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효석 전집 1권을 펼친 날,
책을 읽는다기보다 시간을 건너는 기분이 들었다.
종이의 질감, 사진의 배치,
그리고 문장 하나하나가
요즘의 속도와는 전혀 다른 리듬으로 다가온다.
이 책은 단순히 유명 작가의 작품을 모아둔 전집이 아니다.
이효석이라는 사람의 삶과 시선,
그리고 그가 살았던 시대의 공기를
차분히 복원해 놓은 기록에 가깝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가볍게 넘길 수 있는 페이지는 거의 없다.
전집의 첫 장을 열면
사진 자료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문학마을 봉평의 풍경,
초가와 물레방아,
그리고 오래된 집의 마당.
흑백 사진 속 공간은
이미 알고 있던 작품의 배경을
더 현실적으로 불러온다.
글로만 읽던 장면들이
사진과 겹치며 머릿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이효석의 단편들은
자연을 묘사할 때 특히 빛난다.
그의 문장은 꾸미지 않은 듯하지만
읽다 보면 감각을 하나씩 건드린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끝으로 느끼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그래서 읽는 속도가 자연스럽게 느려진다.
‘추억’이라는 글에서는
기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젊은 시절의 판단과 감정을
지금의 시선으로 재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유난히 오래 남는다.
시간이라는 필터를 통과한 기억은
선명해지기보다
오히려 부드러워진다는 걸
이효석의 문장은 알고 있는 듯하다.
‘주리면’이나 ‘기우’ 같은 작품을 읽다 보면
당시 사람들의 생활이
과장 없이 드러난다.
가난, 분노, 체념,
그리고 그럼에도 이어지는 일상.
이효석은 비극을 드라마틱하게 그리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옆에 앉아
사람을 관찰한다.
그 거리감이
읽는 사람을 더 깊이 끌어당긴다.
전집 1권에 실린 단편들은
지금 읽어도 전혀 낡지 않다.
문장의 호흡은 느리지만
감정은 놀랄 만큼 선명하다.
인물들이 겪는 갈등은
형태만 다를 뿐
지금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읽다 보면
시대 소설이 아니라
사람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이효석이 자연과 인간을
대립적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연은 배경이 아니라
등장인물과 함께 숨 쉬는 존재다.
비가 오고,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부는 장면 속에서
인물의 감정도 함께 움직인다.
그 연결이 억지스럽지 않다.
그래서 문장이 오래 남는다.
이 전집의 구성도 마음에 들었다.
작품만 나열하지 않고
사진 자료와 설명을 적절히 배치해
읽는 흐름을 끊지 않는다.
마치 문학관을 천천히 둘러보는 느낌이다.
사진을 보고,
글을 읽고,
다시 사진으로 돌아오게 된다.
책을 읽으며
이효석이라는 작가가
단지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로만
기억되는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전집은 그 인식을 자연스럽게 바꿔준다.
그의 세계가 얼마나 넓고,
섬세하고,
또 인간적인지를
차분히 보여준다.
요즘처럼 빠르게 소비되는 글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이효석의 문장은
처음엔 낯설 수 있다.
하지만 몇 장만 넘기면
그 느린 호흡이 오히려 편안해진다.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느낌.
읽다가 멈춰도 괜찮다는 여유.
전집 1권은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물론,
오랜만에 깊이 있는 글을 읽고 싶은 사람에게도
좋은 선택이다.
한 번에 다 읽지 않아도 된다.
하루에 한 편씩,
혹은 마음이 가는 페이지부터 읽어도 좋다.
어디서 펼쳐도
이효석의 문장은
조용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진 자료 덕분에
이 책은 소장 가치도 충분하다.
읽고 나서 책장을 덮을 때
문학 작품 하나를 읽었다기보다
한 시대를 다녀온 기분이 든다.
그래서 쉽게 정리하지 못하고
자주 꺼내 보게 될 것 같다.
이효석 전집 1권은
단편소설 모음집이지만
그 이상의 역할을 한다.
작가의 삶,
시대의 공기,
그리고 문학의 본질을
차분히 되새기게 만든다.
빠르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오래 남는 책이다.
읽고 나서도
문장 하나가
일상 속에서 불쑥 떠오른다.
그게 이 책의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