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히르 리즈크, 매기 핑크의 [춤추는 단백질]의 원제는 [The Color of North]다. 눈 속에 있는 크립토크롬이라는 단백질 덕분에 방향을 색으로 인지하고 북쪽으로 날아가는 새들을 염두에 둔 제목이다. 단백질은 생명을 유지하는 일을 한다. 물고기와 개구리가 한겨울 혹독한 추위에서 얼어 죽지 않는 것은 혈액 속 얼음 결정의 성장을 막아주는 단백질이 있기 때문이다. 박테리아가 끓는 물 속에서, 심해 열수구의 극한 압력 속에서도 번성할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떤 단백질은 식물과 박테리아에게 기억하는 능력을 부여한다. 인류는 이제 한 발 더 나아가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단백질을 직접 설계하고 있다.
저자는 단백질의 구조를 해독하는 일은 몹시 어렵지만 모든 단백질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비밀은 그 고유한 구조에 달려 있기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DNA는 단백질을 만들기 위한 설명서다. 일어나야 할 때와 잠자리에 들어야 할 때를 알려주는 것도 단백질이다. 단백질은 말 그대로 우리 주변 환경을 해석해주는 존재다. 간세포와 뇌세포의 차이는 어떤 유전자를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단백질을 만들기 위해 어떤 유전자를 읽느냐에 달려 있다. 비유하자면 모든 세포는 같은 악보를 가지고 있지만 각자 자신에게 맞는 악기만 골라 연주한다. 그래서 세포 안의 DNA는 그 세포가 누구의 것인지를 알려주고 세포가 실제로 만들어내는 단백질은 그 세포가 어떤 세포인지를 알려준다.
각 세포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DNA가 대본이라면 단백질은 그 이야기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주인공이다. 그러나 단백질이 DNA로부터 직접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과정에는 중간 단계가 있다. 이때 DNA에 담긴 유전자의 정보를 읽어 단백질을 만드는 언어로 옮겨주는 매개분자인 RNA가 등장한다. RNA는 DNA의 지시를 받아 단백질의 구성 단위들을 정해진 순서대로 하나씩 이어 붙인다. 마치 요리사가 레시피를 보고 재료를 순서대로 넣어 요리를 완성하는 것처럼. 이렇게 DNA에서 RNA를 거쳐 단백질로 이어지는 흐름을 생물학의 중심 원리(central dogma)라고 한다.
설계도(DNA)가 있고 그것을 읽는 컴퓨터(RNA)가 있고 실제로 일하는 일꾼(단백질)이 있는 셈이다. 단백질의 종류는 다양하다. 많은 단백질이 진화를 거치고도 거의 변하지 않은 채 남아 있지만 일부 단백질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특성을 발전시켜왔다. 박테리아가 원자로 내부의 강한 방사선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도, 해수면에서 수 킬로미터 아래 심해 열수구 근처의 엄청난 압력과 고온에서 미생물이 버틸 수 있는 것도 모두 단백질 덕분이다. 철새가 수천 km를 날아가면서도 길을 잃지 않는 것은 지구의 자기장을 감지하는 단백질이 나침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겨울 가자미의 세포는 결빙 방지 단백질(antifreeze protein) 덕분에 영하의 물속에서도 손상되지 않는다. 인간은 특유의 독창성을 발휘해 추위와 싸울 우리만의 방법을 개발했다. 우리 조상들은 중앙난방이 생기기 훨씬 이전에 짐승 가족으로 만든 옷을 발명해 유라시아의 가장 추운 지역으로 과감히 나아갔다. 또한 모든 기술 중에서 가장 독특한 기술인 불을 다루는 능력을 터득해 원래라면 사람이 견디기 어려울 만큼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번성할 수 있었다. 불을 피우거나 중앙난방을 발명할 능력이 없는 다른 생물들은 저마다 추위에 대처하는 창의적인 방법을 찾아냈다. 겨울잠을 자거나 두꺼운 지방층을 축적하거나 결빙 방지 단백질을 이용해 얼음 결정으로 인한 손상으로부터 세포를 보호하는 방식이다.
개구리는 빙핵형성 단백질(ice nucleating protein)의 도움을 받아 이 문제를 해결한다. 가자미나 딱정벌레의 결빙 방지 단백질이 얼음 결정이 자라는 것을 막는 것과는 반대로 개구리의 빙핵형성 단백질은 오히려 결빙을 촉진한다. 단 얼음이 마구잡이로 자라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는다. 세포 바깥쪽을 향해서만 얼음 결정이 자라도록 유도해 각 세포를 얼음 껍질로 감싼다. 덕분에 세포 안의 내용물은 길고 혹독한 겨울 내내 안전하게 보존된다. 물론 단백질만으로는 부족하다. 개구리에게는 또 다른 핵심 분자인 포도당의 도움이 필요하다. 포도당 농도가 올라가면 세포 내부를 메이플 시럽처럼 걸쭉하게 만들어 세포 안의 물이 어는 온도를 크게 낮춘다.
세포 밖에서는 빙핵형성 단백질이 세포를 얼음 껍질로 감싸고, 세포 안에서는 포도당이 내용물을 지킨다. 이 둘의 협력으로 개구리의 몸 전체는 얼어붙지만 세포는 살아 있는 상태로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구조 단백질은 대부분 물로 이루어진 세포가 흐물흐물해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 저자는 화학이라는 언어로 소통하는 단백질들이 하나의 단위로 기능하는 생화학적 춤을 말한다. 인간이 거미줄과 누에실을 원래 용도와 전혀 다른 목적으로 활용해 온 것처럼 생명체들도 오랜 진화 과정에서 이미 가진 단백질을 새로운 용도에 맞게 바꿔왔다. "새로 만들어지는 것은 없다. 있던 것이 쓰임을 바꿀 뿐이다."(73 페이지) 자연은 새로운 것을 처음부터 만들기보다 이미 가진 구조를 다른 용도로 재활용하는 데 능숙하다.(77 페이지)
레이우엔훅이 현미경 아래에서 관찰한 극미동물들을 춤추게 했던 단백질이 인간의 세포골격을 이루는 단백질과 많은 특성과 구조를 공유한다. 저자는 단백질은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주변 세상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깊이 관여한다고 말한다.(81 페이지) 저자는 망막의 광수용체 세포에서 발견되는 빛에 민감한 단백질 그룹인 옵신(opsin)에 대해 말한다. 옵신은 빛에 의해 활성화될 때마다 비틀리고 굽어지며 뒤틀려 주변의 다른 단백질들과 부딪힌다. 이런 비틀림은 연속적이고 정교한 분자들의 춤으로 이어진다.(89 페이지)
인간이 가진 옵신의 수는 셋이다. 많은 생명체가 세 가지 이상의 옵신을 가지고 있다. 갯가재는 12개의 옵신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빨간, 파란, 초록에 각기 반응하는 옵신이 서로 다르게 반응하여 수천만 가지의 색을 인식하게 된다. 우리가 암석의 색을 인지하는 원리는 우리 눈의 망막에 있는 세 가지 옵신이 흡수하는 빛의 조합에 의해 결정된다. 암석 자체의 색은 그 안에 포함된 광물 성분과 화학 원소에 의해 물리적으로 결정되지만 우리가 그것을 녹색 암석, 붉은색 암석으로 구분하여 보는 것은 세 가지 옵신의 메커니즘에 의해서다. 즉 지질학적 성분과 생물학적 시각 시스템의 합작품이다.
크립토크롬은 옵신보다 오래전부터 빛을 감지해온 단백질이다. 크립토크롬은 탄소, 산소, 수소, 질소처럼 자성(磁性)을 띠지 않는 원소들로 이루어져 있어 자석에 반응하지 않는다. 그런데 각 원소 안에는 아주 작은 전자들이 있다. 전자는 보통 둘씩 쌍을 이룬다. 이들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정렬되어 자기적 성질을 상쇄한다. 그런데 햇빛이 새의 눈으로 들어가 크립토크롬에 닿으면 빛 에너지가, 쌍을 이루고 있는 전자 하나를 떼어낸다. 바로 이 홀로 남겨진 전자가 나침반 바늘처럼 지구 자기장에 맞추어 정렬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방향 정보가 울새에게 북쪽이 어디인지 알려준다.(122 페이지) 크립토크롬이 전자 쌍을 갈라놓는 순간 새는 우리가 볼 수 없는 북쪽이라는 독특한 색을 하늘에서 본다.
인간도 크립토크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DNA 복구 기능은 사라졌고 빛에 반응해 수면과 각성주기를 조절하는 기능은 가능하다. 식물도 크립토크롬을 이용해 빛을 감지해 그 방향으로 자란다. 세 종류의 옵신만으로 수천만 가지의 색을 볼 수 있듯 다섯 가지 미각 수용체로 거의 무한에 가까운 풍미의 조합을 만들어낸다.(104 페이지) 냄새를 맡는 데는 훨씬 많은 수용체가 필요하다. 1000 가지 중 제 기능을 하는 것은 400 가지다. 우리는 1조 가지의 냄새를 식별할 수 있다.
생명체가 육지로 진출하기 전 원시 바다에서 살아 남으려면 물속에서 냄새 맡는 능력이 필요했다. 최근 실험에 따르면 신생아는 태아 시절이나 모유 수유 시절 엄마가 섭취한 음식에 끌리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진화적 이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엄마가 먹었던 음식은 안전하다는 가장 초기의 기억에 바탕한 이끌림이라 할 수 있다. 시각이 완전히 발달하기 훨씬 이전부터 우리는 엄마의 냄새로 엄마를 알아본다. 후각은 원초적이다. 공기 중에 떠도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분자들을 포착하는 일은 쉽지 않다. 후각 수용체가 극도로 민감해야 하는 이유다.
수용체는 우리가 같은 세상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창문이지만 이를 사용하는 방식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감각 수용체를 이루는 유전자 구성에 아주 작은 변화만 있어도 음식에 대한 선호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시각, 후각, 미각은 저마다 다른 감각이지만 세 감각은 서로 다른 색깔로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을 함께 빚어낸다. 분자 수준에서 보면 이 세 감각은 동일한 기본 원리를 공유한다. 실제로 옵신, 후각 수용체, 미각 수용체 대부분은 하나의 단백질 계열에 속하며 특유의 바구니 모양 구조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고통, 기쁨, 두려움, 불안, 우울, 황홀감, 후회, 심지어 사랑까지 이 모든 감정은 단 하나의 수용체가 아니라 수천 종의 단백질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네트워크의 산물이다. 이 모든 것의 밑바탕에 단백질이 있다.(118 페이지) 잠을 자는 동안에도 수용체들은 쉬지 않는다. 이들이 서로 협력한 덕분에 우리는 꿈속에서도 보고 냄새 맡고 걷고 말할 수 있다. 근육은 가만히 있는데 꿈속에서 뛰어다닐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뇌와 몸 사이의 연결이 일시적으로 끊어져 있는 덕분에 꿈속에서 아무리 격렬하게 움직여도 실제로 다치지 않는다.
GPCR은 미각, 시각, 후각을 통해 세상을 감지하는 능력의 중심에 있으며 우리 몸의 서로 다른 부분 사이의 소통에서도 빠질 수 없는 역할을 한다. 냄새와 맛, 호르몬, 약물로부터 정밀한 화학 정보를 수집하고 그 정보를 하나의 감각, 감정 혹은 기억으로 번역해낸다. 결국 세상 속에서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감각을 형성하는 것도 이 작은 단백질들이다.(120 페이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는 우리가 갖추지 못한 모든 동물들의 놀라운 감각은 분자 수준에서 단백질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저자는 진화는 더 우수한 것을 향한 발전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 더 잘 적응하는 방향으로 일어나는 느린 변화라 말한다.(124 페이지) 라이너스 폴링은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분자 수준에서 규명하여 현대 분자생물학의 기초를 다진 인물이다. 다른 화학자들이 분자를 이해하려면 양자 물리학의 복잡한 수학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자의 움직임을 계산하고 파동 함수를 다루는 방식으로만 분자의 세계에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폴링은 달랐다. 그는 형태에 주목했다. 원자들이 저마다 고유한 크기와 결합 각도를 가진 퍼즐 조각처럼 서로 맞물려 분자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했다.
자물쇠와 열쇠처럼 딱 맞는 형태의 원자끼리만 결합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른 화학자들은 건축자재(원자) 하나하나의 미세한 진동과 물리적 성질을 수학적으로 완벽히 계산하느라 건물을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면 폴링은 블록(원자)의 크기와 결합 각도를 확인한 뒤 레고 블록을 맞추듯 직접 손으로 조립해가며 전체적인 빌딩(단백질 구조)의 형태를 완성한 것이다. 폴링은 원소마다 전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950년대 후반 DNA의 언어가 어떻게 단백질의 언어로 번역되는지를 밝히는 분자생물학의 중심원리가 확립되었다. 이로써 DNA는 생명의 설계도, 단백질은 설계도에 따라 일을 하는 완성품이라는 관점이 자리잡았다. 유전자는 DNA 언어로 쓰인 연속된 글자들이다. 유전자로 번역되면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단백질은 아미노산이라는 글자들이 정확한 순서로 길게 이어진 사슬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단백질은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온갖 일을 한다.(137 페이지) 수소 결합 하나하나는 약하지만 아미노산 서열의 반복적인 패턴 때문에 수많은 수소 결합이 한꺼번에 형성된다.
이 결합들은 핵심 구조를 안정적으로 붙들어 두면서도 단백질이 기능을 수행하는 동안에는 유연하게 구부러지고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수많은 단백질을 이루는 두 구조 중 알파 나선은 건물의 기둥이나 대들보, 베타 시트는 벽, 천장, 바닥에 해당한다. 이 두 구조를 조합하면 강도와 유연성을 갖추면서도 거의 무한에 가까운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다. 알파 나선과 베타 시트는 단백질이 접히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대표적인 단백질의 2차 구조다. 단백질은 크고 복잡한 분자다.
제인 리처드슨이 리본 다이어그램을 고안해 단백질 구조를 시각화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다. 리본 다이어그램에서 알파 나선은 비틀린 리본으로, 베타 시트는 나란히 놓인 평평한 화살표로 표현된다.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서로 다른 이유는 결국 단백질에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세포를 구성하는 단백질의 서열과 조성(造成)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변화들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생명의 다양성을 만들어낸 것이다.(159 페이지)
단백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매일 단백질을 접한다. 콩, 우유, 고기처럼 우리가 먹는 많은 음식에 단백질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이런 음식을 먹으면 단백질은 아미노산으로 분해된 뒤 우리 몸에 필요한 단백질로 다시 만들어진다. 효소는 아미노산이 고유한 순서로 연결되어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형태로 접힌 단백질이다. 효소가 다른 단백질과 다른 점은 화학반응을 직접 일으킨다는 점이다. 효소는 반응 속도를 엄청나게 높여 생명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 이 과정에서 효소 자신은 변하지 않는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생체 분자가 효소의 손을 거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레첸 앤더슨은 효소를 불씨에 비유했다. 저자는 그레첸 앤더슨을 효소 같은 사람에 비유했다. 당신을 알아보고, 당신 안의 잠재력을 알아채고 당신을 끌어당겨 안으로 품고 변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때로는 당신을 뒤틀고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바로 그 자리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준비가 되면 손을 놓는다. 변화하고 재구성된 새로운 당신을 세상으로 내보낸다.
식물의 자외선 차단제 역할을 하던 페닐프로파노이드가 효소의 작용에 의해 리그닌이 되었다. 이 리그닌 덕분에 나무가 높이 자랐고 그에 따라 이산화탄소를 더욱 많이 흡수하게 된 만큼 산소가 많이 배출되어 데본기가 막을 내리고 석탄기가 시작되었다. 산소가 풍부해진 지구에서 생명은 폭발적으로 번성했다. 이 모든 변화의 출발점은 나무에서 목질을 만드는 한 줌의 효소였다. 리그닌을 분해할 수 있는 효소가 등장하기까지 약 6000만년이 걸렸다.
저자는 인간이 무수히 버리는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효소들을 연구하는 최신 이슈를 전한다. 효소는 귀중한 영양분을 순환시키는 자연의 방식이고 그렇게 돌아간 영양분은 다른 생명체로 흡수된다.(198 페이지) 흥미롭게도 루시페린은 먹이사슬을 타고 퍼져나간다. 이 덕분에 바다의 수많은 생물이 빛을 낼 수 있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바다는 하나의 거대한 발광(發光) 네트워크다. 혈액응고 인자가 너무 늦게 활성화되면 출혈이 멈추지 않고 너무 일찍 활성화되면 혈전이 생긴다. 활성화와 억제의 정밀한 균형 위에서 우리 몸은 매 순간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에쿼린은 발광 해파리에서 발견되는 칼슘 결합 발광 단백질이다. 루시페린과 대비된다. 단백질은 생명체를 만들고 생명의 반응을 촉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죽음의 도구로도 진화해왔다.(268 페이지) 가장 위험한 독소가 반드시 동물에게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식물 역시 포식자를 막기 위해 단백질 독소를 진화시켜왔다.(277 페이지) 독은 용량에 달려있다. 인슐린조차 과다 투여되면 치명적이다.(282 페이지) 방울뱀의 인테그릴린은 혈전 위험이 높은 환자의 항응고제로 사용된다. 먹이감의 피를 멈추지 않게 하던 단백질이 이제는 혈전으로 인한 죽음을 막는 약이 된 것이다.
뒷마당 흙 속에 사는 박테리아가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독소를 만들어내는 이유는 수수께끼다. 어쩌면 그것이 진화의 본모습인지도 모른다. 목적도 방향도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때로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내면서 생명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289, 290 페이지) 생존하기 위해 죽여야 하는 세상에서 모든 생명체는 어느 정도 독성을 띠는 존재다. 삶이라는 극장에서 살인은 이야기의 줄거리이고 단백질은 주연을 맡는다. 결국 막이 내리면 우리 모두에게 죽음이 찾아오며 그 배후에는 어김없이 단백질이 있다.
단백질은 질병과도 관계된다. 저자는 한때 뉴런의 건축가였던 단백질들이 뉴런 사이의 신호 전달을 가로막는 잔해가 되어 우리에게 익숙한 치매와 기억상실 증상을 만들어낸다고 설명한다. 근위축성 측삭 경화증, 알츠하이머 공히 잘못 접힌 단백질들로 뒤엉킨 그물망이 관계한다. 단백질은 유전물질 없이 스스로를 복제하고 전파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존재다. 저자는 점액을, 달라붙을 만큼은 끈적이되 쉽게 흐를 만큼은 유동적인 적절한 점도를 유지하는 것이라 설명한다.(311 페이지)
효소 하나하나, 단백질 하나하나가 생명이라는 교향곡을 이루는 음표다. 그중 단 하나라도 음이 어긋나면 그 여파는 오케스트라 전체로 퍼져나간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과학자들은 이 흐트러진 선율을 다시 조율하는데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최신 연구들은 알츠하이머처럼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질환부터 낭포성 섬유증처럼 유전되는 질환까지 치료와 예방 모두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맞춤형 접근법의 문을 열었다. 대부분의 단백질 기반 질환들은 여전히 과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았다. 저자는 유전자 편집의 희망은 단순히 오류를 바로잡는 데 있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단백질을 창조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생명의 진화는 선형적인 진보가 아니다. 수많은 가지마다 잎사귀가 무성한 거대한 나무로 상상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문제가 항상 단백질의 지나친 활성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단백질이 제 기능을 못해 질병이 생기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기능상실은 유전 질환에서 특히 흔하게 나타난다. 문제는 망가진 것을 고치는 일이 작동하는 것을 멈추는 일보다 훨씬 어렵다는 점이다.(341 페이지)
저자는 우리가 아는 단백질의 세계는 거대한 빙산 위의 눈송이 하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아주 짧은 단백질이라도 꿈틀대고 비틀리면서 서로 다른 부위가 결합할 수 있는 방식은 거의 무한에 가깝다. 지구 온도 상승, 온실가스 배출 증가, 매년 쌓여가는 오염물질과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는 단백질 공학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352 페이지) 저자는 모든 생명체 안에서 단백질은 그들만의 세계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역동적이고 서로 호응하며 끊임없이 생동하는 세계라고 말한다. 단백질은 단순한 분자 기계가 아니다. 여러 면에서 단백질은 미시 세계에서 기적을 행하는 존재들이다.(357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