 아니라 온갖 학계에 이리저리 가봤더니 같은 작가를 공부하고 읽은 사람들은 또 바로 다 친구가 돼서 넘나 좋은 친구들이 세계에 널려 있구요. 그 만큼 간절했기 때문에 지금도 이해관계가 전혀 작동 하지 않고 그냥 정말 죽는지 사는지 모르고 끝없이 몰두하곤 합니다. 어찌 보면 참 바보짓이지요. 그런데 거기에서 오는 득이 어마어마해요." 득을 취하려 하지 않았는데 저절로 굴러 들어오는 것들을 잘 나누고 살고 계시는 모습이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배움이 계속되는 것이 삶을 더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는 힘이 되어 주고 있는 것을 교수님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냥 언어 하나를 제대로 배워낸 경험이 가져온 나비 효과인가 봅니다.
이야기 꾼이시네요. 괴테를 연구하시며 그의 삶을 온몸에 담으시고는 삶의 지혜를 괴테의 책을 인용하며 이야기를 해 주십니다. <파우스트>에서 "전율은 인간의 최상의 부분"이라는 말을 통해서 진정한 관심이 삶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충분한 동기가 된다고 이야기 해 줍니다. 그의 방대한 문학을 미처 담지 못하고 있던 제게는 대문호에게 다가가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더불어 '막막하고 출구가 없을때' 라는 부제로 프란츠 카프카를 설명해 주시고 독일 문학에 젖어갈 수 있도록 해주셨네요. 어려운 고전을 읽기 전에 괜찮아 편안하게 읽어도 돼 라고 안심 시켜주는 듯한 힌트 같은 문장들을 이야기 속에 담아 주십니다.
시간에 대하여. "누구에게나 하루는 스물 네시간입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쓸 것 인가는 나의 결단이고요. 먹고 사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들여야 되기 때문에 남는 시간은 정말 얼마 안되니 더 소중합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그 귀한 시간에 가기만의 생각을 일을 꾸준히 해가며 그렇게 자기 세계를 만들어간다는 건 힘들 뿐만 아니라 너무나 외로운 작업입니다. 그러나 그 고단함이나 외로움은 꼭 견디어야 합니다. " 하고 싶은 것들을 해내기 위해서 시간 활용을 잘 해야 한다고 말해 주십니다. 더 잘 해야 겠습니다.
마음이 풍요로운 삶과 현재 진행형의 작업들을 하며 즐겁게 살고 계신 이유는 다른 곳에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탈리아에서 보낸 편지에는 <이탈리아 여행>을 번역하게 된 이유가 들어 있습니다. 이탈리아에 머무르며 괴테가 가는 여정을 따라가며 번역한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을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기 속에 전영애 선생님이 발자국이 깃들어 더 흥미로울 것 같네요.
괴테를 만났다는 행운 "나이가 들면서 좀 더 깊어지고, 좀 더 높아지고, 좀 더 넓어지는 사람은 참드믑니다. 드물지만 종종 만났습니다. 그런데 나이들수록 새로워지는 사람은 처음이었어요. 그 사람이 괴테입니다. 늘 호기심에 가득 찬 동시에, 정말 대단한 꾸준함까지 겸비한 사람이었지요. 내가 만난 사람이 나를 다시 만들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내가 새로워지는 사람이면 나를 만나는 사람도 새로워지는 것을 염원한사람일 수 있겠습니다.
바이마르에서 보내는 편지 마지막 부분에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주셨습니다.
" 많은 경륜과 지식을 갖고도 정년만 되면 다 손 놓고, 어쩔 줄 몰라 할 일이라곤 없는 양 두리번거리는 듯한 분들이 한국사회에서 유난히 많이 보이는 듯 합니다. 아마도 첫 번째로는 하던 일이 너무나 힘만 들었던 탓이겠고, 또 어쩌면 하는 일과의 진정한 관계를 정립해보지 못한 채로 손을 놓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혹여 누군가를 비난 하려는 말은 아닙니다. 누구든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든, 어떤 작은 일이든, 오랫동안 함께할 의미와 보람을 찾아 천천히 쌓아가는 지혜,바로 그런 지혜가 절실하게 요청되는 단계에 우리 사회가 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 오랫동안 함께할 보람을 찾아 또 다시 움직일 동기를 주십니다.
곁에 두고 듣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