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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나는 나비
#무엇이아름다움을강요하는가 #나오미울프


"화장품은 안 가지고 왔니? 그래도 여자는 화장을 해야 예의를 갖추는 건데..."
"턱에 보톡스 몇 번 맞으면 갸름해질 거 같은데, 해볼 생각 없어요?"
"출산하고 나서 뱃살이 빠지질 않아서 걱정이야."
"나이가 드니까 자꾸 등에 살이 붙어서 고민이에요."
"종아리에 알이 박힐까 봐 운동을 못하겠어."


살면서 들었던 외모 평가를 다 말하자면 밤을 새울 수 있을 것 같다. 얼굴부터 다리까지 '부위 별로' 떠올릴 수도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얼굴과 몸을 가꾸는 게 나에게도 너무 당연했다. 나도 속으로 늘 다른 사람의 얼굴과 몸을 평가했다. 미용실에 갈 때마다 패션잡지를 보면서 눈을 '단련'시켰다. 여성지 속 모델들의 잡티 없는 얼굴과 군살 없는 몸을 부러워했다.


그러다 페미니즘을 알게 되었다. 의무적으로 했던 꾸밈을 안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마침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하던 시기였고, 어차피 마스크를 써야 하니 화장하기가 귀찮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꾸밈에 흥미가 없었고, 지금도 옷을 사러 쇼핑몰에 가면 피로가 몰려온다.


'화장의 문제는 여성이 화장하지 않으면 부족한 느낌이 들 때만 존재한다. 운동의 문제도 여성이 운동하지 않으면 자신이 싫어질 때만 존재한다. 여성이 꾸며야 귀를 기울여줄 때, 여성이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치장할 필요가 있을 때, 여성이 일자리를 잃지 않으려고 굶을 때, 여성이 사랑하는 사람을 매혹시켜야 자식을 돌볼 수 있을 때, 그럴 때 "아름다움"은 여성을 해친다.'(p.430)


꾸밈이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우리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것이다.'(p.430) 화장하고 싶은 사람은 하고, 안 하고 싶은 사람은 하지 않을 자유. 살을 빼고 싶은 사람은 빼고, 안 빼고 싶은 사람은 빼지 않을 자유. 세상의 대부분의 여성들에게도 그런 자유가 없다. 선택을 할 수 없다고 느끼는 경우도 많다.


얼마 전, 사십 대 후반인 지인이 나에게 말했다.
"나 정도 나이 되면, 화장을 안 할 수가 없어."
"아냐, 언니." 나는 다급히 대꾸했다. 그리고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지인에게 '여전히 피부가 깨끗해서 괜찮다'라고 칭찬했어야 하는 건가? 그것 또한 젊은 여성이 주로 가진 '깨끗한 피부가 더 '아름답다'라는 걸 전제로 하고 '위로'하는 거 아닌가. 역시 '아름다움의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대답이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나이와도 연관이 깊다. 똑같이 화장을 안 했을 때, 내 눈에 이십 대는 그래도 예뻐 보이지만, 오십 대는 초췌해 보인다. 매번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코팅된 내 눈의 렌즈에 좌절한다. '아름다움의 신화'가 문제라는 걸 너무나 명백한 문제라는 걸 인식했지만, 나는 여전히 눈에 박힌 '아름다움'의 기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평생 보고 자란 이미지의 힘은 너무나 강력하다.


나는 요즘 단화에 백팩을 매고 화장 안 하고 출근한다. 찬장 속에서 먼지 쌓여가던 화장품을 다 버렸고, 옷은 거의 사지 않는다. 여전히 염색은 한다. 내 머리카락이 까만색일 때보다 갈색인 것이 더 좋다. 이번에는 붉은 기운이 도는 갈색으로 염색을 해보았다. 내가 원하는 아름다움을 찾기 위한 노력이다. 누가 나에게 외모 지적을 한다 해도, 그건 그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아름다움의 신화'에 권력을 주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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