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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나는 나비












책 제목을 정말 잘 지었다. 여섯 글자 안에 모든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책은 '레이디', 여성의 몸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크레딧' 신용을 이끌어내는 담보로 쓰이는지를 보여준다. 보통 여성의 몸이 '대상화'되고 있다고 많이 표현한다. 성매매 산업에서 여성의 몸은 말 그대로 팔리는 상품이자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윤을 안기는 도구다.



성매매 여성에게 업주들과 일수업자, 부동산 업자들이 빌려주는 돈은 여성이 성매매를 통해 얼마나 벌 수 있을지를 고려해서 정해진다. 업소를 이동하며 교환되던 여성들의 부채에 저축은행도 끼어든다. J 저축은행은 '아가씨'들에게 지급하는 선불금('마이킹') 서류를 강남 소재 유흥업소 업주들이 담보로 제출하면 대출을 해주었다. 이때 대출 금액은 '여종업원들의 성매매를 통한 수입에 근거해 지급'(p.172) 된다.



2004년 성매매 특별법 제정에도, 2000년대 중반 룸살롱은 점점 대형화된다. 대형 룸살롱에 개별 여성의 채권이 한데 묶이면서, 한 명에게 받지 못한다고 전체 돈을 떼일 가능성이 줄어든다. 위험을 묶는 기법 pooling으로 미래의 불안정성이 감소하는 거다. '개별 여성들의 상품성 이상으로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기법이 된다.'(p.211) 성매매 사업은 수익성 높은 '매춘 생태계'가 된다.



이렇게 여성의 몸이 투자가치 높은 담보로 쓰일 때, 당사자 여성에게는 그만큼의 수익이 돌아가나? 여성이 돈이 필요해 선불금('마이킹')을 한 번 제공받으면,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690%에서(p.99) 3650%(p.98)까지 이자에는 상한선이 없다. 선이자를 떼고, 결근비를 매긴다. 룸살롱을 방문하는 남성들의 '초이스'를 받기 위해, 여성들은 성형을 받고 10만 원이 넘는 출근 준비비를 들여가며 단장한다. 업소는 성형을 주선하면서 수술 비용의 30% 이상에 달하는 브로커 수수료를 떼기도 한다.



그런데 일을 쉬는 순간 문제가 생긴다. 가족들에게 일이 생기거나, 아파서 일을 나가지 못하게 되면, 그때부터 더 빠른 속도로 빌린 돈의 원금이 커진다. '열흘 쉬어 버리면 돈 100만 원이'(p.348) 밀리기도 한다. 여성들은 몸이 아플수록 더욱 일을 그만둘 수 없다. 어떨 때는 하루 16시간(p.106)까지 일을 하지만, 돈은 밑 빠진 독처럼 도저히 쌓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성매매 산업에 뛰어드는 여성들이 있는 이유는 여성의 몸을 담보로 만드는 사회, 빚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사회 때문이다. 여성들은 젊을수록 몸을 담보로 했을 때 더 쉽게 돈을 번다. 때문에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서 업소로 찾아오는 여성들이 생긴다. 대학원 학비 같은 목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돈을 모으려는 여성들이 찾아온다. 나이가 들어도 특별한 기술 없이 여성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현재 자본주의에서 성매매 여성의 몸은 성매매 업주, 일수업자, 부동산 업자, 의류 렌털업체, 미용실, 성형 브로커, 성형외과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지갑을 채워주고 있다. 성매매를 '노동'인지 '폭력'인지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여성의 매춘화'(p.396)를 막기 어려워 보인다. 여성의 몸과 미래 시간이 '크레딧'이 되는 이상, 여성들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사슬 안에서 끊임없이 '화폐 제조기'(p.396)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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