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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부터 이유 없는 차별과 경계, 혐오를 공기처럼 들이마신 사람이 있다.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 어머니, 그리고 피부가 파란 ‘재일’이다. 그런 재일을 본 사람들이 인사처럼 건네는 말은 “너는 왜 파래? 외국인이야? 입양이야?”라는 질문이고, 이름 대신 불리는 건 “아바타, 스머프, 도라에몽, 돌연변이”라는 별명이다.
“온갖 인종이 사는” 미국이라면 한국보다 조금은 더 살 만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품고 이민을 가지만, 파란 피부를 향한 근거 없는 폭력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일 뿐이다. 파란 피부에 경계의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은 “자신이 느끼는 두려움과 차별에 합당한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 언론은 연일 런던에서 발생한 사제 폭탄 테러 사건, 미국 메인주 총기 난사 사건의 당사자가 모두 ‘파란 피부’임을 앞다투어 강조하고, 파란 피부의 강도나 절도, 방화 사건을 보도하는 데 더 긴 시간을 할애한다. 그럴수록 ‘파란 피부는 태생적으로 위험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의심은 확신으로 둔갑해 재일에게 결코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긴다.
『멜라닌』을 읽으며 수많은 ‘파란 피부들’이 떠올랐다. 사회가 정한 ‘정상성’이 아니라는 이유로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말이다. 고유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차이’를 비정상으로 만드는 세계에서 우리는 언제고 가해자이며 동시에 ‘재일’이다. 결국 자신과 같은 블루멜라닌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재일을 순정한 마음으로 응원하게 되는 건 이 때문이다. 자신의 정체성에 힘을 싣고 앞으로 걸어가는 재일의 행보야말로 훼손된 포용과 신뢰를 회복하고 싶은 우리가 실천할 가장 명확한 용기일 테니까. 책을 덮고 나니 어쩐지 가로막혔던 시야가 서서히 맑아지는 기분이다. 그 앞에는 어쩌면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의 실마리가, 그리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으로 자유를 찾은 재일이 서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