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산당화 그늘
  • 자연사박물관이 세계를 구하는 법
  • 잭 애슈비
  • 20,700원 (10%1,150)
  • 2026-04-20
  • : 440

자연사박물관을 지구 전체의 생물 다양성이 얼마나 경이롭고 중요한지 알리는 곳으로 생각하는 동물학자, 케임브리지대학교 동물학박물관 부관장인 잭 애슈비의 책이다. 설득력 있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진 저자는 자연사박물관과 미술관을 구별한다. 자연사박물관은 소장품 규모에서 미술관보다 훨씬 방대하고 전시에서 끝없이 다양한 주제와 엄청나게 긴 역사를 다루는 데도 보편적인 관람 코스를 짤 수 있을 정도로 비슷비슷하다. 저자는 말한다. 박물관은 중립적이지 않으며 자연과 닮지도 않았다고. 공룡에 쏠리는 관심이 과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룡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하는 저자는 공룡만 부각하느라 자연계의 다른 모든 생물이 구석으로 밀려나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되는 목록은 방대한 자연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선별이 필요하다. 선별은 편향이 드러나는 계기인지도 모른다. 편향 가운데 하나는 서양의 비중이 꽤 크다는 점이다. 자연사박물관이 예부터 항상 과학을 증진하는 곳이었다고 주장하기 힘들다는 말이 충격으로 다가온다. 무참한 자의식과 탐욕, 식민주의까지 집약된 곳이 자연사박물관이다. 저자는 자연사박물관이 관리하는 동물, 식물, 균류를 비롯한 생물 표본은 현재 우리 지구가 맞닥뜨린 심각한 문제를 연구하고 해결하는 귀중한 근거 자료라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지식을 공유하고 영감을 주는 것은 박물관의 핵심 기능이지만 지구 생물에 관한 최상의 기록, 가장 확실한 자료를 잘 관리하는 것 또한 박물관의 핵심이다. 자연사박물관은 자연을 보여주기 위해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기도 한다. 죽음은 자연 현상이지만 죽은 동물의 표본은 자연과 거리가 멀다는 말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엄청나게 수고스러운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표본은 사실상 인공물에 가깝다. 생각할 법한 이야기이지만 박제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알았다.

 

박제동물 제작은 엄청난 수준의 예술적 비전과 기술, 해부학적 지식을 요하는 일, 결과적으로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다. 저자에 의하면 박제는 동물을 가장 생생하게 보존하는 기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진짜 동물과 가장 거리가 멀다.(64 페이지) 흑곰의 털 가죽을 표백해 대왕판다의 박제 모형을 제작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인공(人工), 연출, 타협의 산물이 자연사박물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손에 잔혹하게 살해 당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는 동물 박제 모습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새의 암수가 함께 전시된 경우 대체로 암컷은 더 낮은 선반에 있거나 아예 수컷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으로 만들고 수컷은 몸을 잔뜩 부풀린 지배적 모습을 만드는 것은 동물의 실제 행동 특성은 전혀 반영하지 않고 오로지 위계서열만 중시한 연출이다.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나와 관계되는 지질박물관은 어떤가 생각해 보게 된다. 연출이나 편견과 가장 거리가 먼 곳이 지질박물관이 아닐까? 어떻든 새로운 사실을 많이 배우게 된다. 몸집이 워낙 어마어마하게 큰 고래의 경우 골격표본을 만들 때 뼈만 깨끗이 남기는 단계에서 보통 자연의 힘을 빌린다. 사체를 흙이나 분뇨, 모래에 묻어두고 미생물, 균류, 무척추 동물이 연조직을 다 먹어 치우게 놔두는 것이다.

 

자연사박물관의 표본에는 오류도 많다. 직접 본 적이 없는 공룡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박물관에 전시된 공룡이나 다른 동물의 골격표본에 오류가 발견되더라도 박물관이 곧바로 수정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화석 뼈나 복제 모형은 망가지기 쉽고 표본을 다시 제작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액침(液浸) 표본이 가장 진짜에 가깝다는 이야기도 새롭다. 동물이 전시를 위해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드는 전시는 관람객의 기분을 망친다. 부가된 것도 없고 사람이 조작하지도 않았고 어떠한 해석도 개입되지 않아 정확성에 문제가 생길 여지가 없는 진짜 생물들이 지루하게 여겨지는 것도 아이러니다.

 

저자는 이를 실제 생물과 한 단계씩 멀어질수록 더 파격적이고 관람객의 관심과 흥미는 커진다는 말로 설명한다. 저자는 자연사박물관은 진짜 생물과의 일치성과 관람객이 느끼는 따분함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자연사 표본에는 성비(性比) 차이가 꽤 난다. 동물을 잡고 수집하는 사람의 편향성 때문이다. 자연사박물관에서 표본은 유전학부터 기후변화, 분류학, 해부학, 독성학 기생충학, 진화학, 생물 다양성 감소, 생태학 등 방대한 과학탐구에 두루 활용된다. 박물관에 연구할 표본이 아무리 많아도 수컷의 비중이 훨씬 크면 수컷의 행동이 그 생물의 일반적인 행동으로 왜곡되어 관람객들은 제대로 된 지식을 얻지 못하게 된다.

 

암컷에게 드러낸 것과 같은 편견이 최초로 발견된 생물의 이름을 붙일 때 여성 전체를 향한 편견으로 확장되어 나타난다는 저자의 지적은 예리하다. 현존하는 모든 조류의 90% 이상이 새끼 돌보는 일을 수컷이 담당한다. 그런 사실은 조류(鳥類)가 키티파티, 오비랍토르와 생물학적으로 매우 가까운 공룡으로부터 진화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조류 역시 먼 옛날 조상들처럼 수컷이 새끼의 양육을 담당하는 게 당연한 결과라는 말이다. 저자는 자연에서는 동성간 짝짓기가 매우 흔하지만 과학자들이 오랫동안 그런 사실을 아예 알리지 않거나 객관적으로 기록하기를 주저했다는 사실도 언급한다.

 

저자는 인간의 편향된 고정관념을 잣대로 동물의 행동을 해석한다면 동물의 자연사는 물론 더 넓게는 인간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성소수자의 성 정체성이 동물계에서 또는 다른 어디에서든 근거가 발견되어야 정답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는 중생대는 파충류의 시대, 신생대는 포유류의 시대라는 말은 엉터리라고 말한다. 나도 한 지질학자의 글에서 이런 구분을 보았다. 저자에 의하면 150만 종 가운데 7천 종도 되지 않는 포유동물은 비중은 약 0.4%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어느 자연사 박물관을 가든 전시실에는 포유동물이 가득하다.

 

다양성에서 진정한 최강자는 현재까지 90만 종이 알려진 곤충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챕터의 제목이 '곤충한테 왜 그래'란 사실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박제 동물은 피부가 유연한 동물로만 제작할 수 있으며, 골격표본은 뼈가 있는 동물로만 만들 수 있다. 동물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곤충은 이 두 가지 조건에 모두 부합하지 않는다. 무척추동물은 액침 표본으로 보존하기도 하지만 곤충은 표본 상자에 핀으로 고정하는 방식으로 가장 많이 보존된다.(159 페이지) 저자는 박물관은 사람들에게 무엇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지 알려줌으로써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우리가 자연을 보호하는 방식을 정하는 데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새끼 제비 한 마리가 부화한 뒤 성체가 되기 위해 20만 마리의 곤충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도 만나기 어려운 지식이다. 곤충이 없으면 지구의 삶은 무너진다. 생물 수백만 종이 멸종하고 동물의 사체가 우리 주변에 가득할 것이라고 한다. 곤충은 지구 역사에 지금까지 총 다섯 번(오르도비스기, 데본기, 페름기, 트라이아스기, 백악기) 찾아온 대규모 멸종 사태마다 비교적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살아남은 듯 했지만 현재 곤충 개체수가 감소하는 속도와 규모를 볼 때 지구의 한계를 거듭 위반한 인류가 빚어낸 여섯 번째 멸종에서는 곤충도 무사하지 못할 수 있다.(175 페이지)

 

저자는 고생물학자이자 유명 저술가 리처드 포티의 책에서 곤충의 부정적이거나 기괴한 모습이 중요하게 다루어진 것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리처드 포티는 나도 읽은 [살아 있는 지구의 역사]의 저자이다. 그의 고생물학 저서인 [삼엽충]은 어떤지 읽어보고 싶다. 저자는 건강한 지구 생태계에 막대한 역할을 하는 식물과 균류가 자연사박물관 전시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 않는 현실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식물맹(植物盲)이란 말이 있다. 새보다 훨씬 중요한 식물에 대해 눈을 주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소홀한 것이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보면 조류 관찰은 엄청난 규모의 거대 산업(130 페이지)이라는 저자의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식물은 자연사박물관에서도 홀대 당한다. 동물들의 소품 정도로 취급되는 것이다. 식물에 대해 우리는 참 무심하고 마치 없는 존재인 것처럼 대해왔다는 생각을, 저자의 지적을 통해 반성하듯 하게 된다. 식물과 조류(藻類)는 공기를 만들어내는 존재들이다. 저자는 인상적인 말을 한다. 표본으로 남아 있는 모든 최후 개체는 하나하나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멸종을 선명하게 보여준다는 말(246, 247 페이지)이다. 자연사박물관의 소장품에는 권력과 계층 구조, 값어치의 영향이 깊게 배어 있다. 과학도 문화의 한 부분이다. 과학계가 던지는 질문은 특정 시대와 지역의 사회적 규범, 정치, 우선순위, 금기시되는 것의 영향을 받는다.

 

인류학 전시회에 자주 활용되는 디오라마에는 박제된 야생동물과 원주민을 대놓고 동일시하는 시선이 깔려 있다. 저자는 박물관의 탈식민지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은 박물관의 모든 소장품이 한곳에 모일 수 있었던 힘은 제국주의 시대의 불균등한 권력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 탈식민지화가 필요한 대표적 예가 도도새이다. 과학은 협력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협력이라 불러도 힘의 구도는 불균형하다는 사실을 솔직히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저자의 말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저자를 통해 알게 되는 사실 가운데 하나는 탐험대가 박물관에 전시할 만한 것으로 무엇을 찾아오느냐에 따라 그 나라를 침략해 식민지로 삼을지 말지가 결정되기도 했다는 점이다. 자연사박물관이 발전한 시기는 식민지 사업이 성장한 시기와 겹친다. 이는 우연이 아니었다. 박물관은 제국이 거둬들인 전리품의 보관소이자 식민지에서 추출, 착취할 천연자원이 있는지 판단할 만한 표본들을 보유하다가 필요할 때 언제든 연구할 수 있는 곳이었다. 저자는 자연사박물관의 표본이 획득된 과정이 사회사의 측면에서 부적절한 사건과 엮여 있다면 그 이야기까지 관람객들에게 들려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고통을 가하며 벌어들인 돈이 자신이 속한 박물관(케임브리지대학교 동물학박물관)의 소장품 수집에 쓰인 셈이라는 사실을 말할 정도로 진지하다. 저자는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논란 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또 다른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는 생물을 비교하는 것은 자연사의 거의 모든 세부 분야에서 필수적인 연구 방식이지만 다양한 표본이 한곳에 모여 있을 때 생기는 이러한 가치를 인정하는 것과 세계 각지에서 나온 표본들이 전 세계 자연사박물관에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 따져보는 것은 별개의 일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식민지배를 받은 나라의 이중고를 이야기한다. 하나는 식민 지배를 받은 것 자체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 나라에서 유래한 표본들이 식민지를 건설한 국가들에 있는 현실이다. 물론 그 국가들이 표본이나 문화재를 가져가 보관하지 않았다면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을 것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저자는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고고학, 예술, 자연사, 그 밖의 어떤 분야든 소속을 둘러싼 논의는 결국 바로 그것이 어디에 있을 때 가장 큰 의미가 있는가라는 한 줄기로 모이는 듯하다고 말한다.

 

책을 읽으며 느낀 것 중 하나는 삶이란 참 어려운 것이라는 점이다. 표본이 수집된 후 새로운 종으로 밝혀질 때까지 소요되는 지체 시간이 평균 21년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최근 발견된 새로운 포유류 종의 4분의 3은 자연서식지가 아니라 박물관 수장고에서 표본으로 발견되었다. 새로운 종 여부가 밝혀지지 않은 채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되고 있는 생물 중에는 자연서식지에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것이 있다. 지금 수집되는 표본들은 과학자들이 내리는 결정의 주요한 바탕이 될 것이다.

 

박물관들은 살아 있는 동물을 죽이지 않고 표본을 수집하는 방안을 꾸준히 찾고 있다. 과학자들은 자연사박물관이 자연의 기억 보관소라는 사실을 토대로 박물관의 표본과 그 표본에 관한 데이터를 활용하면 생물을 지키는 중요한 문제의 해답을 찾는 새로운 길이 나타날 수 있음을 끊임없이 깨닫고 있다. 자연사박물관에 남아 있는 오래전 기록은 지역의 멸종 생물을 복원하는 데 활용된다. 자연사박물관의 표본은 생물 보존의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 구체적인 보존 방식을 알려주기도 한다. 박물관 일은 여러 직업 중 하나이지만 이 직업에는 소명 의식이 필요하다.

 

지구에 사는 생물의 다양성을 기록하는 것은 자연사박물관이 처음 생겨났을 때부터 줄곧 핵심 과제다. 전시실에 놓을 표본 하나를 결정하는 것은 수백만점의 다른 표본이 제외되는 것을 뜻한다. 이 부분으로부터 편향성은 불가피하며 박물관 일에 막중한 책임감과 균형감각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자연사박물관이 시대에 뒤떨어지는 시설이라는, 부당하고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오해를 벗으려면 자원이 필요하다. 이 책은 감사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듯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나올 수 있었다. 자연사박물관에 대해 알게 해주고 생각하게 해준 저자에게 감사하다. [자연사박물관이 세계를 구하는 법]은 균형잡힌 시각으로 전해진 새로운 정보의 선물상자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