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는책들 #구채은
벌써 나도 15년 차 직장인이다. 첫 직장에서 3년 반. 몸이 너무 안 좋아져서 완전히 다른 분야로 이직했다. 그렇게 옮긴 직장에 11년째 다니고 있다. 나이도, 경력도, 구채은 작가님과 공통점이 많다. 특히 "일터에서 고통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생산성 낮은 "도피성 독서"를 하고 있다는 점도. 나도 퇴근길 지하철에서 책을 펴고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그러모으곤 한다. 작가님도 일터에서 고비가 찾아왔던 순간마다 일 생각을 떨쳐버리려 책을 폈다. 그렇다고 매번 마법처럼 솟아오르는 지혜를 발견한 건 아니다. 때로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인물들도 책 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다. 작가님은 그 기록들을 《출근하는 책들》에 차곡차곡 남겼다.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일의 고통, 직장 인간관계의 어려움, 인정받고 싶은 마음, 매너리즘, 그리고 일의 끝과 시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일터에 발을 들이고 마셨던 술이 출렁거리고, 내가 저질렀던 실수가 꿀렁거리고, 내 위로 쏟아졌던 타인들의 분노가 흐느적거리면서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스쳤다.
10년 전의 나도 고기를 잘 굽고, 술도 빼지 않고 잘 마시고, 건배사도 센스 있게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다. 《인간 실격》의 요조가 회식 자리에서 "왜 이렇게 다들 미친(?) 광대짓을 하는 겁니까?"(p.24)라고 외치는 장면을 상상하며 비실비실 웃었다.
자기가 한 일을 책임지지 않으려고 나에게 뒤집어 씌우던 직원에게는 분노가 끓어오르던 나도 떠올랐다. 그래도 《스토너》에서 자신에게 온갖 보복을 가하던 인물을 미워하는데 에너지를 전부 쏟지 않던 스토너(p.81)를 떠올리며, 못된 직원을 향했던 화를 가라앉혔다.
몇 주 동안 작업한 파일을 외부에 보내고 나서 거대한 오류를 발견했을 때는, 수정하고 나서도 얼굴이 화끈거려 힘들었던 나도 스쳤다. 《명상록》의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도 모두 곧 죽고 그다음 세대도 죽을 것이다."(p.105) 구절을 만지며, 실수 따윈 결국 다 잊힐 거라고 과거의 나를 토닥였다.
타인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아 가공하고 대상화해야 했던 업무를 맡았을 때는 과호흡이 오려 했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한탸가 일과 신념 사이 괴리에서 느꼈던 고통(p.179)에 깊이 공감했다.
언젠가는 야근하고 돌아와 씻으면서도 일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머리가 지끈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보며(p.202) 죽기 전에는 무슨 생각이 날까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아무 걱정 없이 꺄르르 웃고 뛰어노는 우리 집 아이들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지난주에는 에너지를 모두 긁어모아 우박처럼 떨어지던 일들을 쳐냈다. 지하철 안의 평범한 웅성거림조차 귀로 들여보낼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어폰을 귀마개처럼 끼우고 《출근하는 책들》을 마저 읽었다. 책은 나의 편협한 시야를 깨주는 "도끼" 같은 역할도 하지만, 이럴 때는 일종의 아름다움으로 작용한다. "사람에 상처받아 쓰러져 펑펑 울더라도 이내 회복해 다시 손 내미는 따스한 마음, 상대가 한 손을 내밀면 두 손을 내미는 상냥함. 타인에게 선의를 베풀고 연대함."(p.136) 내가 느끼는 고통에 책을 통해 연결된 누군가 고개를 끄덕여주는 다정함을 나는 아름답다고 느낀다. 그 아름다움을 먹고 나는 다음날 힘내어 출근했다.
📌 이 책은 파지트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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