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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아 우라
해피캐스터  2015/04/15 17:08
  • 코레아 우라
  • 박삼중
  • 13,320원 (10%740)
  • 2015-03-26
  • : 55

토마스 안중근의 삶의 흔적을 쫓아 30년 세월을 보내고 계시는 박삼중 스님께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재소자들을 상대로 교화해 가시는 것은 매스컴을 통해 알았지만 스님의 책을 통해 스님 자신의 일대기를 보니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고 대단히 훌륭하신 분이심을 알았다. 또한 스님의 글을 통해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볼 수 있어 감사와 감동이 가득하다. 많은 국민들이 이 책을 보고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신적 지주로 삼으며 교육의 지침이 되었으면 좋겠다. 특히 청소년들이 많이 읽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해지는 교육이 될 수 있다.

 

안중근 의사 전기는 감동, 감동, 감동이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져 글자가 아른거려 책을 볼 수가 없어 몇 번을 덮으면서 읽었다. 안중근 의사처럼 이리도 훌륭하신 분들이 우리나라의 선조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읽는 내내 안중근 의사의 곧고 정의로운 강인함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비범한 영웅 안중근의사의 이름은 응칠, 배에 7개의 점이 있다고 해서 응칠로 불려 졌는데 부친은 무거워지라는 의미의 중근으로 개명해주었다. 그의 뤼순 형무소에서 쓴 자서전도 ‘안응칠의 역사’이지만 안중근이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이 역사에 길이 남을 운명을 부친이 미리 예견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도마’라는 그의 호는 세례명 ‘토마스’의 한국식 발음이다. 안중근의사 성정은 남자다우며 기개와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청년으로 하고 싶은 말은 다 한다고 해서 친구들이 ‘번개처럼 빠른 입’의 뜻으로 전구라는 별명을 붙여 줬다. 그는 나라를 사랑하는 부모님께 애국을 배워 부끄럽지 않는 아들로 살았으며, 동양평화를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아름다운 청년 32세의 짧은 생은 전 세계에 알려지고, 지식이 있는 일본인도 그를 존경해마지 않는 영웅이었다. 상대 나라의 총리를 사살한 사람인데도 그 나라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놓았다. 뤼순 형무소에서 안중근 의사를 감시하는 헌병 지바 도이치, 구리하라 형무소 소장, 쓰다 가이준 스님 등 안중근 의사를 만났던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그를 추앙하고 존경하게 되기까지 안중근의사의 인품과 지금가지 알려진 것 이상의 면모들이 있을 것이라는 저자 박삼중 스님이 궁금해 하시는 사람 안중근이다. 박삼중 스님을 통해 안중근 의사의 전기가 사람들에게 읽혀지게 됨이 정말 다행한 일이다. 지바 도이치는 안 의사에게 ‘위국헌신군인본분’ 글귀를 선물 받고 고향에 돌아와 그의 위패를 모시며 추모 기도를 드리고 백여 년 세월을 지킨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의 후원자 구리하라 형무소 소장에게 그가 사형당하기 전에 써준 유묵 ‘경천’은 안중근의사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듯하다. 중국 혁명가 쑨원이 안중근의사의 거사를 치하하는 송축 시의 ‘살아서는 100년을 못 채워도 죽어 1000년을 살리라’처럼 그의 정신은 길이 역사에 남아 흘러가고 있다. ‘경천(敬天)’은 카톨릭 신자인 안 의사가 감옥에서 글씨를 쓰고 형무소 소장과 그 가족이 긴 세월 동안 간직하고, 사형수들의 대부라 불리는 박삼중 스님이 한국으로 들여와 성당에서 그것을 구입해 천주교 대교구에 기증하기까지 꼬박 100년이 걸린 것이 하늘의 뜻인 듯해 숙연해진다는 스님의 말씀이 모든 것이 연관되어 연결 지어지는 듯 필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지 못해 유언으로 남기신 “조국이 광복된 후 나의 유해를 고국으로 안장해달라”는 피맺힌 화두를 외면하지 못하고 스님 홀로 버거운 짐을 지시며, 나이 들고 당뇨 합병증으로 이틀에 한 번씩 신장투석을 하고 계시면서도 쉬지 않고 사명을 가지고 안중근의사의 유해를 찾고 계신다는 것이다. 노스님의 그 고통이 얼마나 크실까 걱정되고 하루 빨리 스님의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빨리 이루어지길 기원한다.

하얼삔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저격하고 “코레아우라”를 외치는 안중근 의사의 처연한 모습을 상상해본다.

 

동네 어느 집에 불이 났는데 부모도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만 있던 때에 아이들을 구하고 죽은 청년의 이야기를 듣고 ‘정의’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안중근 의사의 아버지가 안중근에게 해주셨다.

“모든 사람이 옳다고 믿으면서도 선뜻 행하지 못하는 일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정의이다. 그 청년이 위험하다는 걸 몰라서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간 것은 아닐 게다. 위험을 무릅쓰고 아이들을 구해주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렇게 했겠지. 그렇게 정의는 때론 부모 자식 간의 사랑보다 더 숭고한 가치를 보여줄 수 있단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논어>의 [헌문] 편에 나오는 ‘견리사의 견위수명 구요불망평생지언 역가이위성인의(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不忘平生之言 亦可以爲成人矣)’를 말씀해주었다.

“공자가 말씀하셨다. 이득을 보면 의리를 생각하고 위태함을 보면 생명을 바칠 줄 알며, 오래전의 약속에 대해 평생 자기 말을 잊지 않고 실행하면 성인이 될 수 있느니라.”

그때 해주신 말씀이 나한테는 삶의 좌표와 교훈이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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