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이름이 이디스 뉴볼드 존스인 워튼은 1862년, 미국 뉴욕시 웨스트 23번가 브라운스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친은 조지 프레데릭 존스로, 존스 가문 자체는 부동산으로 많은 돈을 번 부유한 가문이었습니다. 덕분에 부친이 사망하자 워튼은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부친의 사촌은 도금시대 사교계에서 이름을 알린, 캐롤라인 셰머혼 애스터로, 워튼은 이렇게 돈과 지위를 갖춘, 명망 있는 가문의 여식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작문에 재능을 보인 그녀는, 1877년, 15세가 되던해에, 비밀리에 자신의 중편을 발표합니다. 이후 1885년 4월, 워튼은 자신보다 12살 연상인 에드워드 로빈스 워튼과 결혼을 하게 되는데요. 그의 남편은 보스턴 명문가 출신으로 워튼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유력 가문의 신사였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인 테디 워튼은 1880년대 후반부터 1902년까지 만성적인 우울증을 앓았고, 같은 기간에 워튼 역시 천식과 우울증을 앓았다고 알려졌습니다. 아무래도 그녀가 원하는 결혼 생활이 아니었기에 이 시기에 워튼은 미국과 유럽을 오가는 생활을 하게 되는데요. 이때쯤 그녀에게 평생 지기가 되어준 헨리 제임스를 만나게 되고, 동시에 왕성한 작품 활동을 지속하게 됩니다. 이런 문학 활동외에, 정치적으로 스스로를 광적인 제국주의자로 밝힌 워튼은, 프랑스 제국주의의 헌신적인 지지자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프랑스 남동부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의 이에르에서 지내면서, 그녀는 1920년에 <순수의 시대>를 완성합니다. 일생동안 단편은 85편을 쓸 정도로, 장단편에 구애 받지 않고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 그녀는, 1937년 8월 11일 뇌졸중으로 갑자기 쓰러져 세상을 떠났는데요. 이후 베르사유에 있는 외국인 묘지에 묻혔는데, 오랜 친구였던 월터 베리와 함께 영면에 들었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이 작품은 원제, "The Reef"로, 지난 1912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대산세계문학총서'의 번역 작품으로, 지난 2007년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에 앞서, 워튼의 이 작품은 생전 고통스럽지만 자신에게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해주고 또한 헨리 제임스 만큼 그녀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모튼 풀러튼'과의 연정이 이 작품에 녹아 있습니다. 극중 주요 인물이기도 한, 조지 대로우와 소피 바이너의 만남이 이뤄지는 장소(어쩌면 중대한 스포일러일 수도 있으므로)인 한 호텔의 묘사가 워튼 자신의 경험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저에 궁금증이기도 했던 워튼이 왜 유독 남자 주인공들을 '지적이며 독서를 좋아하는 인물'로 그리고 있었는지, 비로소 그 정확한 연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조지 대로우 역시, 헌책방을 그냥 지나치지 못할 정도로 책을 좋아하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었는데요. 더욱이 다른 여주인공이기도 한, 애너 리스의 입으로, "대로우가 자신의 세계를 넓혀주고, 생각의 차원을 높여주곤 했다"는 이 의미심장한 독백은, 대로우를 지적이면서 이성적인 캐릭터인 동시에 그 시대 여성들이 선호하는 남성상으로 그려낸 듯 보였습니다.
이 극을 거의 좌우한다고 볼 수 있는 소피 바이너는 어떻게 보면 워튼의 중편소설, "버너 자매"에서 부분적으로 차용한 인물로 여겨집니다. 그녀는 출신 성분이 좋지 않을 뿐더러, 여기에 양친까지 여의고, 심지어 자신 스스로를 위해 쓸 수 있는 어느 정도 가용할 수 있는 돈도 없는 상황입니다. 더욱이 그녀를 구원해 줄 어떠한 연줄도 없고 누구에게도 금전적 자비를 구할 수도 없는 실정인데요. 그녀는 성격적으로 전혀 가늠할 수 없는, 머릿 부인집에서 그저 잡일을 몇 년간 해왔지만, 그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댓가도 받지도 못하고 그 집을 뛰쳐 나온 시점입니다. 바로 이 작품의 서두가 소피와 대로우의 만남으로 시작되는데요. 저는 이 장면에서 일전에 읽은 엘리에트 아베카시스의 '밀입자'가 절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대로우는 젊은 시절,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연애도 해보고 어떻게 보면 주도적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영국 외무부의 외교관입니다. 그는 고위 외교직으로 자신의 직업에 대해서도 충실한 마음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젊은 시절 치명적인 불장난으로 인해, 자신에게 맞는 아내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애너 리스와 서로 먼 길을 돌아가게 되는데요. 아마도 애너 본인이 보기에 이렇게 지적이고 사리분별이 뛰어나고, 누군가에게 훌륭한 조언을 할 수 있는 멋진 사내가 당시 사교계에서 평판이 좋지 않은 여성과 염분을 뿌리고 다닐지는 꿈에도 몰랐고 그런 연유로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두 사람의 한결 같은 연정에도 불구하고, 애너는 거의 즉흥적으로 눈에 들어온 다른 사람과 결혼을 감행하게 됩니다.
이제 대로우는 스스로 인생 경험이 많이 쌓였고 또 직무에 있어서도 꽤 궤도에 올라, 연구도 해보고 외국에 나가는 기회도 얻게 됩니다. 바로 이 시점에서 애너는 남편을 사별하고 미망인이 된 기간이 이미 여러 해가 지나, 두 사람의 진정한 재결합이 작품의 서사 한 가운데에 놓여집니다. 다만, 애너, 그녀 자신은 프랑스의 한적한 지역에서 스스로 고립된, 자연과 가까이 지내는 삶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작고한 남편과는 전혀 애정이 없는 결혼을 시작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와 적당한 관계를 유지한 채 원만했고, 의붓 아들인 오언을 자신의 친아들 마냥 마음을 다해 키워냈습니다. 이것은 그녀가 그간 이룩한 성과 가운데 하나였는데요. 저는 이 장면에서 애너의 본성을 어느 정도 가늠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조용하고 스스로에게 진지한 여성이면서 삶과 관계에 있어, 어떠한 오점도 없는 인물인데요. 그렇지만 꽤 오랫동안 자신에게 사랑을 보이는 대로우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그렇기에 매번 둘은 서로 엇갈리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도버해협을 두고 대로우에게 보낸 전보 역시, 그런 미적거림을 다시금 반복하는 것으로 읽히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이번에도 애너의 확신을 받지 못했다고 자책하면서도 그녀의 아무런 이유도 없는 전보에 크게 실망한 대로우는 억지로 쓴 남은 휴가를 어떻게 보내야 될지, 해협을 가운데 두고 고심을 하게 됩니다. 아주 복잡하고 실망스런 상황이었습니다. 바로 이때 그는 몇해 전, 머릿 부인의 파티에서 우연잖게 만나게 된 소피를 우연히 재회하게 됩니다. 소피는 한눈에 보기에도 아름답고 젊고 매력적인 여성입니다. 워튼은 그녀의 모습에 대한 묘사에 꽤나 공을 들이기도 했는데요. "높고 감미로운 음성과 민첩한 몸놀림 뿐만 아니라 작은 코, 맑은 피부, 환하지만 연한 수채화 물감으로 그린 듯 가볍고 섬세한 용모"라고 묘사됩니다. 저는 서두에서 이 소피라는 여성이 대로우와 애너 사이에서 분란을 일으키는 캐릭터로 예측했지만 이 예상은 정확하게 어긋나게 됩니다. 그간 읽은 워튼의 다른 작품들에서 등장한 여러 인물들 중, 소피 바이너라는 인물의 마음과 행적을 통한, 각인은 그만큼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녀는 자기 희생과 사랑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절대 사람을 기만하지 않는 순수하고 절제된 성품을 가진 여성이었습니다. 아마도 작가인 워튼은, 당시 근대적인 분위기, 사회 계층에서 신분상의 계급이 많이 퇴색되고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상류 계층과 이들이 주도하는 관계의 여러 모습들, 그리고 하위 계층에게 보이는 역겨운 시선 등 여기에 대로우의 젊은 시절 하위 계층 여성들을 스스로 육체적 쾌락의 대상을 삼은 것이나, 반대로 결혼에 있어서 만큼은 자신의 격에 맞는 여성을 찾으려는 그런 시도에서 애너에게 끊임없는 관심을 지속하는 것은 단순한 남녀 간의 애정 문제만은 아니라고 여겨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애너 역시 젋은 시절부터 고생이라곤 전혀 몰랐고 여기에 자신의 지위와 부에 맞는 결혼을 했으며, 지금도 사용인들을 거느리며 아무런 부족함 없는 삶을 영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거듭되는 소피의 삶에 대한 진정성과 그것이 바탕이 된 좌절과 희망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대로우와 애너 두 캐릭터가 그 지위와 명예에 맞는 도덕 관념과 진실됨, 그리고 걸맞는 본성을 갖추지도 못한 점은 워튼이 소피라는 캐릭터를 통해 여실히 말하고자 하는 목소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한 사람의 본성과 진실됨, 고결, 책임감, 관계의 진정성 등은 계급과 부의 유무는 하등 상관이 없는 것이죠. 바로 이 두 사람을 위해 소피가 보인 자기 희생적 결단과 배려는 대미로 향하는 지점부터 저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간혹 보이는 지성과 판단력, 그리고 달변이라고 봐도 분명한 대로우의 모습은 계급적 신분도 그렇거니와 직업조차도 의미심장한 캐릭터인데요. 그에 대한 인물조성이 작가인 워튼이 공들여 썼던 만큼, 그의 허위와 가식, 그리고 위선까지도 지문 사이의 여러 상징들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애너 역시, 답답하고 편집증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그 본성안에 자리한 고결 그리고 삶에 대한 한결같은 마음 등이 한낱 얼음 조각처럼 쉽게 부서지게 됩니다. 특히, 애너의 지독할 정도로 편집증적인 모습은 작가인 워튼이 지난날 경험한 마음의 편린들에게서 비롯된 것인가 라고 의심될 정도로 집요한 서사로 점철되고 있었습니다. 그런 마음의 가시가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 의문이 든 동시에, 작가 본인의 삶과 작품의 모습이 함께 유동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끝으로 워튼이 왜 이 작품에 대해, 그렇게 큰 애착을 가졌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는데요. 약간 논외지만, 이 작품에서도 복합적인 의미로 문제의 해결사로 등장하는 인물인, 애들레이드 페인터의 인물 조성 역시, 가히 워튼 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본문 104 페이지에 오타 한 곳이 있었습니다.
그가 사귄 여자들은 모두 명백히 ‘숙녀‘였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대로우가 보기에 여자는 원래부터 그 목적으로 창조되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남자를 즐겁게 하기 위해 여기까지 진화해온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본능적으로 이 두 부류를 엄격히 구분해서 생각했고, 이 두 인생관을 양립시키려는 중간 부류의 사람들과는 교류하지 않았다.
바이너 양이 빨대로 주스를 마시는 동안 대로우는 담배를 피우면서 다른 남자들의 눈길을 끄는 여성과 같이 있다는 사실에 원초적인 자부심을 느꼈다.
바이너 양과의 관계는 이 싸구려 호텔이나 불가피하게 진부한 결말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이 세상 밖에 존재하는 미지의 영역에서 전개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삶의 모든 표현 방식을 알고 싶어 하되 그것이 아름다움과 세련된 감정을 통해 발현되기를 바라는 열정적인 아가씨는 리스가 대표하는 그런 사회에서 자신을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 행복 때문에 그 애의 행복을 조금이라도 희생해야 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조금씩 긁어내서 우리의 행복을 이뤄야 한다면, 얼마나 비참해요!
대로우에게 맨 처음 떠오른 생각은, 오언이 자신과 바이너 양이 우연히 만난 게 아니라는 의심을 한다면, 계모의 약혼자가 그런 시간에 동생의 가정교사와 단둘이 만나고 있는 걸 이상하게 여기리라는 것이었다.
"오언이 나에 대해 뭐라고 하는 건 상관없어! 사랑에 빠진 청년은 그런 상황에서 상대가 자기에게 싫증이 났다는 자존심 상하는 사실을 회피하기 위해 어떤 이유라도 갖다 붙일 거야."
소피 바이너의 사랑과, 그 사랑 때문에 그녀가 취한 행동이 대로우 앞에 버티고 선 채 그의 눈을 응시하며 그의 얼굴에 영향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내 말은, 당신이 좀 더 나이가 들면 우리 인간이 얼마나 형편없는 존재인지 알게 될 거라는 뜻이지.
지금 생각해보니 리스와의 결혼 생활은 엄격한 자제와 질서로 특징지어지는, 단조로운 일상의 연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