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개인주의와 능력주의를 신봉하는 것이 유행이 된 것만 같아 걱정이 될 때가 많다. 남과의 비교 우위에 서서 발밑의 약자들을 보며 조롱을 하다가도 ‘도둑맞은 가난’으로 자기 자신을 연민하고, 자신이 피해를 보는 일에는 약자들을 방패막이 세우기도 한다. 이런 이기적인 행태, 즉 배제와 폭력을 소위 ‘능력’으로 치부하며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외롭고 지속 불가능한 사회로 나아가게 된다.
오랜기간 교수로 재직한 훅스는 주로 교육자와 학생, 학교에 대해 말하며 책을 써내려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 현재 교육의 현장에 있거나 관련되어 있지 않아도, 누구나 이 책을 읽고 ‘회복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책을 읽다보면 학생이었던 나의 어린시절을 아쉬워하는 것도, 교육자가 아니니 새겨듣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것도, 학교라는 공간에 더 이상 머물지 않으니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훅스는 교육이라는 배경 속에 서 있을 뿐, 우리 모두에게 ‘영혼의 회복’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이 계속해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순간, 즉 현재를 온전히 살도록 도와준다. 그러니 지금 여기에 존재하라.”
“대학 교육은 때로 너무도 미래를 향한다.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가 가져올 보상에 너무도 집중되어 있어서, 지금 이 순간이 의미 있는 순간이라고 가르치기 어렵다…모든 의미를 미래에 두는 잘못 때문에 학생들은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충족의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이것이 인생이다:죽음을 향해 가르치기(251쪽)
훅스가 한때 유행했던 욜로(YOLO)를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교단에 서는 수십년의 세월동안 수많은 학생과 동료들을 만났고, 그 과정에서 소수자들의 영혼이 어떻게 쓰러져가는지 목격했다. 경제적인 보상만을 위해 앞만보고 달리는 일은, 우리가 ‘삶의 질’을 고려하지 못하게 한다. 훅스는 ‘삶이란 일생을 통해 지속적으로 서로 돌보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며 ‘삶의 질’은 함께 돌보며 살아가는 공동체적 삶을 통해 실현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삶의 권태감을 조장하는 백인-가부장-자본주의-제국주의 적인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며 온전한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변화는 혼자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책의 제목처럼, 훅스는 당신과 내가 공동체를 이루어 우리가 공존과 영혼의 회복을 이루어낼 수 있다고 믿고 행동하자고 손을 내민다. 개인주의와 무한 이기주의를 ‘공정’이라 호도하며 의미의 왜곡이 익숙해진 요즘, 나의 영혼과 당신의 영혼이 회복되고, 서로 연결될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