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그레이엄 그린은 1904년 영국 허트퍼드셔주 버캄스테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인 찰스 헨리 그레이엄과 메리언 레이몬드 그린은 사촌 사이로 둘다 '그린 킹 브루어리'로 대표되는 그린 가(家)의 일원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린은 캠브리지셔의 하스턴에서 삼촌인 윌리엄 그레이엄 그린 경과 함께 여름을 보내게 됩니다. 이곳에서 그린은 독서에 눈을 뜨게 됩니다. 이런 다독의 경험은 그의 작가 경력에 지대한 자양분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그린은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 옥스포드 대학의 발리올 칼리지에 입학하는데요. 그는 아주 잠시였지만 영국 공산당의 일원이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에 그린은 주기적으로 우울증을 겪기도 했는데요. 더욱이 유년 시절에는 기숙 생활에서 자주 괴롭힘을 당해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옥스포드를 떠난 이후엔 개인 교사로 일하다가 언론계의 경력을 쌓게 되는데요. 먼저 노팅엄 저널에서 일했고, 그 다음에는 타임즈의 부편집장이 되었습니다. 1929년이 되자 비로소 그의 첫번째 소설인, '내적 인간 The man within'을 출간하고, 이듬해인 1930년부터 본격적인 작가 경력을 이어가게 됩니다. 그는 또한 홀로 세계 오지를 여행하는 것을 좋아했는데요. 여행중 단기간 거주했던 장소를 자주 소설의 배경으로 등장시킨 점은 그의 고유한 작법 가운데 한 형태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특히 이 작품의 배경인 아이티와 관련해서도 그는 1954년에 직접 아이티를 여행하고 당시 독재자였던 프랑수아 뒤발리에의 실체를 몸소 직면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1957년에는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와 직접 인연을 맺었지만 그럼에도 후에 쿠바를 장악한 카스트로 정권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생애 마지막 몇 년을 스위스 제네바 호수에 있는 베베에서 보내는데요. 마침 이곳에 와 있던 찰리 채플린과도 인연을 맺게 되는데 이 두 사람은 곧 절친한 관계로 발전합니다. 1986년에 그린은 영국의 공로 훈장인 '메리트 훈장'을 수여 받고 이후 5년 뒤인, 1991년에 급성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의 유해는 스위스 보주의 코르소 묘지에 묻혔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작품은 지난 1966년에 원제, "The Comedians"으로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3년 1월에 초역 되었습니다.
이 작품을 일독하고 나서 처음 들었던 느낌은 바로 먹먹함이었습니다. 우선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아이티로 그 시대적 배경은 1957년 이후의 시점입니다. 아이티의 독재자 프랑수와 뒤발리에가 비로소 통치를 시작하게 된 시점이 바로 1957년 이후입니다.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작가인 그린이 아이티를 '답사'한 것인지는 다소 불명확합니다만 그가 당시 묵었던 호텔과 여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브라운과 다른 주요 인물인 존스는 그의 지나온 행적과 일부 본인의 성격이 복합적으로 관련되어 있다고 여겨지는데요. 물론 그린은 이에 대해 어느 정도는 부정하기는 했습니다. 이미 아이티는 1915년에 미합중국 해병대의 불법적 침공을 받았고 이 과정에서 이들 해병대에 의한 기총 사격으로 수많은 아이티인들이 학살을 당하게 되는데요. 사실 쿠바를 제외한다면 카리브해와 남아메리카는 미국의 사활적 이익이 달려 있는 지역으로 여러 경제적 요인과 정치적 배경이 뒤섞인 개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히스파니올라 섬을 양분하고 있는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의 운명이 미국에 의해, 확연히 달라졌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미국의 이익'이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표출되는지 우리는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명백한 사생아라고 볼 수 있는 주인공인 브라운은 그 신분과 정체가 불명확한 어머니로부터 어린 시절 버림받은 이후로, 자신을 결코 드러내지 않은 채,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심지어 타인들에게까지 의심하고 냉소하는 인물입니다. 그가 지나온 40세 이전의 삶이 이런 불명확한 외피로 겹겹이 둘러쌓여 있다는 것은 분명한데요. 그런 와중에 생사를 전혀 알지 못했던 모친이 아이티의 포르토프랭스의 호텔을 자신에게 유산으로 남기게 됨으로써, 유럽을 전전했던 지난 삶에서 비로소 정착지를 갖게 됩니다. 매기 브라운과 라스코 빌리에 백작 부인이라는 신분을 갖고 있던 모친은 알 수 없는 연유로 이 아이티에 도착했고, 마찬가지로 그녀의 행적은 여러 이유로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그린은 후에 결말을 염두해 두고, 이 백작 부인의 정체를 모호하게 만든 것으로 추측되는데요. 그녀가 비밀로 가득한 레지스탕스이거나 아니면 혁명가라는 사실상의 추측은 전적으로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고 있습니다.
브라운은 특정되지 않은 남아메리카의 한 국가의 대사 부인과 불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마르타로 독일 여성입니다. 그녀의 남편인 루이스와는 앙헬이라는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고, 우연히 만난 브라운과 자신의 삶을 맹렬히 소모시키는 듯 보이는 끝이 예견된 관계를 지속해 오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들을 둘러싼 미국인 부부인 스미스씨와 스미스 부인, 앞서 언급한 정체불명의 존스가 극을 이끄는 주요 인물들입니다. 이에 모종의 이유로 아이티에 들어온 존스와 마찬가지로 소위 '채식주의 운동'의 홍보를 위해, 포르트프랭스에 도착한 스미스 부부 등은 세계 바깥의 외부인이 이 독재 국가를 어떻게 경험하게 되는지 여실히 드러냅니다. 과거 아이티의 슈바이처라고 불렸던 프랑수아 뒤발리에는 사람들이 부르던 파파 독 (papa doc)이라는 별명에 무색하게 서슬퍼런 독재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정권을 비호하는 비밀 경찰인 '통통 마쿠트'와 포르트프랭스의 야간 통행 금지와 당국의 허가를 요하는 통행권 등은 과거 우리가 경험한 군부 독재 정권과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스스로 존스 소령이라고 밝히는 영국인 존스는 분명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인물입니다. 특이하게도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기도 하고 무조건 다변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는 능수능란한 화술을 갖고 있는데요. 어느 정도 그가 자신과는 동질의 인간이라고 느꼈던 주인공 브라운만이 그의 실체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후반부에서 드러나는 존스의 진면목은 꽤나 예상 밖이기도 했는데요. 그린의 이 작품이 아이티 독재 정부에 신임하는 아이티인들에 대한 지원으로써 어떤 치명적인 군사작전을 위해 파견된 스파이나 특수 군인으로 여겨졌던 존스가 '이 시대의 극명한 허위성'만큼이나, 가히 볼품 없는 인물이었다는 점이 후에 밝혀졌음에도 그 이전부터 일관되게 브라운의 관심을 끕니다. 버마 전선에서 일본군과 치열하게 싸웠다는 존스의 그런 이력은 브라운 뿐만 아니라 주변인들의 주목을 받게 되는데요. 실제로 치열한 전장에서의 전투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평범한 사람과의 현실 인식에 대한 차이는 어쩌면 이런 독재 국가에서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실로 다른 차원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만약 그것이 허위가 아니었다면 말이죠.
"평생에 히틀러와 같은 경험은 딱 한 번이면 족하다"는 브라운의 정부, 마르타의 언급은 프랑스아 뒤발리에를 몸소 겪고 있는 죄없는 아이티인들에 대한 연민이기도 합니다. 특히, "암흑의 공화국", "공포와 좌절의 나라"라는 수식어로 표현되는 아이티의 현실은 그만큼 참혹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독재 권력에 밉보여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회복지부 장관과 비밀 경찰에 의해 알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존재와 비밀경찰이 지닌 리볼버와 기관총으로 곳곳에서 살해되는 아이티인들의 묘사, 그리고 이런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많은 대사관들의 대사들이 본국으로 소환된 상황은 아이티의 엄혹한 현실을 짐작할 만합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모친과 인간적으로 가까웠던 이상주의자인 닥터 마지오와 브라운의 대화를 통해, "만약 수일 내에 미국 대사관이 수도에 복귀하게 된다"면, 이러한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이 개선될 수 있다고 판단하는 부분은 이 지역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능히 예측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냉소와 현실에 대한 비꼼, 그리고 풍자는 그레이엄 그린 문학의 진면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보기엔 좋은 타입의 영국인 같소", "그리고 우리는 지금 이성의 세계에 살고 있지 않아요." 와 같은 대사들은 냉소와 풍자를 포함하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농담은 비겁하고 무력한 자들의 탈출구"라고 극에서 언급되기도 합니다만 이 작품의 제목처럼, 모두가 '코미디언'이라고 자임하는 자조와 비틀림은 아마도 이 독재 정권을 비호하는 강대국과 "아이티의 일은 아이티 국민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일종의 인식적 편의주의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는 "흑인들의 독재국가와 백인들의 독재국가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문법의 극단적 요체를 담고 있는데요. 냄새나는 흑인들의 독재 국가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당시 주요국 백인들의 그런 철저한 인식과 자유세계와 공산세계의 자신들의 운명을 놓고 벌이는 치열한 대립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에세도 아이티의 현실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 철저히 고립된 브라운과 존스, 그리고 많은 아이티인들이 부서져 나가는 삶의 파편에서, 그 의미를 잃고 끝내 자포자기로 체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이 코미디언이라는 제목의 단어는 인간의 양심과 입이 가로막히고 이에 현실을 냉소하며, 진실을 눈에 담지 못하는 비틀린 인간들의 삶 그 자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끝으로 작품 후반부에 드러나는 닥터 마지오의 비참한 최후는 이 소설에서 그가 독재자인 프랑수아 뒤발리에의 대척점이라는 것을 인지한다면 단순히 이데올로기 놀음이 아니라, 비정상에 의한 정상의 몰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린에 의한 지독한 블랙 코미디와 같은 결말이 이어지는 것이죠. 다른 한편으로 닥터 마지오는 아버지의 정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자란 브라운에게 부정이 무엇인지에 깨닫게 해준 인물인데요. 더불어 마르타에 대한 인물 조성 역시, 앞선 닥터 마지오와 마찬가지로 숨겨진 맥락이 존재합니다. 그녀는 브라운에게 단순한 정부가 아니라, 그가 살아가게 하는 목적이었는데요. 소설 초반부에 모든 걸 잊고 뉴욕으로 향했음에도 브라운이 다시 아이티로 돌아온 연유에는 바로 그녀가 있습니다. 또한, 브라운이 그녀에게 반쯤 장난으로 애정의 도피를 요구하더라도 하나 뿐인 아들을 위해 이를 무시하고 있기도 한데요. 이 점은 분명 어릴 때, 자신을 버린 모친과 매우 구별되는 설정이기도 합니다. 저는 극에서 닥터 마지오와 브라운이 나누는 대화 가운데, 자신은 가톨릭를 믿는 신자이고 지금의 아이티가 처한 현실에서 가톨릭 교도로서의 의무를 다할 것이라는 취지의 결심을 엿볼 수 있었는데요. 아이러니컬하게도 프랑수아 뒤발리에가 오로지 잘하는 것이라고는 공산주의를 막고 있다는 이 극명한 서사는 이 조그만 카리브해의 섬나라에도 냉전의 그림자가 왜곡된 모습으로 드리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해 해주었습니다. 아무리 독재로 자국인들을 탄압하더라도 공산주의만 막을 수 있다면 된다는 식의 논법은 아마도 과거 미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가 당시 우리의 군사 독재 정부에 가졌던 개인적 혐오에도 불구하고 냉전의 첨예한 대립과 그에 따른 미국의 국익에 따라 이를 용인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더구나 지금까지도 아이티는 서구 사회와 자유 진영에 철저히 고립되어, 오늘날까지도 이 카리브 해의 흑인 국가가 처한 환경이 그다지 녹록하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중후반부에 한국 전쟁에 대한 대화와 설명이 잠깐 등장합니다. 여기서 트루먼 대통령의 전쟁 개입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고 있었는데요. 이 뿐만 아니라 대만의 장개석아 벌인 일들까지, 이를 통해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분명한 냉전 시기임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모호성을 화려한 정장처럼 입고 있었으며, 이를 자랑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나를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처럼.
여자에게도 동업자에게도 심지어는 자기 자신에게도 가식적으로 살아온 시간이 많은 두 사람이라 서로를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가 아무리 진하게 포옹해 준다 한들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는 증거밖에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자기 조국의 미래는 명확히 내다봤지만, 조국을 이루는 개개인들의 운명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했다.
그때 운전대 위로 몸을 구부린 채 울고 있는 그녀가 보였다. 그녀에게 작별 인사를 던진 후에야 나는 그녀 없이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았던 것 같다.
아주 약간의 빉정거림이 섞인 내 말투에 그는 "난는 하나이자 나뉠 수 없는 아이티의 깃발이다. 프랑수아 뒤빌리에"라고 응수했다.
우리는 껴안은 채 한참이나 그렇게 누워 있었다. 우리가 함께한 가장 행복한 순간은 그때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 처음으로 우리는 애무 이상의 무언가를 함께 나누었다.
"미국 국무부는 카리브해에 조금이라도 소란이 일어나는 걸 용납할 수 없었던 겁니다."
두려움은 기묘한 효력을 지니고 있다. 혈액 속으로 아드레날린을 분출하고, 남자가 오줌을 지리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