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산당화 그늘

 

오늘 DMZ 평화의 길 걷기 프로그램에서 브루스 커밍스와 신복룡 교수의 맞섬에 대해 말했다. '폭포의 굉음(roaring of the cataract)' vs '백내장 걸린 눈으로 본 철책(railing of the cataract)'이 그것이다. 


평소에는 우리나라의 한 학자가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전쟁의 기원’의 부제인 ‘폭포의 굉음’을 비틀어 '백내장 걸린 눈으로 바라본 철책(鐵柵)'이라고 맞받았다고 했는데 오늘은 건국대 신복룡 교수가 그런 말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한 가족 팀의 여성 분이 아, 그 분 제 지도 교수님이셨습니다란 말을 했다. 


그래서 나는 도정궁 경원당, 아차산, 화양정, 광나루, 시립천문대, 어린이대공원 등 광진구의 여섯 명소에 대해 말했다. 이 명소들은 내가 글 작가로 참여한 '엄마가 들려주는 광진구 이야기; 진(津)이의 땅물별 여행'에서 다룬 곳들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도정궁 경원당은 역모 혐의로 억울하게 사사(賜死)된 철종 대의 왕족 이하전(李夏銓; 1842~1862)과 관련된 곳이다. 전(銓)이란 글자를 주목한다. 사람 가릴 전, 저울질 할 전이란 글자다. 


사람을 가려야 할 필요를 요즘 들어 절대적으로 느낀다.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다. 잡스러운 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내 주위 사람들뿐 아니라 나와 거리가 멀지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까지 두루 주위를 기울여 상대해야 하리라. 


어제는 얀 잘라시에비치의 '지질학' 리뷰로 인해 하나의 단서를 얻었다. 누군가 내 리뷰를 읽고 책을 구입하는 데 도움을 받아 thanks to 버튼을 눌러 내게 책 값의 1%가 적립되었다. 얼마 되지 않는 액수이지만 나는 그 사실을 기쁘게 확인하고 책을 펼쳐 보았다. 2년전에 읽은 책이기에 세부적으로 기억하기 어려워서 그랬다. 본문 중 한 곳에서 에베레스트에서 발견된 코노돈트 화석과 산호 화석 이야기를 확인했다. 마침 에베레스트를 주제로 글을 쓰던 참이어서 아, 이런 계시(?)도 있구나, 란 생각을 했다. 우연이지만 예사롭지 않은 일이 아닌지? 


폴란드 태생의 지질학자인 얀 잘라시에비치는 ‘인류세 책‘의 공저자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 이후의 지구(The Earth After Us)‘, ’암석 읽는 법(How to Read a Rock)‘ 등의 단독 저서, ’우주의 오아시스(The Cosmic Oasis)’ 등의 공저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우리 이후의 지구’는 로스 미첼의 '다가올 초대륙(The Next Supercontinent)'과 같은 미래의 풍경을 그린 책이다. ‘암석 읽는 법’은 마샤 비요르네루드(Marcia Bjornerud)의 ‘암석 읽기; 지구 자서전(Reading The Rocks: The Autobiography of the Earth)’과 같은 부류의 책으로 보인다. 


번역된 책도 다 따라가기 힘든 형편이기에 미번역 책을 원서로 읽는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지만 필요하다면 긴 호흡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감수하면서라도 시도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블라디미르 자이틀린(Vladimir Zeitlin)의 ‘지구 물리 유체역학(Geophysical Fluid Dynamics)‘, 마샤 비요르네루드의 ‘암석 읽기; 지구 자서전(Reading The Rocks: The Autobiography of the Earth)’ 등이 1순위가 될 것이다. 


번역이 저술보다 더 어렵다. 저술은 아는 것만 쓰면 되지만 번역은 모르는 것도 써야(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는 것만 쓰면 된다는 저술도 새롭게 반영할 것을 꾸준히 찾아내야 하기에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많이 위축되었고 많이 어렵다는 출판 번역시장임에도 나오는 양질의 번역서들을 보면 감사하다. 내가 할 일은 그런 책들을 꾸준히 읽어 조금이라도 더 알려지게 하는 것이다. 


‘다가올 초대륙’은 다음 달(6월) 쓸 슈퍼 플룸론(論)을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로스 미첼의 '다가올 초대륙'에 이런 글이 있다. “압력이 깊이에 따라 증가하는 경향은 온도와 대체로 비슷하지만 이유는 다르다. 우리 위로 암석이 많이 쌓일수록 우리는 더 큰 압력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암석은 어떻게, 그리고 왜 그렇게 깊이 들어가게 됐을까? 한마디로 섭입(攝入)이다. 이는 밀도가 높은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해양 지각이 맨틀로 돌아가 재활용되는 메커니즘이다.”(113 페이지) 


한글 문서 작성시 섭입을 한자로 바꾸는 것은 아직 딱 떨어지게 되지 않는다. 가령 현무암은 한자 변형이 되지만 섭입은 아직 안 된다. 말하자면 당길 섭, 들 입을 따로 변형시켜야 하는 것이다. 섭입은 아직 대중적이지 않은 개념임을 반영하는 현실일 것이다. 


위의 인용된 문장에 이어지는 다음의 문장이 눈길을 끈다. “직관에 반하는 것 같지만, 산은 위로 우뚝 솟은 봉우리를 만들면서도 아래로는 깊은 뿌리를 형성하며 높아짐과 동시에 깊어진다.”(114 페이지) 번역 차원이기보다 저술 차원의 이상(異常)이 아닌가 싶다. 주어를 산이 아니라 지판의 움직임 또는 조산작용으로 고쳐야 타당하지 않을지? 


물론 의미 깊은 문장이다. 망쳤다고 할 수는 없고 조금 이상하다고 해야 할까? 어떻든 문장의 적확함과 별도로 저 서술은 쉽게 설명할 수 있도록 내가 익히고 이해해야 하는 문장이다. 5월도 저물어간다. 지구과학 책을 많이 못 읽어 아쉬워 하다가도 지구과학 책만을 너무 읽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다. 이런 섭동(攝動)에도 불구하고 책과 만나는 시간은 즐겁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