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슈퍼히어로’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하여
오조 작가의 『히어로 프로듀서 퇴사하겠습니다』는 익숙한 히어로물의 틀을 깨고, 그 이면의 사람들—히어로를 ‘만드는 사람들’—의 세계를 유쾌하고도 뭉클하게 그려낸 K-히어로 판타지 소설이다. 슈퍼 파워나 거대 악당이 아니라, 이름 없는 조연들의 분투와 연대, 그리고 ‘사람 냄새’ 나는 드라마가 이야기를 이끈다. 이 책은 단순히 장르 소설이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의 가치와 윤리에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 히어로의 ‘뒷모습’을 만든다는 설정이 신선하다
책의 배경은 ‘히어로 프로듀서’라는 독특한 직군이 존재하는 세계다. 이들은 세상에 필요한 영웅을 선별하고, 그들의 이미지를 기획하며, 대중에게 신뢰를 심는 역할을 한다. 얼핏 보면 연예기획사의 매니저나 이미지 메이킹 전문가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히어로 시스템을 떠받치는 ‘숨은 조력자’들이다.
주인공 조영은 바로 그 히어로 프로듀서다. 그는 매년 새해마다 ‘퇴사’ 의지를 다지면서도, 여전히 히어로들과 일하며 소진되고 지쳐간다. 조영의 이야기는 ‘사명감과 생계’, ‘가치와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잃어가는 모든 현대인의 초상처럼 그려진다. 특별한 사건 없이도, 그의 피로감은 리얼하고 절절하게 와닿는다. 이 책의 재미는 바로 이 비범한 세계관 속의 평범한 고민에 있다.
✔ 3부 구성: 그만둬야 할 순간, 붙잡아야 할 것, 그리고 함께해야 할 시기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누구에게나 그만둬야 하는 순간이 온다
이 부분에서는 조영이 히어로 프로듀서로 일하며 겪는 권태와 좌절, 그리고 인간적인 갈등이 중심이다.
“세상은 아무리 발견해도 보편해야 할 히어로들이 많지 않다”는 대목은 현대 사회의 자격과 선별의 문제를 풍자적으로 건드린다.
2부: 누구에게나 붙잡아야 하는 것이 있다
이 부에서는 일터에서의 관계, 책임감, 그리고 진심이라는 가치가 중심이 된다.
“지심아, 바가지 얼른 언니한테 줘. 너무 빨라는 말고 조금만 빨리” 같은 문장에서는 인물들의 리듬과 감정이 구체적인 사물과 언어로 정교하게 묘사된다. 피로한 인물들이 ‘일’을 매개로 나누는 교감이 따뜻하다.
3부: 누구에게나 함께해야 하는 시기가 온다
마지막 부는 연대의 의미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영웅이란, 처음부터 영웅이 아니며, 영웅으로 이어 나가는 행위를 뜻한다”는 문장은 이 책의 철학을 가장 잘 보여준다. 영웅이란 존재가 아니라 실천이며, 그 실천은 특별한 힘이 아닌 ‘의지’에서 비롯된다는 메시지가 강렬하게 전해진다.
✔ 영웅은 누가 만드는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영웅은 누가 되는가?”가 아니라 “영웅은 누가 만드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되묻는다는 점이다. 그동안 히어로 장르가 주목했던 인물은 초능력자, 싸움꾼, 구세주였다면, 이 작품은 그 주변의 이름 없는 사람들—조율자, 보좌자, 기록자, 때론 방패막이인 존재들—에 집중한다. 이는 곧 영웅 서사의 탈중심화이자, 주변인물들의 복권이다.
특히 히어로 프로듀서라는 설정은 언론, 정치를 포함해 '이미지를 기획하는 사람들'의 역할을 은유한다. 실제 세상에서도 대중은 언제나 특정 인물을 ‘영웅’으로 믿고 소비하지만, 그 이미지의 생산과 관리, 편집에는 무수한 손길이 작용한다. 이 소설은 그러한 현실의 메커니즘을 장르적 상상력으로 풀어내며, 독자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 유쾌함 속의 따뜻한 공감, 그리고 사회적 질문
『히어로 프로듀서 퇴사하겠습니다』는 분명히 가볍고 빠르게 읽힌다. 재치 있는 대사, 유머러스한 설정, 귀여운 일러스트까지 독자의 몰입을 돕는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사회 구조 속에서 인간이 겪는 피로, 존재의 무게, 인정 욕구, 윤리적 혼란 같은 깊은 주제들이 서려 있다.
조영이라는 인물은 특별하지 않다. 오히려 너무나 평범하고, 소심하고, 쉽게 상처받는다. 그렇기에 그의 여정은 독자에게 실감나게 다가온다. 독자 자신이 회사원, 활동가, 기획자, 교사, 혹은 ‘누군가를 돕는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는 곧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것이다.
✔ 작가 오조의 데뷔작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
이 작품은 오조 작가의 첫 장편 소설이다. 그는 동국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2023년 한경가족 스토리 공모전 ‘로맨스 도파민’에 단편 <행운을 빌며 한가 밤>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신인답지 않게 세계관 설정은 탄탄하고, 인물 간의 감정선은 섬세하다. 특히 '소설 쓰면서 목구멍에서 불이 나는 걸 좋아한다'는 작가 소개처럼, 에너지와 열정이 글 전반에 살아 숨 쉰다.
✔ 총평: 히어로물이 아니라, 히어로를 만드는 모두의 이야기
『히어로 프로듀서 퇴사하겠습니다』는 ‘영웅’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너무도 가볍고 유쾌하게 풀어낸다. 하지만 그 끝에는 묵직한 울림이 있다. 사회 속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졌던 연대와 진심, 그리고 *‘누군가를 빛나게 하기 위해 내 삶을 써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이 소설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은 아직도 히어로를 원하지만, 그 히어로가 당신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추천 독자
‘히어로물’은 식상하다고 생각했던 독자
일터에서 번아웃을 겪고 있는 직장인
조연이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들
일과 사람 사이에서 방향을 잃은 누군가
한 줄 요약
: “히어로가 되지 않아도 괜찮아요. 당신이 만들어낸 세계가 이미 충분히 빛나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