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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을 더 어릴 적에 봤더라면, 아마 식물학자가 되고 싶었을 게다. 식물을 바라보는 깊은 애정이 배어나와 독자의 마음 속에까지 스며드는, 그런 책이다.
2. 사람들은 보통 '식물'을 정적인 존재로 본다. 바위나 그릇 등의 무생물과 식물이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를 거의 못 느끼며 살 때도 많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식물이 얼마나 치열하게 '투쟁'하며 삶을 살아내는 '생명체'인가를 절절하게 느꼈다.
3. 참 문학적, 사색적인 과학책이다. 부부 식물학자들의 생각의 깊이는 고아한 수필이었으며, 표현 또한 절묘한 데가 적지 않았다. 사소한 것에서 참신한 생각을 해 내는 시인의 눈을 가진 작가들 덕에 아주 좋은 책이 탄생한 듯 싶다.
4. 책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해마다 몸의 일부는 그 무지한 놈들을 위해 자선을 해야만 했다. 베풀고 사는 생이 아름답다고 했던가. 누가 그런 말을 했는가. 나무에게 잉여란 얼마나 힘겨운 투쟁의 산물이던가. 남의 일에 그리 쉽게 말해서는 안 된다. 남의 재산이라 너무 쉽게 말하는 경향이 낳은 위선이다. 그저 남의 일이니까 쉬운 말로 생태계부양능력이라고 하는가. 먹고 사는 곤충이 건강해야 새들이 건강하고 그래야 생태계가 건전하게 유지된다고 하던가. 나비가 날아드는 모습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무리는 또 누구인가. 한 마리의 나비가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식물이 먹히고 또한 얼마나 많은 식물이 공포에 떨었는가. 차라리 건전한 생태계란 무수한 희생으로 이루어진다고 정확하게만 말해주어도 나무에게는 위안이 될 것이다.
도대체 자기 의지에 의해서 베풀고 사는 무리가 얼마나 있던가.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란 그 속이 얼마나 치졸하던가. 아홉 가진 놈이 나머지 하나마저 차지하려고 하는 주제에 생태계 부양능력이라고? 왜 그 좋은 일들이 어찌 말 못하고 부지런한 나무들에게만 있어야 하는가 말이다. 정의란 약자의 변명이라고 했다. …아름다운 힘의 균형이 이루어지는 그 속도 들여다보면 참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투쟁의 결과가 아닌가.' 이 대목이, 자연의 투쟁, 신갈나무의 투쟁을 잘 보여 주는 대목이기도 하였지만, 곁다리 생각을 많이 끄집어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인간 사회의 윤리는 자연 사회의 투쟁의 법칙과 어긋난다. 적자 생존의 법칙과 어긋나는 인간 사회의 윤리가 얼마나 많은가. 이러한 윤리들은 분명 자/연/스럽지는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연스럽지 않은 행동 양식들이 우리 종에게 공존공영을 줄 것인지, 아니면 우리 종을 파멸로 이끌 것인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비록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인간 사회의 윤리, 휴머니즘은 아/름/답/다. 비록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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