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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당화 그늘
  • 불의 시대
  • 스티븐 J. 파인
  • 17,100원 (10%950)
  • 2025-07-11
  • : 165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재 역사학자인 스티븐 파인의 [불의 시대]란 책이다. 저자가 만든 용어인 Pyrocene은 화염세(火炎世)를 의미한다. 번역본 제목은 [불의 시대]다. 저자는 세 가지 불을 이야기한다. 자연적인 불, 인위적인 불, 암석 경관을 태우는 불 등이다. 화석 기록에 따르면 불은 약 4억 2천만년전 관다발 식물이 번성하던 실루리아기 초반에 최초로 등장했다.(42 페이지) 실루리아기에 처음으로 자연발화한 것이라면 200만년전 처음 인공으로 불을 붙이기까지 상당히 긴 공백이 있었다. 세 번째 불인 암석 경관을 태우는 불은 화석 연료를 태우는 불로 첫 번째, 두 번째 불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저자는 지금은 불이 더 많은 불을 만드는 시대로 인간이 자신도 모르게 연 불의 시대를 제대로 살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어떤 곳인가? 유일하게 불이 있는 행성이다. 지구에서는 해양생물에서 산소 대기가, 육상 생물에서 불이 잘 붙는 탄화수소(테르펜, 송진)가 등장했다. 저자는 불이란 물질이 아니라 반응이라고 말한다. 즉 환경이 받쳐줘야 불이 난다는 것이다. 허리케인, 홍수와 비교하면 금방 알 수 있다. 불은 허리케인, 홍수와 달리 생물과 별개로 일어날 수 없다.

 

지질 시대가 이어지면서 대기 중 산소 농도는 오르내리며 14~16%를 유지했는데 이것보다 적으면 생물군을 태우기 어렵고 30~35%가 되면 불길을 잡기 어렵다. 불이 빠른 연소라면 호흡은 느린 연소다. 인류는 200만 년 이상 불을 이용했고 불 없이 존재할 수 없었다. 불이 나는 곳에서 번성했고 건/우기가 없어 불이 나지 않는 암석 사막, 습한 우림, 그늘진 숲에서는 생존하려 고군분투했다. 지구가 결빙과 해빙 사이에서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이나 요동치며 온갖 변화를 일으킨 탓에 육상 생물이 살기 어려워졌다. 서식지가 바뀌고 늘었다가 줄어들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숲이 초원으로, 초원이 사막으로 변했다.

 

해안가는 경사를 드러내며 확장하다 얼음 아래로 가라앉았다. 계곡물은 호수를 채웠다가 잠깐 생겼다 사라지는 플라야로 흘러 들어갔다. 아한대 지역이 얼음 속으로 사라졌다. 언제나 그랬듯 적응하는 종이 있는 반면 아닌 종도 있었다. 전반적으로 멸종에 가속이 붙었다. 홍적세는 260만년간 이어지면서 지구의 5대 멸종 중 최후의 막을 열었다. 홍적세는 거대 동물의 시대였다. 대륙 만한 빙상, 차디 차게 얼어붙은 환류를 일으킨 해양, 거대한 호수, 광활한 사막 그리고 온 세상을 점령한 거대 동물을 자랑했다. 홍적세 내내 결빙과 해빙, 멸종과 출현이 계속되다가 흐름이 멈췄다.

 

인간이 돌본 경우를 제외하면 거대 동물을 비롯한 여러 생물은 되살아나는 일 없이 계속 스러져 갔다. 얼음 없이 돌아오지 않고 녹아 없어지기만 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모든 호미닌처럼 빙하기에 등장했다. 그러나 불을 다룬 덕에 지구상에서 유일한 호미닌으로 등극했다. 그들은 불쏘시개를 지렛대 삼아 아르키메데스처럼 지구를 움직였고 때마침 유리한 환경이 그 받침점으로 작용했다. 불은 지형, 기후, 초목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인다. 마지막 빙하기가 찾아오자 화재 친화적 환경이 펼쳐졌다. 홍적세가 화염세로 넘어간 것이다.

 

스스로 불을 붙일 수 있었던 호미닌은 훨씬 더 유리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질학적 시대를 열어젖혔다. 지구가 유일한 불의 행성인 것은 지구가 유일하게 생명체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호미닌은 불을 발명하지 않았고 주변에서 발견해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불은 도구인 동시에 동반자였지만 무엇보다 힘이었다고 말한다. 불을 다루는 생명체가 화재 친화적 시대와 만난 시점은 매우 의미 있는 변곡점이다. 그래서 식물이 대륙을 장악한 이후로 지구상에서 불이 보여준 가장 큰 변화로 생각해야 한다.

 

요리는 중요한 기술이자 화염 기술의 근본이었다.(102 페이지) 이는 모든 화염 기술의 표본으로 자리 잡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모래, 광석, 점토, 진흙, 석회암, 나무, 석유를 요리하듯 가공해 유리, 금속, 도자기, 벽돌, 시멘트, 타르, 테레빈유를 생산하는 방식을 터득했다. 저자는 인간이 길들인 최초의 존재를 불이라 정의한다. 불은 생태계의 야생적 존재를 인류의 통제하에 두고 공생을 시작한 길들이기의 대상이었다. 돌은 통제의 대상, 불은 길들이기의 대상이었다. 돌은 일방적인 변형의 대상이다. 사용후 방치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불은 지속적인 양육과 관리가 필요한 길들이기의 대상이다. 잘못 관리하면 인간 거주지를 태워 없앨 수 있다.

 

불만 있으면 생태계에서 무엇이든 모으고 뒤쫓고 포획할 수 있는 꿈같은 일이 펼쳐졌다. 사람들은 삼림과 이탄 지대를 베는 동시에 바싹 말리고 습지에서 물기를 없애며 가축을 풀어 덤불이 우거진 땅을 다지고 관목을 다듬으면서 불이 붙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후 화재 이후 환경에 적응한 식물을 도입해 식량을 재배할 수 있었다. 거의 어디서나 농경지를 넓혀주는 불 덕분에 범람원 바깥에서도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불이 불답게 타오르려면 연료가 충분해야 했다.(116 페이지) 동물은 느린 연소를 하는 존재이고 불은 빠른 연소를 하는 존재이다. 동물은 느린 연소를 위해, 불은 빠른 연소를 위해 똑같이 풀, 잔가지 등 미세 연료를 두고 경쟁했다.(120 페이지)

 

화염 기술이라고 해서 모두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방화는 불로 공들여 이뤄낸 것을 파괴할 수 있었다. 불과 검(劍)은 전쟁의 줄임말이었다. 화력은 군사력을 나타냈다. 사람들은 불을 통제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었지만 만족할 줄 몰랐다. 과학적 화염 기술은 연료 유무에 따라 제약을 받았다. 당시 연료원이던 자연경관의 제약을 받은 것이다. 생물학적 화염 기술은 자연경관의 특성에 따라 벽에 부딪혔다. 때마침 물리학적 화염 기술이 실용적인 목적에 무한히 쓸 수 있는 화석연료라는 신세계를 발견했다.

 

인간은 여러 활동을 하며 이미 정해져 있는 밀란코비치 주기를 느리게도 빠르게도 바꿀 수 있다. 저자는 불이 기후에 딸린 부수 현상에 그치지 않고 인류의 손끝에서 기후변화를 진두지휘하는 선동가였다고 말한다.(134 페이지) 새롭게 등장한 세 번째 불은 자신의 연료처럼 무한(無限)했다. 게다가 자연적인 기후 양상을 조금씩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뒤엎을 정도로 거대했다. 연기는 하늘을 가득 메웠다가 비에 녹아 해양에 녹아들었고 화염은 보이든 안 보이든 지구를 채우고 있다. 연소(燃燒) 변이(變異)라고 하는 변화는 석탄, 석유, 가스로 대표되는 화석 생물량이 화로, 단조(鍛造), 용광로 등 불을 이용하는 다양한 기구에서 나무, 이탄(泥炭)과 같이 살아 있는 생물량을 선택적으로 대체하면서 시작되었다.(143 페이지)

 

저자는 에너지원이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는 이 시대를 인류세 대신 화염세라 명명하는 편이 올바를 것이라 말한다.(149 페이지) 멀고 먼 지질 시대 속 연료를 캐다가 당대에 태우고 앞으로 맞이할 먼 미래를 향해 폐기물을 뿜어내는 것, 이것은 불이 그리는 새로운 서사이자 지구 역사상 중요한 표식 중 하나다. 인류가 일궈낸 주거지에 몰고 온 변화를 생각하면 연소 변이에도 좋은 점이 많다. 부엌과 마을에 연기가 자욱하지 않고 가연성 재료로 집을 짓고 도시를 조성한 탓에 자나 깨나 화재 걱정을 하던 시절이 지났으며 계속 장작을 구하러 다닐 필요도 없다. 세 번째 불은 사회 구성원의 끊임없는 관심과 손길이 필요한 어린이나 두 번째 둘과 다르다.

 

그러나 이 변화에는 대가가 따른다. 어느 지역에서나 어떤 종류든 불이 존재하고 불의 성질은 지역 내에서 바뀐다. 마찬가지로 농업에서는 다루기 까다로운 화염을 피하려 화학물질을 사용하다 보니 오염이라는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지역의 변화가 전 세계적 변화로 확대되기도 한다. 그래서 대체로 이목을 끄는 것은 불꽃이다. 불꽃은 인간이 딛고 선 대지를 똑같이 딛고 타오른다. 인간이 헤아릴 수 있는 크기만 하다. 그러나 불에서 훨씬 더 거대한 것은 가장 높은 산보다 더 높이 솟구칠 수 있는 연기 기둥이다.

 

화재적운(pyrocumulus cloud)이란 것이 있다. 산불, 화산 폭발 또는 대형폭발로 인해 발생한 강한 열기와 연기가 대기 중에서 급격히 상승하며 형성되는 구름이다. 이는 세 번째 불이 대기와 상호작용하면서 어떻게 자연경관에 더 많은 불을 일으키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불이 불을 먹고 살며 더 많은 불을 일으키는 환경을 형성하는 것은 언제나 진실이다. 그러나 자연경관에는 불이 모든 것을 다 삼켜버리지 못하도록 막는 화재 방지벽이 있다. 암석 경관에는 없다. 그 대신 불이 연료를 재배치하고 기후를 바꾸며 또 다른 불을 일으켜 하늘 위로 연기를 피어 올린다.

 

처방화입(處方火入; Prescribed burning)은 무엇인가? 산불 예방과 생태계 관리를 목적으로 날씨, 시간, 장소, 기상조건 등을 미리 정해 계획적으로 불을 놓는 임업 기술을 말한다. 대형 산불로 번지지 않게 연료가 될 만한 물질을 미리 태워버리는 역발상적인 조치다. 홍적세에 전 세계가 빙상에 파묻히진 않았지만 얼음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은 거의 없었다. 화염세의 불도 마찬가지다. 지구는 오랫동안 불의 행성이었고 이제 더 깊은 불의 시대로 향하고 있다.(233 페이지)

 

저자가 내리는 처방을 보자. “우리는 땅속에 화석 바이오매스를 저장해야 한다. 오늘날 열기를 무섭게 뿜어대는 인류라는 존재를 식히는 것은 물론이고 미래에 귀환할 얼음을 물리치기 위해 비축해야 한다. 전략적으로 석유를 매장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가올 추위를 대비한 방책이기도 하다.”(238 페이지) 저자는 불이 없으면 안 되는 우리와 달리 불은 우리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잊지 말기를 주문한다. 우리 인간만이 갖는 화력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도 명심하라고 말한다.

 

그간 우리는 화력을 이용해 세상을 다시 열고 여섯 번째 태양을 띄웠다. 그러나 이제는 지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화염을 재분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지구의 미래가 곧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태양은 지구와 자연의 불(Fire and Earth), 두 번째 태양은 인간과 농경의 불(Fire and Water), 세 번째 태양은 식민지 개척과 유라시아 문명의 결합으로 불의 용도가 확장된 시대인 두 번째 자연, 네 번째 태양은 산업과 철의 불(Fire and Iron), 다섯 번째 태양은 현대와 공기의 불(Fire and Air), 여섯 번째 태양은 화석연료와 화염세(Pyrocene)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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