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부터 지질공원해설사 일을 했다. 2019년 말 발생한 COVID 19 때문에 근무 초부터 여러 모로 어려웠다. 해설사가 되기 위해 받은 교육은 퀄리티나 퀀티티 면에서 많이 부족했고 근무 이후 받은 교육도 그와 별 다를 바가 없었다. 대부분 스스로 알아서 해야 했다. 몇 차례 현장 답사와 실내 교육을 받았지만 체계와 지속성 면에서 많이 아쉬운 일정이었다. 나의 경우 연천 해설사가 되기 전 3년의 서울 해설 경험이 있었고 비교적 과학책을 많이 읽어 나름의 자신감을 가졌다.
2022년 말부터 서울대학교 지구과학교육 전공/ 일본 모(某) 대학 이학부(理學部) 박사 출신의 교수님께 메일을 드려 질문을 드리고 답을 받은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해설사가 된 지 6년이 된 지금 어느 정도 안정(安定)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안정이 안일(安逸)이 되지 않도록 늘 경계한다. 올해는 최근 몇 년간 부진했던 읽기를 떨치고 많은 책을 읽고 있다. 아직 5월이 며칠 남았는데 현재까지 63권을 읽었다.(나는 서평을 쓴 것만 읽은 것으로 계산한다.) 4권 정도를 제외하고 전부 과학책이다.
해설사가 되기 전과 후에 차이가 있다면 주로 의거하는 것은 과학책이나 되기 전은 여러 분야를 읽었고 지금은 지구과학 분야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물론 그런 가운데서도 올해는 물리학 책도 많이 읽었다. 원래 책을 많이 읽었지만 더욱 그러하게 된 것은 2025년 3월부터 더 칼럼니스트에 지구과학 글을 쓰게 되면서부터다. 특기할 만한 책은 많지만 전공과 관련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책이 두 권 있다. 존 맥피의 [이전 세계의 연대기], 헬렌 고든의 [깊은 시간으로부터]다.
제목만 보면 지구과학 책이라 짐작하기 어려운 이 책은 문인(文人)이 쓴 인상적인 지구과학 책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을 수 있는 책이다. 인류의 역사나 지구의 기록된 역사를 아득히 초월하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지질학적 시간 규모를 뜻하는 깊은 시간이란 표현은 존 맥피의 표현이다. 그것을 헬렌 고든이 책 제목으로 쓴 것이다.
올해 초 한 지질학 교수님께 헬렌 고든의 [깊은 시간으로부터]에 나오는 구절에 대해 문의했다. 그 구절은 “영국을 남동에서 북서로 잇는 선(이스트앵글리아에서 하일랜드 서부로 이어지는 대각선)을 따라서 이동한다면 쌓인 지 얼마 안 되는 이스트앵글리아의 제4기 퇴적층에서부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해서 런던 분지의 고제3기 점토, 노스다운스의 백악기 상부 백악, 코츠월드의 쥐라기 어란석, 페나인 산맥을 둘러싸고 있는 트라이아스기의 사암, 레이크 지방의 오르도비스기와 실루리아기 암석들, 그램피언스 산맥의 캄브리아기 노두를 거쳐서 하일랜드 북서부와 헤브리디스 제도에 있는 가장 오래된 암석들에 이른다.”는 글이다.
교수님을 통해 나는 저 글이 그 교수님의 대학원 시절 영어(지구과학 영어) 해석 시험 지문으로 나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렇게 많은 부분은 통한다. 나는 이 인상적인 구절을 접하며 육지가 아닌 바다에 대해 전하고 싶었다. 판구조론이 보는 해양은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하며 지구 내부와 물질을 순환시키는 거대한 판(Plate)의 경계이자 무대다. 우리는 이렇게 근원적인 개념으로 상상력을 펼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할 수 있게 하는 최선의 도구는 책이다. 책은 최고의 스승이다. 가령 AI가 놀라운 능력을 발휘해도 좋은 질문을 하려면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하다.
지난 번 알라딘의 나도 서점 주인 코너에서 나는 한 번역가에게 좋은 지구과학 책 많이 번역해달라고 부탁했다. 번역이 번역가가 홀로 정하는 것이 아니지만 바람을 표현한 것이다. 독기견서 여우고인(讀旣見書 如遇故人), 독미견서 여봉양우(讀未見書 如逢良友)란 구절이 있다. 이미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을 때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옛 친구를 만난 것과 같이 반갑고 아직 읽지 않은 새로운 책을 읽을 때는 좋은 친구를 처음 사귀는 것과 같이 설레고 기쁘다는 말이다. 이런 구절을 음미하는 5월은 책 읽기 좋은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