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에겐 언제나 도망치고 싶은 대상이 있는걸.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도.”
“이제 내가 있는 옥상은 뛰어내려도 살아남을 수 있는 높이야. 더는 뛰어내리고 싶지도 않고.”
“너라면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모든 사랑 이야기는 사실 절망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그러니 부디 발견해줘. 나와 내 언니들의 이야기를. 너의 운명적 사랑을.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줄 기이한 수단을.”
/정세랑, <옥상에서 만나요>
회사 안팎에서 철저히 ‘을’의 삶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아찔한 높이의 옥상을 찾아간다면 대부분 그리 반갑지 않을 일 때문일 것이다. <옥상에서 만나요>의 주인공 또한 밀려오는 나쁜 생각을 밀어내기 위해 옥상 환풍기를 의자 삼아 쉬던 한 사람이었다. 두세 달 간격으로 줄줄이 결혼한 회사 언니들에게 남편을 불러내는 비책이 적힌 고대의 주문서를 받고 이를 실행에 옮기기 전까지.
<옥상에서 만나요>가 절망에 관한 이야기이자 궁극적으로 사랑에 관한 이야기인 것은, 아찔한 옥상으로 밀어 넣는 절망이 있어야 사랑을 손에 쥘 높이에 오르기 때문이다. 매일 겪는 훈수와 고충을 벗어나기 위해 ‘도피성 결혼’을 생각했던 주인공과 언니들이 서 있는 옥상은 이제 뛰어내려도 살아남을 만큼 낮은 높이에 있다. ‘주문으로 남편을 불러낸다.’라는 비현실적인 방법을 믿고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지옥 같은 현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이야기. 소설과 다를 바 없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편을 부르는 주문서는 없지만, <옥상에서 만나요>가 우리에게 날개를 찾아줄 것이다. 절망을 딛고 올라야 만나는 사랑으로 안내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