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진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있고 우회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있으며, 제자리걸음을 오래한 뒤에야 한 발을 내딛는 용기를 가진 사람도 있고 단번에 성큼성큼 뛰어가는 용기를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혼자서도 우뚝 서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있고 여럿이서 바닥에 눕는 용기를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p.35)
/‘용기의 씨앗’ 中
며칠 전, 유병록 시인이 쓴 산문을 보고 저는 살포시 위로받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는 그동안 위로가 멀리서 저에게 다가오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나 봅니다.”라는 말 끝에 시인은 더는 위로를 기다리지 말고 위로를 찾아 나서는 건 어떠냐고 물어옵니다. 어떤 물음은 가장 현명한 대답 같은 것이어서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위로는 기다리는 게 아니라 찾아 나서는 거로구나. 한 사람에게 안부를 묻게 되었습니다. (p.55)
/ ‘엄마라는 말’ 中
창비 블로그에 연재됐던 ‘김현 시인의 시 처방전’이 책으로 나왔다. 블로그에 연재될 당시에도 다양한 사연에 걸맞은 시와 함께 ‘현명한 대답 같은 물음’으로 정확한 처방을 내려주시던 김현 시인님의 글에서 큰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나는데, 책이라는 물성으로 만나 다시 한번 읽으니 위로의 깊이가 더욱 농후해진 느낌이다.
이로써 시 처방전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편의 위로를 전할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게 되면서도, 『당신의 슬픔을 훔칠게요』라는 책의 제목에서 온전한 위로란 슬픔의 자리를 대신할 어떤 감정을 선물처럼 보내주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해보게 됐다.
‘시’와 ‘처방전’이라는 다소 생소한 단어들의 결합은 독자 한 명 한 명이 생각했던 글이 가닿을 수 있는 지점의 한계를 유연하게 확장하며 ‘최선, 최후의 위로는 결국 글’이라는 확신을 심어준다. 뒤표지에 적힌 ‘마음의 온도가 1도라도 올라갔다면, 그걸로 되었습니다’라는 카피처럼 책이 전해준 기분 좋은 온기가 삶의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올 한해의 지반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 느낌이다. 2019년의 첫 책으로 복주머니 같은 책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