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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g65님의 서재

난감한 눈으로 방울 토마도 세 개를 내려다보는 롤라. 음하하 만만치 않지? 하는 얼굴로 여동생을 보는 찰리. 이 녀석들의 얼굴은 내가 가끔 딸에게 쓰는 편지에 그려넣는 장난꾸러기의 얼굴과 너무나 닮았다. 책을 구입했던 2002년 가을에도 이미 5쇄를 찍었으니, 아마도 이런 명랑 엽기발랄 캐릭터를 좋아하는 아이와 어른들은 이 세상에 꽤나 많은 모양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편식이 심한 여자아이가 오빠의 기발한 유혹에 자의반 타의반 넘어가주면서 은근슬쩍 고약한 편식을 고치게 된다. 게다가 그 귀여운 반전이라니. 이 책을 읽은 많은 엄마들이 우리아이도 이 책 읽고나서 안 먹던 당근을 먹어요,호박을 먹어요, 심지어 굴이나 회를 먹어요. 하는 식의 반응을 많이 보이는 모양이다. 흠........그렇군.

아쉽게도 우리집에서는 아이가 책 덕분에 안 먹던 것을 갑자기 먹게 되거나 하는 기쁜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책을 읽을 때마다 까르르 웃고 시금치나 우엉 등에 이상야릇한 이름들을 마구 붙이는 놀이는 즐겼지만, 여전히 싫은 음식은 우웩,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 나는 이 책을 처음보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너무나 좋아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첵은 밥 잘 먹이는 책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전혀 다른 시선을 던져주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물, 어떤 사람에 대해 가졌던 기존의 생각들을 전혀 다른 방향에서 보게 만드는 발상전환의 힘! 그 힘이 너무 강해 처음 이 책을 아이와 서점에서 보았을 때, 악~ 소리를 지를 정도였다.

하긴 발상의 전환이니 뭐니 하는 말도 다 어른인 나의 호들갑일 뿐인지 모르겠다. 아이들은 날마다 자기만의 세계에서 이런 식의 유쾌한 상상들을 즐기고 있어왔을 뿐인데 말이다.

초록방울이 빗방울처럼 하늘에서 떨어지고, 목성에서 나는 오렌지 뽕가지뽕을 냠냠 베어먹으며.....때로는 메리포핀스의 외삼촌 위그씨처럼 웃음가스를 가득 채워 천정 꼭대기에서 차를 홀짝홀짝 마시고, 또 때로는 마법의 설탕 두 조각으로 어른들을 점점 작아지게도 하면서 아이들은 어른 몰래 나름의 에너지를 비축하며 조금씩 커가고 있다.

부모는 어디가고 오빠 혼자 여동생을 붙잡고 고군분투하는가 하는 의문에 대해서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작가는 아마도 어른들이 끼어들어서는 맥이 빠지는 일, 아이들만이 감당할 수 있는 어떤 몫을 고유하게 지켜주기 위해 두 남매만 줄기차게 등장시켜 오빠가 잠도 재우고, 학교도 보내고, 편식까지 뜯어고치고 있게 하는 것은 아닐까?

사실, 내가 아는 대개의 오빠들은 찰리처럼 친절하지도 끈기가 있지도, 결정적으로 상상력이 이렇게 풍부하지도 않다. 그들은 대개 여동생들을 귀찮아하고, 마음 맞는 친구가 나타나면 언제든 껌 딱지 취급을 하며 따돌린다. 오빠와 여동생을 내세워 이런 이야기를 꾸민 작가에게는 아마 실제로 여동생이 없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다만 한없이 관용을 베풀고 사랑하고 싶은 귀여운 여동생이 있었으면 하는 해묵은 소망이 있었던 건 아닐지.  분명히 그럴 것 같다.

아이들! 언제나 삶이 진행형이고, 그렇기 때문에 매 순간이 독특하고 예측불가능한 매력적인 존재들. 그 아이들 세계에 어떻게든 좀 끼어들어보려면 가장 빠르고 수월한 길은 그림책 함께 읽기일 것이다. 그림책 읽기 여행 중에서도 이 책은 유달리 밝고 유쾌했다.

이 책으로 아이가 편식을 전혀 고치지 못하더라도 전혀 실망하지 말기를 바란다. 적어도 찰리와 롤라의 좌충우돌을 통해 아이는, 이 책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아주 매력적인 세계 하나를 마음에 갖게 되었을 테니......그리고 만일 시리즈<난 학교 가기 싫어>를 읽혀준다면 아마 아이가 어느 날부터 '소찰퐁이' 타령을 하는 것도 단단히 각오해야 할 것이다. 참으로 기껍고 즐거운 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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