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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당화 그늘
  •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
  •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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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9-30
  • : 282

클로드 레비스트로스(1908-2009)는 구조주의 인류학자다. 그의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를 읽는다. 원제도 우리 말 번역본 제목과 뜻이 같다. 레비스트로스는 프랑스에서 크리스마스 행사가 미국의 영향만으로 크게 확대되었다고 설명한다면 지나치게 단순한 설명일 수 있다고 말한다.(16 페이지) 레비스트로스는 자극에 의한 확산을 말한다. 외국에서 전래된 풍습은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촉매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잠재적 상태로 이미 존재하던 유사한 풍습의 출현을 자극한다는 의미다. 레비스트로스는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의 이름도 여럿인 것을 예로 들어 동일한 형태를 지니던 원형이 아니라 수렴 과정의 결과물로 보인다고 말한다. 레비스트로스는 산타클로스는 통과의례와 입문의례의 총체와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레비스트로스는 로마의 사투르누스 축제와 중세 크리스마스의 구조적 유사성을 논한다. 그것은 이원적 대립의 관점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문이다. 연대성의 확대와 적대감의 고조가 그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밀 때 힘을 주지 않고 당길 때 힘을 주는 방식으로 톱을 사용하는 일본의 예를 들며 이는 철광석이 부족한 일본의 특징에서 비롯된 일이라 추론한다. 즉 당길 때 나무를 자르는 톱은 밀어낼 때 나무를 자르는 톱보다 금속의 무게가 더 얇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런 예는 일본의 사상과도 통하는 바가 있다. 즉 일본 사상은 주체를 원인으로 삼지 않고 주체에서 결과를 찾는 것이다.


책의 전체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장(章)은 ’발전에는 하나의 유형만이 존재하는 것일까?’다. 레비스트로스는 마야 제국을 비롯해 남아메리카의 여러 지역에는 과거에 무척 조악한 농촌사회들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놀라울 정도로 복잡한 농경 시스템이 있었다는 흔적이 항공사진에서 확인되었다고 말한다. 콜롬비아에서 확인된 수천 개의 배수로, 수백 미터 길이의 경사지 등이다. 이런 땅에서 그들은 농사를 지음으로써 항구적으로 물을 공급받고 범람에서 자유로웠다. 레비스트로스는 고대 사회와 그 밖의 사회를 엄격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한다. 레비스트로스는 변화는 간헐적이고 불연속적이었다고 말한다. 도약과 오랜 침체가 번갈아 반복되었다고 한다. 


제한된 공간에서 순간적으로 테크놀로지 혁명이 일어났다. 우리가 원시적이고 후진적이라고 생각하는 민족들도 석기와 요업 및 농업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대량생산을 해낼 수 있었고 때로는 우리를 능가하는 결과를 얻어내기도 했다. 급속한 혁신의 단계와 정체의 단계가 차례로 반복되었고 때로 두 단계가 공존했다. 하나의 유형으로만 발전한 것도 아니었다. 다양한 형태로 발달했다. 식물종이나 동물종은 수십만 년, 심지어 수백만 년 동안 변하지 않을 수 있다. 개체군 내에서 개별적인 변이들은 상쇄되어 결국 없어지기 때문에 이런 안정성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반면 종에게 유리한 변화가 돌발적으로 나타나면 (지질학적 시간에서 보면) 무척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종이 적응해야 하는 새로운 환경에서 일부 개체가 대대수로부터 분리되어 있을 때 그런 변화가 일어나 가능성이 크다. 


테크놀로지의 혁신적 변화처럼 생물학적 진화도 불규칙적으로 이따금씩 일어난다. 오랜 정체기 사이사이에 대대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짧은 기간이 끼어든다. 레비스트로스는 이를 단속평형이론이라 말한다. 단속평형이론은 스티븐 제이 굴드와 닐스 엘드리지가 제안한 이론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지질학, 마르크시즘,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세 학문 모두 보이지 않는 구조, 심층으로 보이는 부분을 설명하는 학문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진화는 동일한 성격을 띠지 않고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무척 다양한 모습을 띤다고 말한다. 가령 하나의 개체군에서는 진화가 느릿하고 점진적인 변이로 나타나지만 종의 관점에서는 적응도가 확실하지 않은 변화로 나타날 수 있고 개별적인 종은 오랫동안 어떤 변화도 겪지 않을 수 있지만 속(屬)의 차원에서는 대진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단속적(斷續的) 변화라는 가정을 인간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합당하다면 인간의 생산능력과 미학적 표현이 인간 사회와 환경의 관계를 반영하듯 그 관계가 항상 똑같지는 않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49 페이지) 수렵인들이 땅을 경작할 능력이 충분히 있었지만 경작하지 않았던 것은 옳건 그르건 땅을 경작하지 않아도 더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농사를 짓는 이웃 부족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웃 부족의 삶을 모방하지 않은 것은 농업이 과도한 노동을 요구해 여가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땅을 경작하는 농업은 초보적인 수준에서도 수렵과 채취보다 노동 시간이 길고 노동 강도도 세고 수확량이 많은 것도 아니다. 


레비스트로스는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된 사회 발전을 하나의 모델로 설명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농업으로 인해 발전과 풍요가 있었지만 퇴행도 있었다. 레비스트로스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신세계의 발견이 아니라 신세계 사람들과 가치들을 야만적으로 파괴한 신세계 침략으로 불러야 마땅했던 정복 500주년(1991년 쓴 글)을 앞두고 아메리카 원주민의 이분법을 올바로 인식할 때 진실한 참회의 기도가 완성될 수 있을 것이란 말을 한다. 레비스트로스는 반 세기 전에 처음 알았던 브라질 보로로족 이야기를 한다. 그들이 자연스레 터득한 철학적 원리는 생명은 활동과 단단함을 의미하고 죽음은 부드러움과 무기력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인간이든 짐승이든 시체에서 그들은 두 부분을 구분한다. 하나는 물렁물렁하고 부패하는 살이고, 다른 하나는 짐승의 경우에 발톱과 부리, 인간의 경우에는 뼈와 목걸이와 장신구 같은 썩지 않는 부분이다. 보로로족의 한 신화에 의하면 문명을 전하려는 주인공은 가치 없는 것 즉 몸에서 물렁물렁한 부분에 구멍을 뚫는다. 주인공은 귀와 콧구멍과 입술에 구멍을 뚫어 그 부분들이 딱딱한 것들로 대체되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딱딱한 것은 장신구로 나타나며 그 재료는 주로 손톱과 발톱, 송곳니를 비롯한 이빨, 조개껍질과 식물성 섬유 등이다. 이런 상징적 대체는 장신구가 물렁물렁한 것을 딱딱한 것으로 바꾸며 몸에서 죽음을 미리 예시하는 부분들을 대신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엄밀하게 말하면 장신구는 생명을 주는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시간이 흐른다고 인간이 경험한 사랑과 증오, 인간들 간의 약속, 인간의 투쟁과 욕망 등에 덧붙여지는 것은 없고 제외되는 것도 없다고 말한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열정은 똑같다. 역사에서 1,000년, 심지어 2,000년이란 시간을 아무렇게나 지워버리더라도 인간의 본성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눈에 띄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레비스트로스는 천체물리학과 양자역학을 이야기한다. 무한히 작은 것으로 넘어가면 천체물리학자들은 미립자와 원자가 이곳과 저곳에 동시에 있을 수 있으며 모든 곳에 있는 동시에 어디에도 없을 수 있다고도 설명한다. 미립자와 원자가 때로는 파동처럼, 때로는 개체성을 보존한 알갱이처럼 움직인다고도 설명한다. 


레비스트로스는 양자물리학이 미시적 관점에서 묘사한 현상을 거시적 관점으로 옮겨놓은 듯한 멋진 예를 든다. 한 처녀와 그녀의 남편이 된 여자 마법사의 아들 간의 이야기다. 남자를 따라 시어머니에게 가던 중 둘로 갈라지는 길에서 남자가 둘로 나뉘어 각자 하나의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오른쪽 길을 택한 여자는 남편의 두 몸이 하나로 합해지는 것을 목격한다. 레비스트로스는 양자물리학의 설명은 모든 수학적 계산과 천체물리학자만이 해석할 수 있는 복잡한 실험의 결과여서 그들에게만 의미 있는 설명일뿐이라 말한다.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양자물리학의 아버지격인 닐스 보어는 동료 학자들에게 양자물리학의 표면적인 모순을 극복하려면 민족학자와 시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라고 촉구했다. 보어는 인간 문화들 간의 전통적인 차이는 물리적 실험이 서술될 수 있는 많은 방법 즉 다르지만 등가에 있는 방법들과 유사하다는 말을 했다. 


레비스트로스는 입을 통해 소화기관으로 타인의 뇌물질을 받아들이는 것(식인 풍습)과 주사기로 혈관을 통해 타인의 뇌물질을 받아들이는 것 사이에 무슨 근본적인 차이가 있느냐 묻는다.(125 페이지)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미신적 풍습과 과학적 지식에 기반을 둔 행위 간의 경계는 생각만큼 명확하지 않다. 식인 풍습이 만연한 곳에 쿠루병이 있었다. 쿠루병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전염성해면상뇌병증을 말한다. 쿠루란 공포에 떨다라는 뜻이다. 1976년 노벨 의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생물학자 대니얼 칼턴 가이듀섹은 크로이츠펠트야코브병이 쿠루병과 똑같다는 점을 입증했다. 크로이츠펠트야코브병은 머리에 구멍이 생겨 뇌기능을 잃고 죽는 병을 말한다. 레비스트로스는 인간의 몸에서 추출한 물질의 잦은 사용이 과거의 의학에 비해 과학적으로 보이겠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미신이고 맹신이라 말한다. 


레비스트로스는 식인 풍습은 기근 시대에 식량을 보충하는 수단, 인간의 살에 대한 욕구, 죄인의 징벌, 적에 대한 복수, 종교의식, 장례와 제사, 성년식, 풍년 기원 등의 의미와 관련된다고 말하며 뇌하수체 주입, 뇌물질 이식, 장기 이식 등은 치유적 성격을 띤 식인 풍습의 범주에 속한다고 말한다.(127 페이지) 책의 제목과 같은 이 부분은 레비스트로스의 단호함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생명의 단일성을 믿는 불교에서 모든 살은 어디에서 왔건 식인종의 먹을거리다. 레비스트로스는 신화의 추론 방식은 19세기 인류학자들이 진화론에 매료되어 세상에 존재하는 제도와 관습을 단선적으로 분류하고 정리하려던 방식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레비스트로스의 말 가운데 특히 인상적인 것은 증명이 가능하지 않으면 마음껏 상상력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155 페이지) 참고할 바가 충분하다 하겠다. 레비스트로스는 ‘구약성경’은 인간의 육식을 타락의 간접적 결과로 해석한다고 말한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채소와 열매만을 먹었다. 노아 이후에야 인간은 육식동물이 되었다. 레비스트로스는 앞으로 한 세기 내에 인구가 두 배로 증가할 세계에서 가축들은 인간의 무서운 경쟁자가 될 것이라 말한다. 미국에서 곡물의 2/3가 가축을 먹이는 데 사용된다. 가축이 생존 기간에 소비하는 칼로리 양이 살코기의 형태로 우리에게 돌아오는 칼로리 양보다 훨씬 많다. 


레비스트로스의 논리는 대체로 긍정할 만하다. 책의 끝부분에서 구조주의에 대해 언급한 그의 논지는 구조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오래 전에 읽던 구조주의를 다시 생각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시간이 되면 ‘슬픈 열대’를 다시 읽고 싶다. 나온 지 10년이 지난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를 읽은 것은 이 책에서 단속평형론이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굴드는 진화를 충분한 시간 속에서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과정으로 생각한 다윈의 견해를 벗어났다. 종은 점진적으로 진화해서 새로운 종이 되지는 않으며 새로운 종은 전형적으로 국소 개체군들 중 하나 혹은 둘의 빠른 종분화에 의해서 부모 종으로부터 갈라지면서 생겨난다는 것이 단속평형설의 핵심이다.(2002년 8월 28일 포항공대 신문 수록 김우재 글 ‘인간은 조금 더 겸손해져야 한다‘ 참고) 


물론 굴드, 그리고 단속평형설은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의 중심이 아니다. 레비스트로스의 책을 통해 철학책을 다시 가까이 하고 싶은 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부지런해야 한다는 점도 확인했다. 어느 곳에서 레비스트로스가 지질학에 대해 이야기 한 부분을 만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으로 책을 펼쳤지만 만난 것은 양자물리학, 천체물리학 등에 대한 서술이었다. 최근 지구과학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물리학을 읽고 있는 입장에서 반갑게 만난 글이었다. 세상의 많은 분야가 통한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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