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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洞好世, 얕은 책수레
  •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 바버라 F. 월터
  • 19,800원 (10%1,100)
  • 2025-01-20
  • : 11,155
바바라 F. 월터는 캘리포니아 대학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글로벌 정책 및 전략 대학원의 국제 관계 관계 분야의 교수로 재직 중인, 정치학자입니다. 그녀의 연구 분야는 내전, 폭력적 극단주의와, 테러리즘인데요. 특히, 미국이 현재 극단주의자들에 의한 사실상 '내전 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녀는 어려서 뉴욕의 욘커스에서 자랐지만 모친의 영향으로 스위스로 이주했고, 부친은 독일계로 유래가 있는 유서 깊은 가문 출신입니다. 그녀는 미국 펜실베니아주 루이스버그에 소재한 진보적 예술 대학인 버크넬 대학에서 정치학과 독일어학으로 학사 학위를 마치고, 미국 사회과학의 요람인 시카고 대학에서 정치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이후, 1996년부터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기 시작한 월터는 미국내에서 '비폭력 시민 저항 운동'에 대한 활발한 연구로 명성을 얻은 정치학자 에리카 체노웨스와 함께, 2012년부터 2023년까지 정치 블로그를 함께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녀는 미국 과학 아카데미 (NAS)와 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입니다. 그녀의 교수 경력 이외에도 세계은행, 미국 국방부, 국무부, 유엔, 그리고 1월 6일 미국 국회의사당 공격을 조사하기 위한 미국 하원 특별위원회인, '1월 6일 위원회'에서 자문을 맡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이 책은 원제, "How Cilvil Wars Start : And How To Stop Them"으로 지난 2022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5년 1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저자인 바바라 F. 월터는 독재와 민주주의의 중간 구간의 국가 정체를 가리키는 고유한 용어인, 아노크라시 Anocracy로 글 전반의 주요 분석 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확장된 논증 가운데서 그녀는 "미국은 현재 내전 상태인가"에 대한 정치학적인 분석을 포함하여, 미국 내의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한 극단주의자들과 파벌주의, 그리고 "최고의 종족 사업가" 일컬어지는 도널드 트럼프와 혼란스런 미국 정치를 거의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특히, 수많은 사례를 연구한 '내전' 전문가인 저자는 준비 없이 도입된 민주주의가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기존 기득권층의 '권력 소외'를 초래했고, 이런 배경 하에 '실질적 내전'이 일어난 각 국의 여러 사례들을 제시하고 동시에 주목하고 있었는데요. 여기에 논의된 각각의 사례들은 사실상 해당 정부를 붕괴시키기에 이르고 내부를 첨예한 극단주의적 대결 양상으로 몰고 갔다고 저자인 월터는 냉정히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연유에서 이 논저는 우리가 왜 극단주의자들과 극단주의 정치를 미연에 방지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그 정치적 책무를 우리에게 다시 한 번 각인시키고 있었습니다.

글의 도입에서 저자는 파리드 자카리아의 '비자유 민주주의 illiberal democracy'를 언급하며, 아노크라시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극단주의가 기존 정치 무대에 등장함으로써, 견실한 민주주의가 유래가 없는 위기에 놓인 점은 분명해 보이는데요. 과거 냉전 시기를 거쳐, 우리의 민주주의가 다른 극단주의처럼 이데올로기적인 강고한 신념화 단계를 거쳐, 맹목적 물신화가 이뤄지는 체제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권력 분산과 안정적인 체제 유지, 시민들의 주권을 보장하고 이러한 기반에서 이뤄지는 합법적 정권 수립과 교체는 무엇보다 시민들 개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체제임은 아마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물론 여기에 헌법의 존재를 빼놓을 순 없겠는데요. 특히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이 공정한 자유를 누려야만 하고 이것의 권리는 무엇보다 침해 받을 수 없다는 당위는 거창한 정치학을 접해 보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이미 충분히 인식하고 있을 것입니다. 일전에 게리 거스틀은 미국이 대량 살상 무기의 근거를 들어 이라크를 침공했고, 이후 후세인이 제거된 이라크에서 딕 체니와 그 미군이 말하는 민주주의의 이상이 이 기회의 땅에서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것을 보며, 민주주의를 위해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될 사항은 그 나라의 국민들과 그들의 역사적 관습, 종교, 문화, 제도 등이었다고 성찰적으로 이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미국은 현지의 특수한 사정을 거의 의도적으로 무시했다고 말이죠. 이는 사실상 미군과 미국 정부가 주도한 이라크의 민주주의 도입이 실패로 끝났다고 인정하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그만큼 민주주의가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가치를 위한 정치적 토양이 준비되어야 하고 그것은 그저 단순한 노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견고한 민주주의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문제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월터가 주목하는 또 다른 사례이기도 한 유고슬라비아 역시, 발칸 반도의 인종과 종교의 각축장이기도 했지만 이러한 구조적 복잡성이 의외로 극단주의적 갈등으로 확산되지는 않았습니다. 과거 스탈린에 정치적으로 맞서 대항하기도 했던 요시프 브로즈 티토는 소위 '인종적 평등'을 내세워, 전체적 통합을 이끌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유고슬라비아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이 지속되었습니다. 티토의 사후, 유고슬라비아가 여러 인종 국가로 갈라진 상황에서 벌어진 참혹한 '종족 살상' (바바라 F. 월터의 이 글에서는 인종 살상이 아니라, 종족 살상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은 다른 말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의 혐오스런 인종청소이자, 극단주의의 재림이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당시 세르비아 공화국이 상대적으로 부유했던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에 대한 터무니 없는 '종족적 원한'과 과거 나치의 '게르만 인을 더 위대하게'와 같은 극악의 인종적 슬로건과 유사한 맥락인 비타협적 민족주의의 광풍이 발칸 반도의 모든 것을 휩쓸었다고 참혹한 평가를 내리고 있었는데요. 2장 이후, 본격적으로 언급되는 극단주의의 새로운 배경인, '파벌주의'는 이런 인종적 내전에서 굴절된 형태의 '정치적 양극화'를 초래한 주요 배경으로도 손꼽히고 있습니다. 이 파벌주의와 정치적 양극화는 매우 긴밀한 인식 관계로 파벌주의가 온상이 된 국가는 한편으론 내부에서 확연히 정치적 양극화가 진행된 상황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또한, 앞선 세르비아의 사례는 파시즘에 버금가는 '배타적 인종적 정체성'을 매개로 다인종 국가라는 배경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인종이 더 우월하다는 식의 폭력적 논리를 확장시켰고, 이 자체만으로도 내부 정치를 극단적 대결로 몰아가 각 인종 간의 피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또한, 최근 인도에서도 힌두인들에 의한 이슬람인들의 축출, 마찬가지로 미얀마에서 다수 불교도들이 서부 라카인 주의 이슬람 민족인 '로힝야 족'을 집단 린치 및 살해한 사례처럼, 이들 인종적 폭력은 서로 맞닿아 있습니다. 더욱이 미얀마 국민에게 큰 존경을 받고 있던 '아웅 산 수 치'가 당시 SNS로 퍼지고 있던 '버마인들에 의한 로힝야 족을 향한 무분별한 테러' 영상에 대해, 그것은 거짓에 불과하다고 스스로의 양심을 저버리고 일축한 점은 이 사태를 그야말로 역설적으로 드러낸 한 장면이 되기도 했습니다.
소위 격화된 내전의 다른 돌발 원인이기도 한 용어인 '지위 격하 downgrading'는 다른 말로 지위 상실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필리핀 남부에서 존경과 신망을 받았던 다투 우드토그 마탈람 Datu Utdog Matalam 이라는 인물의 비극적 행적으로 살펴 볼 수 있겠는데요. 그는 과거 2차 대전에서 일본군과 용감히 싸운 전쟁 영웅이자, 근래에 이르러서는 지역민들 사이의 분쟁을 현명하게 조정하는 공정한 중재자였던 인물입니다. 지역 내의 신망과 권위를 갖고 있던 일종의 지도자이기도 했던 사람입니다. 앞선 이력은 주변 사람들에게 충분히 인정과 존중을 받을만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북부의 카톨릭 교도인 필리핀인들이 경제적 기회를 찾아, 그가 살고 있는 남부로 내려오면서, 그의 평온한 일상은 지옥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카톨릭과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이분법은 차치하더라도, 땅과 경제적 이익을 가운데 놓고 벌이기 시작한 실질적 대립은 마탈람의 장남이 정부 요인으로부터 살해 당한 시점부터 격화되기 시작합니다. 전통적인 이슬람 사회에서 지도자인 마탈람의 아들이 이교도에 의해 비참하게 살해 당한 사건은 그에게는 상당한 모욕이 되기도 했는데요. 결국 그는 분연히 일어나 양손에 총을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 국가의 다른 인종, 각기 구분되는 종교적 혹은 관습적 차이가 양자 사이에 중재 되지 않는다면 힘의 논리에 의해, 어느 한 쪽의 지위 격하를 발생 시킬 가능성이 커지고 이것은 결국, 곧 권력의 불균형한 차이로 나타나게 됩니다. 오늘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타 많은 이유로 밀려나게 될 기존 계층이 새롭게 유입되는 종교적 및 정치적으로 이질적인 유입에 의해, 그동안 별 무리 없이 누려왔던 지위에 따른 경제적 이익의 박탈까지 감수할 수 밖에 없는 지경에 내몰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그야말로 앞선 지위 박탈의 요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결국 많은 사회에서 이러한 지위 추락이 직접적 내전의 발발 원이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꼽는 이와 유사한 내전은 북아일랜드에서 벌어진 구교도와 신교도 사이의 비극적 폭력 사태와 콩고 내전에서 자행된 '인종 말살'이 있습니다.
약간 이른 결론일 수도 있지만, 저자인 바바라 F. 월터는 앞에서 논증된 서사를 바탕으로 역설적으로 민주주의에서 내전에 의한 정치적 혹은 물리적 테러가 무고한 다수를 향해 발생할 수 있고, 이것의 근본적 원인은 일부 시민들의 좌절감과 그것을 이용하는 극단적 정치인에서 비롯된다고 거듭 강조합니다. 이 극단적 정치인의 가장 대표적 사례는 도널드 트럼프가 될 것 같습니다. 물론 헝가리와 프랑스, 스페인 등지에 트럼프와 비슷한 궤를 보이는 여러 극우 포퓰리스트들이 있지만 사실상 세계 패권을 차지하고 있는 이 미합중국의 연방 대통령은 세계에 끼치는 영향력이라는 차원에서, 다른 국가들의 정치인들과는 실로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우려하는 미국 정치의 극단주의화, 그리고 슬프면서 역설적인 상황인, 민주주의에서 "자신들의 요구가 토론이나 타협을 거쳐, 원할하게 수용되지 않는다면 그때부터는 극단적인 선택 사항인, 마땅히 실질적 물리 행사, 즉 폭력이다" 라고 그녀는 이러한 구절을 인용해 그 심각성을 폭로합니다. 이미 세계 최대 총기 보유 국가인 미국은 일반적인 총기 사고 및 범죄는 물론, 시민들이 일상에서 수많은 총기로 인한 유무형의 위협에 놓여 있는 사회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저자는 민주당이 정권을 잡거나, 선거에서 크게 이겼을 경우, 그 해의 총기 판매량이 월등하게 높았다는 것을 미국만의 극명한 예로 들고 있었는데요. 이는 미국 정치가 단적으로 파벌주의의 온상이 되었다는 것을 증명함과 동시에, 6장에서 여실히 논증되는 바와 같이, "한 파벌이 이기적으로 권력을 욕심 내면서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상황 말이다"라고 이어지는 폭력적 상황의 결과물을 폭로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미국 내의 좌절된 '저학력의 백인 노동자'라는 서사는 이미 잘 알려진 바가 있습니다. 공화당은 이제 필사적으로 자신들의 지지 기반을 이런 불만과 증오에 빠진 일부 계층의 표로 이어가고 있는데요. 여기에 이런 저학력의 백인 노동자들을 더 들끓게 만들었던 소위 '불법 이민자 문제'는 그것의 본질적 진위 여부를 가리기 전에, "경제적, 사회적 쇠퇴를 실감하는 이들 백인들이 볼 때, 미국 정부는 마치 벵골인들에게 아삼으로 이주하도록 장려하는 인도 정부나 자바인들에게 서파푸아로 이주하도록 권하는 인도네시아 정부, 또는 싱 할라인들에게 타밀 지역으로 이주하도록 부추기는 스리랑카 정부와 같았다"고 자신들의 처지를 증오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왜곡된 인식으로 자포자기하는 심정에서 혹은 로버트 달과 같은 민주주의자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다원주의를 거부하는 인종 혐오 그 자체이든 이러한 현실은 미국 정치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기도 한데요. 또한 이들 백인들은 인도나 중국 출신의 젊은이들이 미국의 유수 명문 대학이나 첨단 IT기업,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영어가 아닌 자신들의 모국어로 대화를 나누고 비싼 커피를 마시고 있을때, 더욱 비참한 굴욕감을 느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저 자리는 분명 나의 것인데, 백인들이 쌓아 올린 유산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유색인종들이 내 자리를 빼앗아, 마땅한 내 권리도 앗아갔다"고 말입니다. 이는 극단주의화 된 '폭스 저널리즘'을 낱낱이 까발린 리스 펙의 주장과도 일정 부분 연계되기도 하는데요. 결국 이 점은 저학력 백인 노동자들의 실질적 삶의 개선에 하등 관심이 없는 정치인과 언론인들이 이들의 지지와 표를 이용하기 위해, 그들의 불만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실질적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현재 미국의 정치가 얼마나 위태로운지, 저자의 이 논저를 통해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근래 미국 정치가 오랜 독립 역사에서 명예로운 증거로 규정된, '민병대의 역사'와 이 조직된 군대라는 소위 헌법의 어디즈음에 존재하는 '총기로 무장한 민간인들'이 오늘날 인터넷의 발전으로 등장한 SNS 시대의 실질적 수혜자임을 저자는 다시금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일전의 마누엘 카스텔이나 조르조 아감벤의 기대와는 달리, 이 SNS는 민주주의에서의 모두를 위한, 긍정적 영향이 아니라, 극단주의자들의 아주 훌륭한 연락책이자, 극단화의 매개물이 되었습니다. 이 정치적 극단성이라는 적극적으로 회피하고 개선시켜야 할 무언가가 이 거대한 SNS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개성'정도로 쓰이고 있는 희극적인 현실을 우리는 목도하게 됩니다. 특히 이 소셜미디어가 분노에 사로잡힌 극단적 아웃사이더들에 의해 한 국가의 제도에 관한 거짓말을 퍼뜨릴 수 있다는 점은 우려할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일각에서는 이를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아직도 토론이 이뤄지고 있습니다만 이 와중에, '잘 조직화된 민병대'는 네오 나치와 인종주의를 매개로 흡사 '총기로 잘 무장된 병사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총기로 무장하여, 오도된 정치적 관념으로 맹목적인 민병대, 그리고 여기에 유입된 전직 군인들은 왜 "미국이 내전 상황으로 촉발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 이유"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의 책략가였던 스티브 배넌의 노골적인 의도와도 잘 들어맞기도 했는데요. 바로 이러한 미국 정치의 민낯 혹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은 저자의 입을 통해, 이러한 파벌주의와 극단주의적 정치의 원인은 바로 금권정치와 첨예화 된 양극화라고 규정됩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 그녀는 시장에 좀 더 기여하기 위한 민주주의의 희생, 그리고 그로 인한 시민 다수의 경제적 불평등도 중요하지만 여기에 무엇보다 정치적 체제의 개선 실패와 시민들 자신이 건전한 의견을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의 부재, 그리고 극단주의자들이 더 발언권과 힘을 얻는 왜곡된 정치적 구조 및 지지 기반 등을 문제의 핵심으로 짚어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미국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아노크라시 어디쯤에 놓여 있는 사실상 '내전 상황'이냐는 질문에 그녀의 답은, "그렇다"였습니다.
끝으로, 제가 몇몇 서평에서도 자주 언급했습니다만, 일전의 미국 정치 내에서, 과거 보스턴 차 사건을 차용한 '티파티 운동'은 아이러니하게도 진보 즉, 리버럴 대부분을 사회에서 없애야 될 '격멸'의 대상으로 치부했습니다. 토머스 제퍼슨과 제임스 매디슨으로 대표되는 건국의 아버지들은 다수에 의한 정치적 폭압, 즉, 소수의 권리 약화를 우려했고, 그런 연유로 연방 정부와 헌법,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매우 견고한 '균형주의적이면서 권력 분립적인 체제'를 고안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정치적 유산을 이어 받은 후세인들이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다'고 같은 미국인들을 격멸과 제거의 대상으로 지칭한 것을 무덤에 있는 저 건국의 아버지들이 과연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저로서는 매우 궁금할 따름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글을 쓴 저자 역시, 자신의 나라가 이런 극단주의적 파고에 휩쓸리게 된 현실을 연구자이자, 혹은 지식인으로 심대한 고민의 밤을 숱하게 보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결국 그녀 자신이 대면하게 된 현실은 '파벌주의적 내전에 빠진 미국 정치' 그 자체였습니다. 이에 그녀는 작금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법치를 강화하고, 모든 시민에게 동등한 투표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며, 정부 서비스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었는데요. 이는 전반적으로 과거 로널드 레이건으로부터 시작되어, 빌 클린턴에 의해 완성된 신자유주의 체제의 상당한 개선 노력으로도 읽힙니다. 기존의 엘리트 지배 체제를 부정하는 포퓰리스트 조차도 선동 이면에는, 결국 기존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답습하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지금의 미국이라는 국가는 개인의 극대화된 이기심과 그것이 발휘될 사회적 조건과 그 기본 자원의 유용성이 오직 부유층에게만 주어진다는 것을 망각하게 만들고, 오히려 자원 배분의 불평등성을 더욱 조장한, 신자유주의 체제의 수립으로 더욱 내밀화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자유와 개인의 이기심을 글로 더 펼쳐낼 생각은 없지만,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이러한 체제 하에 극단주의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누군가의 분노를 먹고 커져 가는 정치는 결코 성공해서 안된다는 점은 거의 명백합니다. 과거 우리가 알고 있는 토머스 홉스와 존 스튜어트 밀의 이야기들이 이를 대변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의 재등장으로 미국 정치는 더욱 수렁 속에 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정치학자들의 경고는 단순한 우려 만은 아닐 겁니다. 어쩌면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전에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한쪽의 극단주의 세력이 주도하는 그런 자기파괴적 정치는 더 이상 유럽 사회에 뿌리 내릴 수 없다고 단언했다죠? 하지만 그의 단언은 여실히 거짓이 되고 말았습니다.
- 물론 저자인 바바라 F. 월터가 작금의 한국 상황을 예상하고 쓴 내용은 아니겠지만 "새롭게 민주주의를 이행하는 거의 모든 나라는 선거의 적정성을 보호하기 위해 중앙의 독립적인 선거 관리 체계를 만든다. 이는 선거 과정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분석하고 여기에 속한 국가들 가운에 우리 나라를 열거하고 있었습니다. 전술된 내용은 완벽히 한국을 가리키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현대사에서 반민주적 성향의 포퓰리스트가 집권하는 것은 처음있는 일이 아니다"는 5장의 저 극명한 문장은 작게는 개인사를 헤쳐나가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떠올리게 하고, 크게는 국가의 민주주의가 어떠한 토대 위에 놓여 있는지 실로 깨닫게 만듭니다. 마치 그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깊은 메아리를 듣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라크 인구의 6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시아파는 수니파인 후세인과 역시 수니파의 주류인 바트당의 통치를 받는 것에 분노했다.
완전한 민주주의는 동료 시민들이나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의 시민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가능성이 낮다.
어떤 나라가 내전을 겪에 될지 여부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지표는 그 나라가 민주주의를 향해, 또는 민주주의에서 벗어나 움직이고 있는지 여부다.
전문가들은 이런 중간 구간을 통과하는 나라를 <아노크라시>라고 부른다. 완전한 독재도 민주주의도 아닌 중간 상태를 가리킨다.
신속하고 대담하게 개혁을 시도할수록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것이 민주화의 가장 고통스러운 현실이다.
하지만 민주화는 가능하다. 민주주의로 가는 길은 아슬아슬 하지만, 시간을 충분히 갖고 정치 제도를 점진적으로 발전시킨다면 내전의 위협이 줄어든다.
크로아티아 우스타셰의 지도자인 안테 파벨리치는 크로아티아에서 비크로아티안을 모조리 제거하기 위한 잔인한 공식을 세운 과격 민족주의자였다.
한편 견고해진 파벌의 지지를 받는 정치인들은 자신들과 추종자들에게 이득이 되는 협소한 부족적 의제를 추구할 여지가 생긴다.
내전이 폭발한 원인은 기회주의적 지도자들이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공포와 원한을 활용하면서 중무장한 폭력배들로 이루어진 소규모 집단을 국민들 사이에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모디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등 인도 선거 민주주의의 세 가지 핵심 요소를 공격함으로써 정치권력을 강화한다.
2019년 한 해에만 칠레, 레바논, 이란, 이라크, 인도, 볼리비아, 중국, 에스파냐, 러시아, 체코 공화국, 알제리, 수단, 카자흐스탄 등 모든 대륙의 114개 나라에서 정치적 시위가 분출했다.
하지만 재앙이 시작되고 있었다. 2012년 승려가 다수인 불교도 초민족주의자 집단이 페이스북을 이용해서 미얀마 전역의 무슬림 인구를 표적으로 삼았다.
한때 오랫동안 신성불가침의 민주주의를 자랑하던 부유한 자유주의 국가들에서도 이런 퇴보가 나타나다. 선거로 뽑힌 일부 지도자들이 표현의 자유를 공격하고 헌법을 개정해서 권력을 자신들의 수중에 집중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노출의 문제가 아니다. 소셜 미디어의 알고리즘은 이 아웃사이더들이 으뜸가는 관여의 추동 요인 - 공포와 분노 - 에 편승해서, 대규모 청중에게 경쟁자들과 한 나라의 제도에 관한 거짓말을 퍼뜨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소셜미디어는 유권자들에게 나쁜 정보를 쏟아붓고 있다. 사람들이 민주적 절차에 대한 신뢰를 상실함에 따라 대안적 체제를 지지하는 성향이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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