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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당화 그늘


지난 해 가을 이후 자주 가는 식당 사장님이 조심스럽게 내게 무슨 일을 하는지 물었다. 지질 해설사입니다라고 답했더니 당신이 다른 해설사들을 몇 명 아는데 그 분들과 내가 무언가 달라 묻게 되었다고 말하셨다. 그래서 어떻게 다른가요? 라고 물으니 사장님은 내가 진품명품 같다고 이야기 하셨다. 사장님은 아마도 나와 동료가 식사하며 나눈 대화를 바쁜 중에도 들었을 것이다.

 

나는 대부분의 해설사들이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고 답했다. 내가 한 이 말은 입증된 바이지만 근본을 헤아리면 관건은 스스로 동기(動機)를 찾느냐의 문제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도 지질해설사이기에 지질에 중점을 두지만 그럼에도 지구과학의 주요 다른 구성 요소인 천문, 대기, 해양에도 어느 정도는 관심을 가지고 공부도 하고 주요 이론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데 다른 해설사들은 지질만 하거나 지질도 안 한다는 차이가 있고 근본적으로 나는 연 1회의 시연, 필기 같은 최소의 압박 요인마저 없기에 공부하지 않아도 되지만 하는 것이고 다른 해설사들은 압박 요인이 없어서 필요를 느끼지 않아 안 하는 것이다.

 

아니 거기서 더 나아가 나는 지구과학 공부에 도움을 얻기 위해 물리학, 천체물리학, 화학까지 공부하니 다른 해설사들 눈에 그런 나는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공부는 좋은 것이고 필요한 것이다. 지질박물관장을 역임한 이승배 씨는 '우리 땅 돌 이야기'라는 책에서 영월의 굴곡 많은 지질과 단종의 굴곡 많은 인생을 한 차원에 놓는 글을 썼다. 굴곡 많은 지질이란 뜻은 영월이 습곡과 단층의 흔적이 뚜렷한 땅이라는 의미이고 굴곡 많은 인생이란 단종이 영월에서 한많은 유배 생활을 했음을 뜻한다. 역사를 끌어다 지질을 설명한 것이다.

 

이론 물리학자 리사 랜들은 '암흑물질과 공룡'이란 책에서 공룡 멸종에 대해 논했다. 공룡 멸종과 관계된 유력 후보 지역인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칙슬루브 충돌구 이야기를 하며 실험물리학자 루이스 앨버레즈의 활약상을 언급했다. 루이스 앨버레즈가 주목한 것은 탄소질 콘드라이트였다. 그의 아들인 지구과학자 월터 앨버레즈가 쓴 '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은 "우주 지구 생명 인류에 관한 빅 히스토리"라는 부제를 가진 책이다. 나는 빅 히스토리는 아니지만 스몰 히스토리 이상을 지향한다. 

 

루이스 앨버레즈는 핵무기를 만드는 맨해턴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B 29 폭격기에서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파괴력을 측정하는 임무를 맡았다. 루이스 앨버레즈는 2차 우주선(宇宙線)인 뮤온을 이용해 피라미드 내부를 촬영한 인물이 되었다. 지구과학, 물리학, 고고학, 역사학 등은 이렇게 만난다. 뮤온으로 피라미드 내부를 보는 것은 엑스선으로 인체 내부를 보는 것과 원리가 같기에 의학 이야기도 할 수 있다.

 

천체물리학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은 '코스믹 쿼리'라는 책에서 지구의 물이 모두 증발하면 판운동도 멈추게 된다는 말을 했다. 여기서 물이 하는 역할이 드러난다. 물은 마찰을 줄여 판을 움직이게 해준다. 물은 석영암맥 형성에도 관여한다. 우주배경복사, 중력파, 연주시차, 중성자별, 펄서, 블랙홀, 반입자, 질량결손 등의 천문학 또는 물리학 용어는 참 설레는 말이다. 


태양 중심에서 수소 원자핵 네 개가 만나 헬륨 원자핵 하나가 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질량 결손분이 빛이 되어 우리를 밝혀주니, 그리고 입자 10억개와 그에 미세하게 못 미치는 개수의 반입자가 만나 ‘쌍소멸’되지 않았기에 무언가가 존재하게 된 것이니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가. 이 밖에 우주 형성 당시의 극도로 미세한 차이들이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이 부분에서 세상은 왜 무(無)가 아니고 무언가가 존재하는가, 란 철학적 질문을 던져도 좋다. 


단층, 습곡, 오피올라이트, 관입, 대륙이동, 섭입, 조산 등 지구과학 용어 역시 지구의 놀랍고 긴 역사를 증언하는 용어라는 점에서 남다른 말들이다. 지구과학을 공부하는 일은 그 만큼 설레는 일이다. 설레는 만큼 즐겁다. 재미 있으니 즐기는 것이고 그런 만큼 자발적이 될 수밖에 없다. 진품명품 이야기를 하신 식당 사장님께 나는 진품명품이 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설령 그렇게 되지 못해도 과정 자체가 소중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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