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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섹스는 평등한가요?
- 부너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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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07
- : 504
당신의 섹스는 평등한가요? / 부너미 / 와온 / 2020
나는 왜 신랑과 섹스에 관해 이야기 나누지 못했나
결혼하고 석 달 만에 아이가 생겼다. 첫째가 13개월 동안 수유를 했다. 돌이 넘어서야 통잠을 자게 된 아이 덕분에, 1년 넘게 좀비 생활을 하니 섹스 생각이 전혀 안 났다. 단유 이후 몇 달 지나지 않아 둘째가 생겼다. 둘째도 15개월 정도 젖을 먹었다. 둘째는 1년 6개월 즈음이 되어서야, 더는 밤중에 자다 깨지 않았다. 계속되는 임신과 수유, 쪽잠 육아 때문에 우리 부부는 거의 섹스를 못하고 살았다.
이제 아이 둘 다 밤에 자다 깨는 일은 거의 드물다. 아이들을 재우고 시간이 나면, 나는 득달같이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그건 ‘누구의 엄마’나 ‘누구의 아내’만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신랑에게 왠지 미안했다. 혹시 신랑은 섹스가 너무 하고 싶은데, 내가 바빠 보여서 혹시 말을 못 꺼낸 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섹스에 대해 신랑과 제대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
섹스는 부부 둘이서 누릴 수 있는 커다란 즐거움 중 하나다. 그런데 내가 어떤 자세를 좋아하는지, 어떻게 해주는 것을 좋아하는지 왜 말한 적이 없을까? 우선, 나는 신랑에게 헤픈(?) 또는 닳고 닳은(?) 여자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왠지 여자는 섹스에 대해 잘 알면 부끄러운 일인 것 같고, 발랑 까진(?) 것처럼 생각했다. 나의 몸을 살펴본다거나, 내가 뭘 좋아하는지 탐구해보려 하지 않았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고, 신랑에게 이야기를 꺼낼 상상은 해본 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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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섹스에 대해 배운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고
어릴 때 받았던 성교육이 떠오른다. 그 시간에 남학생들은 다른 교실로 이동하고, 여학생들만 모여앉았다. 나팔관과 자궁 모형을 보았고,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는 과정을 배웠다. 고등학생 때는 피임을 해야 한다는 정도의 이야기는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자위나 오르가슴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클리토리스도 발기하면 커진다던가, 하다못해 여성 성기의 구조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나도 최근에 혼자 책을 찾아보기 전까지는, 질과 자궁, 난소, 나팔관 정도가 전부인 줄 알았다.
대학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연애를 시작하며, 혼전 순결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다. 종교를 이유로 혼전 순결을 지키는(?) 남자 선배는 ‘대단하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치 남성의 성욕은 본능이라 억제하기 매우 어렵다는 의미처럼 보였다. 반면, 여학생들에게 순결이란 추구해야 할 가치로 여겨졌던 것 같다. 여성인 주변 지인들은 예전에 섹스 경험이 있더라도, 그 사실을 새 연인에게 말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여성인 친구들끼리도 성욕이나 섹스나 오르가슴 같은 것들에 대한 말은 하기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나는 오르가슴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있나?
예전에 야동을 두세 개 본 적이 있다. 여자배우는 엄청나게 큰 사발 만한 가슴을 출렁이며 연신 신음을 했다. 카메라 안에서 남자배우는 아주 커다란 성기로만 존재했다. 두 명의 남자배우가 여자배우의 항문과 질에 삽입하는 영상도 봤는데, 오르가슴은커녕 그저 너무너무 아플 것 같았다. 딱히 즐거워 보이지 않는데, 섹스란 정말 좋은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람들은 별로 감흥도 없고 배울 것도 없는 이런 영상을 왜 돈까지 주고 보는 걸까? 차라리 야한 장면이 나오는 소설이나 영화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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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란 사람 사이의 평등한 관계 맺음이다
돌아보니 살면서 섹스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도, 말해본 적도 없었다. 페미니즘을 접하면서 이제야 겨우 여성의 몸과 섹스에 대해 궁금해졌다. 그동안 내 몸에 대해 너무나 무지했다. 어떻게 생긴 지도,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는데, 그걸로 어떻게 즐거움을 찾겠나. 이 책 《당신의 섹스는 평등한가요?》를 읽다 보니, 신랑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많고, 해보고 싶은 것도 많다. 신랑과 따뜻한 몸을 맞대가며 소곤거리고, 다양한 시도를 해보며 까르륵거리고, 너무 만족스러워 깜짝 놀라기도 하면 좋겠다. 나는 엄마이지만, ‘여성이 아니라 그저 모성으로 존재’(p.179)하고 싶지는 않다.
학교는 섹스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사회는 여성이 섹스에 대해 잘 아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다. 사실 섹스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섹스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다른 한쪽을 즐겁게 해 줄 수 없다. ‘섹스가 행복한 시간이기 위해서, 우리의 삶을 고양시키기 위해서는 나를 알고 상대를 알아 가는 지난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p.30) 사람 사이의 모든 관계 맺음처럼, 섹스도 노력이 필요하다. 섹스 과정에서 서로 배려하고 대화를 나누며 동등한 관계가 싹튼다, 동등한 즐거움은 그렇게 평등한 섹스에서 온다.
#부너미
#당신의섹스는평등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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