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5년 12월 16일, 영국 햄프셔주 스티븐턴에서 태어난 제인 오스틴은 성공회 교구의 목사였던 부친과 지역 내 저명한 가문 출신인 겸허한 모친 밑에서 자라납니다. 특히 그녀의 부모인 조지 오스틴과 카산드라 리는 결혼전에도 사적인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리고 스티븐턴에 정착한 조지 오스틴은 1773년부터 1796년까지, 가외로 농사를 챙기로 한 번에 3명 정도 되는 소년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1783년이 되자 제인과 그녀의 여동생 카산드라는 앤 콜리에게 교육을 받기 위해 옥스포드로 보내지게 되는데요. 그해 가을 두 자매는 발진티푸스에 걸려 집으로 돌아갔는데 특히 제인은 거의 죽다가 살아나게 됩니다. 이때부터 제인의 교육은 아버지가 스스로 챙기면서 독서를 통해, 그녀는 대부분의 소양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문학 활동 전반은 22세 이전에 주요 작품들이 쓰여지지만 본격적인 출판은 35세가 되던 해부터 이뤄지게 됩니다. 특히, '이성과 감성', '오만과 편견', '맨스필드 파크', '에마'는 그녀가 살아있던 시절에 겸손한 성공을 안겨다 주지만 생전에는 위의 작품들이 그녀에게 크나큰 문학적 명셩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그녀의 여러 작품들이 관통하는 주제들은 18세기 말 전근대적인 귀족 의식과 결합된 소위 영국의 지주 계층에 대한 해석과 더나아가 이들에 대한 비판, 그리고 그 시대의 세태, 관습 등을 여성의 시각으로 관조한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그녀의 이 작품은 원제, "Persuasion"으로 그녀의 사후인, 1818년에 출간되었고 출판사 문학동네에 출판한 이 번역본은 처음에 양장본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번역본 출간은 2010년 8월이며, 제가 구입한 판본은 2013년에 나온 1판 3쇄본입니다.
작가인 제인 오스틴은 자신의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주제는 바로 "숭고한 사랑과 영원한 절개"라는 쉽게 변색되지 않는 개인과 개인사이의 중요한 가치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여기에 더불어 주인공인 앤 엘리엇을 통해, 작가는 "분별력을 갖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간의 극명한 대비"를 표출하고, 자기 만족과 오만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행태를 사람간의 관계를 매개로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고전 작품들이 우리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인간의 계몽"에 관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와 비슷한 연유로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해 폭로하는 내용도 주목할 만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도 꽤 조밀한 서사 속에 드러나는 어리석고 거의 사욕에 매몰된 인물들이 보여지고 있는데요. 더욱이 오스틴의 인물 조형 자체가 매우 입체적이고 충분한 개연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의 캐릭터들을 비판적으로 조망하는 것 자체가 고전으로 얻을 수 있는아주 사소한 이득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서머싯셔 켈린처 홀의 월터 엘리엇 경은 저물어가는 영국 귀족 사회를 대변하는 인물이자, 개인적 허영과 사람들의 시선에 자신의 인생을 저당잡혀 사는 그 시대의 전형적인 계급이기도 합니다. 일종의 '계급의 표상'이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그에게는 각각 다른 개성의 딸이 셋이나 있습니다. 첫째인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나날이 저물어가는 가세에서 예전만 못하게 누리지 못하는 삶에 대해 어느 정도 고통을 받고 있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세인들이 자신을 향해 말하는 "엘리엇 양" 혹은 "레이디 엘리엇"이라는 지칭에 묘한 자부심을 보이고, 그녀를 통해 당시 영국 사회를 얼추 엿볼 수도 있었는데요. 저는 앞선 월터 엘리엇 경과 그의 큰딸인 엘리자베스가 요샛말로 아주 전형적인 속물 캐릭터라고 여겨졌습니다. 개인적으로 엘리자베스의 인물 설정에 대해, 작가인 제인 오스틴의 주변에서 착안을 얻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되었는데요. 작품의 서사 내내 이 엘리자베스라는 인물에 대해 묘한 기시감을 받기도 했습니다.
실제적인 이 작품의 주인공인 앤 엘리엇은 일찍이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벗인 레이디 러셀이 인정했을 정도로 겸허하고 분별력을 갖췄으며,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않는 양식을 갖춘 인물입니다.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그녀의 아버지와 언니는 이 앤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특히 부친인 엘리엇 경은 노처녀로 늙어가고 있는 엘리자베스가 여전히 시들지 않는 미모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둘째 딸인 앤은 그의 말대로, "저물어버렸다"고 언급되는 것으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겠는데요. 그저 일차원적인 삶을 사는 저 부녀가 옆에서 의미있는 조언을 하는 앤을 어떻게 여겼을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사실 이 작품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은 앤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는 직간접적인 묘사들에 있었는데요. 물론 이런 연유에는 자신의 집안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던 앤의 연인이었던 프레더릭 웬트워스에 대한 반감과 딸까지 모멸차게 취급했던 과거의 행적이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오스틴의 이 작품에서 일견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로 어느 정도 각 캐릭터들을 분리해 볼 수도 있었습니다. 제가 앞서 언급한 사람이 갖춰야 할 분별력을 갖고 행동하는 인물들은 바로 웬트워스 대령과 앤이었는데요. 이들은 세태에 얽히지도 않고 자신이 추구하고 인정하는 가치를 버리지 않으며, 일관된 의지를 갖고 살아갑니다. 과거 엘리엇 가를 보잘것 없다고 여긴 향사 윌리엄 월터 엘리엇이 엘리자베스와의 혼사를 거절하고 돈많은 여성과 결혼한 그에 대한 작품 내의 비판적인 평가와 입지는 아주 극명하게 프레더릭과 대비되어 나타납니다. 더욱이 후반부에서 앤에게 있어 새삼 중요한 인물로 그려지는 스미스 부인이 윌리엄 엘리엇의 '정체'를 그녀에게 폭로했을 때, 호시탐탐 월터 경의 옆자리를 노리고 있던 클레이 부인의 의도까지 덩달아 밝혀지며, 동시에 극 전반도 중요한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과거 프레더릭 웬트워스는 진정으로 앤을 사랑했지만 월터 엘리엇 경과 엘리자베스의 반대에 부딪쳐 해군에 투신하게 됩니다. 이 작품이 쓰여진 배경이 유럽 대륙에서의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시점이니, 아마도 웬트워스 대령은 서인도 제도에 혹은 지중해에서 프랑스 함대를 상대했거나 아니면 스페인 등지에서 활약을 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렇게 해서 부족하지 않는 군경력과 동시에 2만 5천 파운드의 당시로서는 막대한 재산을 쌓게 되는데요. 이제는 그가 더 이상 앤과 엮이지 않아도 좋은 혼처를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주도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의도를 갖고 앤에게 접근하는 윌리엄 엘리엇과는 다르게 웬트워스 대령은 그 "영원한 절개"에 부합하는 일관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작가인 제인 오스틴이 밝고 싹싹하면서 동시에 미모를 갖춘 여성의 매력에 흔들리지 않는 '평범하지 않은 남자'를 그려보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프레더릭 웬트워스라는 캐릭터 자체는 '남자의 굳은 의지'를 보여주는 인물이었기에 그래서 더 매력적이지 않았나 생각해 보게 됩니다. 또한 여기에는 영국의 기독교적 세계관이 영향을 끼쳤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8년이나 넘는 시간 동안 서로에 대해 '절개'를 지킨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라 생각됩니다.
끝으로 이 작품은 '노생거 사원'과 유사하게 약간 아쉬운 결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앤과 프레더릭 사이에서 다소 어정쩡한 모습을 보이는 월터 엘리엇 경과 엘리자베스의 한풀 꺾인 태도는 서사에서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었고, 다른 등장 인물들인 윌리엄 엘리엇과 클레이 부인의 소위 '야합'은 뭔가 개연성을 상실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리분별과 합리적인 이성을 보이는 인물들에 대한 시대착오적인 공격과 그런 행태들에 대한 정밀한 묘사는 제인 오스틴의 강점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저는 제인 오스틴의 다른 대표적인 네 작품들을 비교해 봤을 때, 이 설득이라는 작품이 문학적인 측면과 사회해학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품의 말미에서까지 일관된 모습을 보이는 앤 엘리엇의 모습은 한 개인의 본질이 그저 외모가 아니라, 그 사람을 전체를 아우르는 선한 내면에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작가인 제인 오스틴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했는데요. 사회에 스며들어 있는 온갖 인간군상들 가운데 표면적인 모습을 초월하는 진정한 본질에서, 한 사람이 얼마나 일관되고 남들과 다른 빛을 발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값어치가 정해지기 마련이며, 그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삶이 외형적으로는 그럴싸해 보일지라도 그것은 가여운 껍질에 불과하다는 고래의 교훈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인 오스틴의 이 작품은 후세에도 그 명성이 이어질 만큼 중요한 마스터피스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작가인 제인 오스틴은 이 작품에서 '분별력'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단적으로 분별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세태에 대한 고발이면서 그녀가 얼마나 이런 사람들을 얼마나 경멸했는지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되었습니다.
-책 제목인 '설득'은 월터 엘리엇 경과 '레이디 엘리엇'인 엘리자베스와 같은 부류에 대한 풍자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또한 이는 소위 도저히 설득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냉소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피를 나눈 가족이라도 그 본질에 있어서 일부분은 남과 다를 바 없으며, 그런 냉혹한 관계에서 가족을 이성적으로 설득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교훈으로 읽힙니다.
따라서 레이디 러셀은 그녀가 부친의 집에서 겪는 차별과 부당한 대우에서 벗어나 자기 집 근처에 자리잡게 된다면 크게 기뻐할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클레이 부인이 자리에 없을 때면 아버지는 번번이 그녀의 주근깨며 뻐드렁니, 그리고 볼품없는 손목을 심하게 흉보곤 했다.
그녀는 타고난 자질에서는 맏언니보다 나았지만 앤 같은 분별력이나 성품을 갖지는 못했다.
그의 시선이 스치듯 앤에게 머물렀다. 반짝이는 눈빛을 머금은 그 시선은 마치 ‘저 사람이 당신에게 반했나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저 역시 앤 엘리엇다운 모습을 다시 보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스물셋의 나이에 앤 엘리엇과 같은 여자의 가치를 조금이나마 알아본 듯했던 남자가 팔 년 뒤 루이자 머스그로브 같은 여자에게 매력을 느끼다.
상당한 재산을 가진 아주 아름다운 여인이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는데! 월터 경은 이것으로 완벽히 해명이 된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유연한 마음, 위안을 구하는 성향, 흔쾌히 악에서 선으로 돌아서서 자신을 잊게 해줄 일거리를 찾는 힘은 오로지 천성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이따금씩 아주 흥미롭고 감동적인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을 보기도 하니까요."
늘 평정심을 유지하여 단 한번의 말실수조차 하지 않는 사람보다는, 이따금 경솔하거나 성급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의 진실성이 더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네. 표정이 다 말해주는걸요. 지난밤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호감가는 사람. 지금 이 순간에도 온 세상 사람을 다 합한 것보다 더 당신의 관심을 끄는 사람과 같이 있었다는 걸."
"겉만 번지르르하고 들여다보면 오래가지 못할 가족 간의 화합일지라도 지킬 가치는 있어 보이지요."
요즘 세상에 살다보면, 남자든 여자든 돈 때문에 결혼하는 일이 너무 흔해서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기가 힘들어요.
클레이 부인 같은 사람이 항상 눈앞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불편한데, 그보다 더 음흉한 위선자까지 더해지니 모든 평화와 안락이 깨져버린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