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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당화 그늘
  • 최초의 7일
  • 존 C. 레녹스
  • 10,800원 (10%600)
  • 2015-12-25
  • : 615


오래전 나는 기독교에 대해 회의(懷疑)하는 마음으로 [빅뱅인가 창조인가]란 책을 구입, 소장하던 기독교인이었다. 이 책은 바로 그 옛날의 순수한(?) 마음으로 읽게 된 책이다. 지은이는 수학자이자 목회 고문인 존 레녹스(John Lennox; 1943 ~ )다. 사실 나는 [빅뱅인가 창조인가]를 지은이의 의도나 저술 방향과 무관하게 내 불가지론적 경향성으로 읽으려 했었다. 그러다 별 소득도 없이 시간만 보내던 끝에 책을 버렸고 그 이후 또 한참의 시간을 그냥 흘려보냈다. 그 사이 나는 기독교를 떠났다가 돌아오게 되었고 [현대 무신론자들의 헛발질]을 읽을 생각을 하고 있다. 물론 [현대 무신론자들의 헛발질]의 저자가 그 옛날 가지고 있던 [빅뱅인가 창조인가]의 저자와 같은 인물이라는 사실은 처음 [현대 무신론자들의 헛발질]을 읽으려던 당시가 아닌 적어도 1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최근에야 안 사실이다.

 

그런데 어찌하다 보니 같은 저자의 [최초의 7일]을 먼저 읽게 된 것이다. 저자는 [신의 장의사; 과학은 하나님을 매장했는가?]란 의미의 [God’s undertaker; Has Science buried God?]를 쓴 저자이기도 하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신을 죽이려는 사람들; 과학은 신을 매장했는가?]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저자는 성경은 모든 장르를 망라하는 문학이라고 말한다.(책에는 성서라고 나온다.) 저자는 성경의 두 가지 독법에 대해 말한다. 문자적 해석과 (그에 대비되는) 비유적 해석이 그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기본적인 교훈을 다룰 때 성경 구절에 대한 자연스러운 해석이 필요하지만 거기에는 제한이 따른다. 가령 우리와 시간적, 지리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는 문화에서 기록된 텍스트를 다룰 때는 우리가 자연스러운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그 텍스트의 1차 수신자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의미가 아닐 수도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바람직한 것은 우선 자연적이고 1차적인 의미를 취하고 그렇게 해서 의미가 통하지 않으면 다음 수준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저자는 스티븐 제이 굴드가 말한 NOMA(NonOverlapping MAgisteria)를 예로 든다. 이는 종교와 과학이 서로 중첩되지 않는다는 의미의 말이다. 하지만 저자가 말했듯 성경과 과학은 같은 주제도 다룬다. 창조 이야기가 그것이다.

 

저자는 성경에서 과학적 시사점을 얻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그렇게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그러나 성경에서 과학에 관한 시사점을 찾는 것이 성경을 뉴턴의 법칙, 아인슈타인의 방정식 또는 일반적인 소금의 화학 구조를 추론하는 과학 논문으로 간주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성경은 종종 과학적 언어보다 외양(外樣)의 언어인 현상학의 언어로 불리는 언어를 사용한다고 말한다.

 

해가 뜬다란 말이 대표적이다. 사실 해가 뜨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는 과학자들도 사용하는 말이다. 우주를 만들어놓으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우리가 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라 말하는 저자는 창조론자란 말이 대개 젊은 지구 창조론자란 말로 쓰이고 있음을 지적한다. 성경의 귄위와 최고의 지위를 타협하지 않고 그와 동시에 성경 자체가 우리에게 제안한 것처럼(로마서 1; 19-20) 우주에 대한 현대의 첨단 지식을 고려하면서도 창세기 1장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주장한다.(67 페이지) 이 책을 읽기 전부터 구약 성경 예레미야의 한 구절이 내 흥미와 궁금증을 불렀다.

 

그것은 “....내가 주야와 맺은 언약이 없다든지 천지의 법칙을 내가 정하지 않았다면..”이란 구절이다. 화자(話者)는 여호와다. 즉 여호와가 주야와 언약을 맺었고 천지의 법칙을 정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천지의 법칙을 정했다는 말은 자연법칙을 정했음을 이르는 말이냐?고 AI에 물으니 AI는 단순히 현대 과학적 의미의 자연법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답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창세기의 천지 창조에 대해 많이 말하지만 예레미야에 기록된 여호와의 천지의 법칙 창조에 대해서는 잘 말하지 않는 것 같다.

 

저자는 성육신이라는 신비 아니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기적에 대해 언급한다. 인류 자체가 초자연적 개입으로 시작되었다고 – 사실은 그렇게 시작되었어야만 했다고 – 믿는 데 아무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는 과학이 변하면 성경 해석도 함께 무너질 정도로 성경 해석을 과학에 너무 밀접하게 연계시키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반계몽주의적 동기나 두려움으로 인해 과학을 무시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기독교가 지성에 반하는 것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도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은 진정한 과학을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과학의 발전에 탁월한 기여를 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저자는 중요한 말을 한다. 비록 성경이 젊은 지구 창조론의 관점에서 해석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은 그런 해석을 요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지 않고서도 오래된 지구 창조론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해석할 수 있다. 저자는 창세기 1장의 하나님의 천지 창조 기사가 이해하기 난해한 주장인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우주를 창조할 재료가 될 만한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주는 무로부터 창조된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리학자 존 호튼(John Houghton)은 우리가 현재 이해하는 바로는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발달하기 위해서는 우주의 기본 구조 및 빅뱅 시의 조건들에 대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밀한 조율이 요구되었다고 말한다. 호튼은 이를 인간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모든 우주가 필요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우주에 시작이 있다는 성경의 주장을 확인시켜주는 빅뱅이라는 우주모델이 그와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우주가 아주 오래 되었다는 점도 시사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는 하나님과 빅뱅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이 둘은 다른 종류의 설명이라고 말한다. 설명하자면 하나는 창조에서 주체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다른 하나는 창조의 방식과 관점을 말한다.

 

저자는 하나님이 창조세계 안에 자신의 지문을 남겨두셨기에 자신은 시공간의 시작과 관련하여 과학과 성경 기록 간에 존재하는 수렴점에 관점을 기울인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지문이라는 말은 빅뱅의 잔상이란 말을 닮았다. 빅뱅의 잔상이란 우주배경복사를 지칭한다. 과학의 관점을 고수하는 책과 창조론을 고수하는 책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저자의 글은 그래서 읽을 만하다. 이 책 다음에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이렇게 말하는 것은 책이 완결적이지 않아서 하는 말은 아니다. 하나의 관점을 취하지 않고 수렴점을 찾으려는 입장을 취하면 누구든 완벽한 관점을 제시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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