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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2570님의 서재
  • 북정록
  • 신류
  • 9,810원 (10%540)
  • 2018-09-15
  • : 356

https://blog.naver.com/ro2570/221360285260

이 책은 청나라가 조선에 원군을 요구해, 총 2차례에 걸친 흑룡강원정(나선정벌) 중 2차에 출병한 신류의 참전기이다. "나선정벌"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법 한데, 몇 년도에 어떤 나라 간의 사건인지 정도를 수능 한국사를 위해 공부한 정도일 뿐 이렇게 구체적인 기록으로 이 역사적 사건을 읽어보는 것에 감회가 새로웠다. '참전기'라는 소개에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상기시키기도 하였다.

 나는 "머리말"과 "북정록에 대하여"라는 소개 부분의 내용도 흥미로웠다. 어렸을 적에는 책을 읽을 때 바로 책의 본 글을 읽기 시작하면서 머리말까지 읽기에는 귀찮았었는데, 고작 한 페이지의 머리말일지라도 머리말은 책의 본 글에는 직접 표출 못한 글쓴이 혹은 역자의 생각이 드러나기도 하는 책의 중요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든 머리말까지도 꼼꼼하게 읽었으면 한다.
 아무튼 책의 서론 부분으로 들어가자면, 이 책의 역자가 단순히 신류의 참전기를 옮기는 정도가 아닌, 상당한 공부와 자기 생각을 하였음이 드러난다. 전쟁의 참전기에 쓸데없는 내용이나 평범한 일상적인 내용은 당연히 없기 때문에 실제 참전기 내용은 100페이지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역자는 그 적은 분량의 참전기 전에, 이 참전기의 역사적 의의와 당대 상황과의 연관성, 더 나아가서는 읽는 방법과 역자가 독자에게 거는 기대, 현재 "역사가의 상황"을 비판하며 역자의 역사를 대하는 태도까지 드러낸다.
 나는 특히 역자의 역사를 대하는 태도가 인상 깊었다. 역자는 상당히 거친 어조로 현대의 역사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지니는데,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자신 있게 말해낼 수 있는 역자가 부러울 정도였다. 역자는 현대의 역사를 "fancy 한 역사 이야기"로 바라보는데, 나 또한 동의한다. 조금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면, 일반 대중이 글을 읽을 줄 알게 되는 순간부터 글과 책은 어느 일부 계층만의 전유물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에 따라 책 또한 예술의 부류로 "대중성"이 중요한 요소가 되었는데, 이러한 흐름 속의 부작용은 바로 글과 책의 무게감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것이다. 아마 과거나 현재나 훌륭한 책의 절대적 수량은 비슷하거나 현재는 훨씬 더 많아졌을 수도 있는데, 읽을 수 있는 책 중 그러한 훌륭한 책의 상대적 비중은 현저하게 낮아졌을 것이다.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만 가도, 저자의 전문성과 훌륭한 구조 혹은 내용보다는 감각적인 표지, 삽화, 다양한 매체에서의 노출이 잦았던 사람들(셀럽) 등이 주요한 요소로 꼽히는 듯하다. 사실 북정록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다른 이야기로 흘러간 감이 있지만, 역사를 대하는 현재 우리의 시각을 성찰해볼 필요도 있는 듯하다.

 이제 북정록에 대한 이야기에 넘어가고자 한다. 사실 북정록 자체에 대해서 내가 이야기할 바는 많지 않다. 이 참전기는 정말 중요한 역사적 자료로 활용되기 참 좋을 법한데, 그 이유에 대한 나의 생각 정도가 북정록에 대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대부분이다. 내가 이 북정록이 쓰일 당대의 역사에 대해 조사 중인 학생, 학자라면 내용에 대해 혼자 조용히 공부할 테고, 따라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

 1658년 4월 6일 맑음~8월 27일 맑음까지의 일기가 이 북정록이라는 참전기 내용의 전부이다. 쓸 내용이 없더라도 매일매일의 월, 일, 날씨를 적은 것은 전쟁 중인 장군의 일기임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날씨는 농사뿐만 아니라 전쟁에도 당연히 중요한 요소인데, 날씨에 따른 전략 변경과 적군의 행태 예측 등과 관련할 것이다.

신류는 전쟁, 전략, 아군, 적군 등에 대한 모든 상황을 제시하고 맥락을 파악하여 분석하는데 뛰어난 기술력을 발휘한다. 특히 나는 "6월 10일"에 기술한 신류의 참전기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는데, 이른 아침부터 펼쳐진 아군과 적군의 상황 제시뿐만 아니라 청군 대장이 전투 이후 보인 행동에 대한 자신의 생각까지도 기술한다. 또한 아군의 누가 어떻게 다치고 죽었는지 상세히 기술하는데, 몇 명 정도의 수치가 아니라 정확히 "누가" 다치거나 죽었는지 모든 이름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신류는 기술과 역사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구체성 강박증이 있는 사람으로 볼 수도 있지만, 참전기를 기록하는 상황의 맥락을 파악하여 적절하게 구체적인 기술을 해나갔다. 또한 나선정벌의 상황 자체가 청의 조선에 대한 징병적인 태도가 강해 청군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를 주관적으로 드러내기에 바쁠 수도 있을 텐데 상당히 상황을 객관적으로만 제시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신류의 청에 대한 적대감,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진다. 또한 그렇다고 신류가 온전히 감정을 배제하는 기술만을 보인 것이 아닌, 주관적인 감정을 드러내기도 하는 점이 인간답고 인상 깊었다. 아군과 자신의 처지에 대한 애처로움 등을 서술하기도 하였다.

 신류를 단지 구체적인 참전기를 써주어 후대의 역사가들이 감사할 한 장군에 그치기보다는, 나는 신류라는 한 성인에도 대단함을 느꼈다. 전쟁 과정 중의 사건, 청군과의 대화 등을 통해 솔직한 인정의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또한 확실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그 불확실함을 인정하는 서술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훌륭한 참전기를 쓴 한 장군뿐 아니라, 훌륭한 기록가이고 작가이다.

 오랜만에 참 담백한 역사 분야의 글을 읽은 듯하다. 물론 좋은 글, 훌륭한 사람들도 많지만 영양가도 있지만 결국 자극적인 과자들을 먹다가 비로소 건강한 자연의 식단을 즐긴 기분이다. 내용 자체의 흥미로움도 많았지만 조금 더 구조적으로, 또한 이 책이 쓰인 지금 이 시대의 역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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