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이공계 연구원을 위한 인문학 강좌를 개설한 바 있다. 그간 상대적으로 소홀히 여겨졌던 자연과학과 공학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의 필요성을 느끼는 한편 연구원들의 창의적 상상력 계발과 정서 함양을 위해 충남대학교 인문대학과 공동으로 기획한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이공계쪽 사람이 아니지만 지질공원해설사인 관계로 자연과학자들의 강의를 듣거나 관련 책을 자주 접하는 편이다. 자주(frequently)는 아니고 자연과학자들의 설명이 좀 더 정교해지고 인문학적 비유도 세련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내가 공부에 많은 부분 도움을 받은 이정우 교수님은 학부에서 섬유고분자 공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와 갈릴레오 비교 연구로 석사 학위를, 푸코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분이다. 내 글쓰기의 기본은 이분의 이력으로부터 시사를 많이 얻은 바이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글도 내게 많은 지향점이 되었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학문과 생애를 다룬 리처드 요크의‘과학과 휴머니즘‘에 이런 글이 있다. 읽고 쓰는 능력은 기호적 표상을 이해하는 뇌, 예리한 눈, 그리고 솜씨 좋은 손 등에 의존한다. 그러나 이들 특성 중 어느 하나도 읽기와 쓰기를 위해 진화하지 않았다. 그것은 겨우 수천년 전에 출현한 능력이며 인구의 상당 부분에 걸쳐 널리 사용된 것은 100년 남짓에 불과하다.“
리처드 요크가 말한 요건들(기호적 표상을 이해하는 뇌, 예리한 눈, 그리고 솜씨 좋은 손)은 필요 조건이고 충분 조건은 분야를 넘나드는 다독(多讀)이다. 다독해야 할 부분은 좁게는 자연과학과 인문학이고, 넓게는 천문학, 물리학, 지구과학, 생물학, 역사, 사회학, 지리, 문학 등이다. 단 무분별에 가까운 독서 시대를 지났기에 분야를 좁혀 고전역학 & 양자역학, 지구과학, 생명과학, 철학, 역사 등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리처드 요크가 정리한 바에 따르면 굴드는 과학과 인문학이 모두 위대한 전통이며 각기 독립적인 영역을 갖지만 경계를 접하고 서로 보완해 준다고 말했다. 어제 더칼럼니스트 사이트에 내 글‘창백한 푸른 점 지구에 색(色) 역사가 있다’가 실렸다. 자연 칼럼니스트란 이름으로 올린 첫 글이다. 자연이란 말은 워낙 역사적 의미가 담긴 말이지만 산책자를 위한 자연수업의 저자 트리스탄 굴리로부터 영향을 받은 결과 채택한 이름이다.
세계적인 탐험가인 굴리는 자연에서 얻은 단서들을 활용해 길을 찾아나가는 자연항법(natural navigator)전문가다. 내게 부족한 점은 자연에서 단서를 얻는 것이기에 나는 그런 점을 지향하고 배우고자 자연 칼럼니스트란 이름을 설정했다. 다행히 어제 오른 글에 대해 호평이 넘쳐 기쁜 한편 새로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지구과학 전공자들께서 날카로운(전문가적 시각으로) 평으로 내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 창백한 푸른 점 이전 지구가 보였던 색(色)에 초점을 맞춘 것이 기발하거나 탁월하거나 감동적이라는 평들이 그것이다. 모두 감사하다. 다시 신발끈을 단단히 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