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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특이한 소재를 가진다. 단순히 "태교"가 아니라, "조선시대의 태교"를 소재로 삼는다. 책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조선시대의 태교의 의미와 방법이 나오고, 저자가 생각하기에 그 당시의 태교가 지니는 당대의 의미와 현대로 계승할만한 가치에 대한 내용도 나온다. 모든 책은 단순히 저자가 생각해낸 하나의 소재와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해낼 뿐 아니라 거기서 이끌어낼 현대와 미래에서의 가치와 의의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조선시대 태교의 양상과 역사에 대해 전반적으로 논하지만, 그것이 지닐 사회적 가치를 고려한 부분이 참 마음에 들었다.
사실 나는 단순히 태교가 궁금해서 이 책을 읽은 것은 아니었다. 최근 사회 흐름을 보면,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이 만연하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진 이후 여성의 일과 가정의 양립에 대한 부담은 남성과 분담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가치관으로 인하여 온전히 여성이 짊어지게 된 것이다. 보통 가치관과 같은 정신적인 부분의 사회적 발전이 항상 더딘 법이다. 여성의 사회진출과 전반적인 국민경제 향상 등에 비해 전통적 가치관은 묵혀진 채 세습되어왔다. 그러나 결국 더디더라도 가치관은 변하기 마련인 법, 여성들의 양육 부담이 전통적인 가치관에 의해 묵혀지기만 했더라면 "부담"이라고 생각지 못하였을 것이다. 일과 가정 중 일을 선택하였을 때의 기회비용과 가정(양육)을 선택하였을 때의 기회비용을 고려하여 여성들은 점차 양육에 대한 부담을 최소화하는 길을 선택했다. 따라서 출산과 양육에 대한 거부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하였고, 남성들 또한 여전히 만연한 전통적 가치관 하에서의 가장으로서의 부담과 새로운 가치관 하에서의 가정 일의 분담(양육부담)을 모두 접하게 되어 출산과 양육에 대한 부담이 극도로 높아진 상태이다. 사실 선진국으로 나아가면서 출산율 저하는 이러한 흐름 하에 당연하며, 더 발전하고 경제가 활성화될 수록 다시 출산율이 점차 회복되는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어느정도의 경제적 향상 이후에는 자녀양육에 대한 욕구가 다시 형성) 지금과 같은 현상은 잘못되었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다만 우려되는 점은, 출산과 양육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시장노동의 기회비용을 고려하여 출산과 양육을 미루거나 하지 않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사회 내에 출산과 양육과 관련한 사안에 대한 사회적 혐오감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이제 어린 자녀와 그 자녀의 부모에 대해 공공장소에서 경계의 눈초리를 주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나는 개인적으로 대학교 1학년 때 잠깐이나마 아동가족학에 대한 전공을 듣기도 하였고 그 분야를 전공하는 주변 친구들 덕분에 학문적으로나마 가족에 대한 가치관을 성립하며 좋은 가정을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는 바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고로 인간과 인간이라는 "관계" 속에서 형성된 존재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관계를 형성하기를 원하고 관계를 형성한다. 따라서 태어나면서 가족과 관계를 형성하고, 점차 자라면서 친구, 선생님, 업무동료 등의 관계를 형성하다가 나중에는 결혼과 출산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나가는 인간의 전반적인 관계의 역사에 대해 나는 굉장한 숭고함와 경이로움을 느끼는 편이므로 출산과 양육에 대한 부담이 만연한 사회에 대해 안타깝게 여기며 차후 사회적으로 이 부담감을 해소하며 건강한 가족관계를 구축해나가는 사회를 형성하기 위해 조금이나마 노력하고 싶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우리나라에 퍼져있는 출산과 양육에 대한 부담감, 공포, 혐오감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과연 이 "조선엄마의 태교법"에서는 어떠한 사회적 의의를 남겨줄 수 있을지 기대하며 읽게 되었다.
사실 전반적으로 조선시대의 태교의 역사와 양상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현재와 미래의 태교에 대한 의의를 전해줄법한 내용은 머릿말과 결론 부분에 잠깐이나마 소개된 정도에 그쳐 살짝 아쉬웠다. 물론 저자께서는 조선시대의 태교의 역사와 양상을 살펴보며 그때와는 다른 현재의 사회적 가치를 상기시키며 묵힌 가치관의 타파와 현대와 미래에서 계승할 만한 가치를 탐구하기 위해 노력하신다. 조선시대의 태교는 당연히 아들을 낳기 위한 조선시대의 여성(어머니)들의 이야기에 중점을 둔다. 농업사회에서부터 내려온 남성의 노동력이 인적자본의 큰 비중을 두기 때문에 아들의 중요성이 커졌을 것이다. 다만 조선에서부터는 농업 뿐 아니라 점차 단순 물리적 노동력 뿐 아니라 지식, 지성, 지혜의 중요성이 두드러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런 전통의 가치관이 필요하지 않음이 현대사회에서나 정신적 개혁이 나타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사회의 발전은 어떻게 이루어질지 조금이라도 생각해보면 자연스럽게 무엇이 중요하고 인권의 범위를 어디까지 둘 수 있는지 점차 넓혀가는 것이 가능할텐데 말이다. 그 옛날에도 "한비자"에서는 "모두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는데 남자아이는 축복을 받고 여자아이는 대수롭잖게 여기는 것은 부모가 장래에 도움이 될 것을 생각하고 영구적인 이익을 헤아리기 때문이다."라 하였고, 중국 남북조 말의 관료 안지추는 딸 차별 세태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고 한다. 나는 특히 여기서 공부와 생각의 중요성을 느낀다. 어쩌면 전통적 가치관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편할 수 있음에도, 끊임없는 인간에 대한 고민과 공부가 혁신적이고 주변의 압박에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그 힘이 굉장하다.
책에 대한 내용보다, 이 책을 소재로 펼쳐진 나의 잡다한 생각이 더 주를 이뤄버린 리뷰였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사회에는 너무나 다양하고 많은 문제가 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공부를 할 수록, 내가 지키고자하는 나의 이익의 범주가 갈 수록 넓어진다. 나의 이익만 중요한 것에서 시작하여, 그 나의 이익의 범주가 가족이 되고 내가 속한 다양한 집단(성별, 국가, 지역 등등)에서 결국은 인간 전체가 내가 지키고자 하는 나의 이익이 될 것이다. 나의 본질적인 이상향인 복지(well-being)가 사회정의로 넓어질 것이다. 이 책은 나에게 이러한 나의 생각을 확고하게 해주었고, 재미있는 소재를 던져줌으로써 내가 나중에 가정을 형성한다면 어떤 태교가 좋은 태교일지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