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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당화 그늘
  • 정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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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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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주(李益柱) 교수의 ‘정도전‘에서 한자를 많이 배운다. 추대(推戴), 산직(散職), 총재(冢宰) 등...추대의 대는 받들다, 머리에 인다 등의 의미를 지닌 대(戴)다. 대관식(戴冠式)의 그 대다. 한직(閑職)은 들어보았지만 산직(散職)은 처음이다. 한산(閑散)하다는 말의 한과 산이 모두 높지 않거나 한가한 직(職)을 뜻하는 것으로 쓰이는 것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총재는 이조판서를 이르는 말이다. 무덤 총자를 쓴다는 점이 흥미롭다. 세계(世系)는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이어지는 계통을 말한다. 전(箋)은 찌지, 덧붙이는 쪽지, 주석(註釋)을 의미한다. 찌지는 간단한 쪽지를 말한다.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에서 왕건을 가리켜 궁예를 대신하면서 고려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고 말했다. 왕건 외의 박석김(朴昔金)씨, 온조, 견훤, 주몽, 궁예 등이 한 지역을 몰래 차지하여 중국의 명을 받지 않고 스스로 국호를 세우고 서로 침탈했다고 썼다. 오직 기자만이 주(周) 무왕의 명을 받고 조선후(朝鮮侯)에 봉해졌다고 전제한 정도전은 지금 조선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계승했으므로 마땅히 기자의 선정을 강구할 것이라 썼다. 정도전은 재상(宰相)의 재(宰)는 다스린다는 의미이고 상은 돕는다는 의미라고 했다. 


정도전은 임금은 오직 사람이 어진지 그렇지 못한지를 알아서 등용하거나 물리치면 백관이 다스려질 것이며 일이 온당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살펴서 구분해 치리하면 만물이 제자리를 찾고 만민이 편안해질 것이라 썼다. 임금의 직책은 재상 한 사람만을 택하는 데 있고 그 밖에 아래의 여러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순리라 썼다. 지인(知人)은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보는 것을 의미한다. 도(都), 유(兪)는 모두 찬성하는 의미의 감탄사다. 우(旴), 불(咈)은 반대하는 의미의 말이다.(144 페이지 참고) 


정도전은 임금은 좋은 신하를, 신하는 좋은 임금을 만나기 어렵거니와 바야흐로 지금은 밝은 임금과 좋은 신하가 만나 성의로써 서로 믿으며 유신(維新)의 정치를 함께 도모하니 천년, 백년 만의 융성한 시기라 썼다. 정도전은 과거에 대해서도 논한다. 문장으로 시험을 보면 겉만 화려하고 실속이 없는 무리가 그 사이에 끼어들게 되고 경사(經史)로써 시험하면 실정에 어둡고 편벽되며 고루한 선비들이 간혹 나오게 된다고 했다. 경학과 부논(賻論)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상(農桑)은 농사와 뽕나무를 가꾸는 일을 말한다. 친경(親耕), 친잠(親蠶)과 함께 생각해볼 만하다. 


정도전은 농상 즉 농사와 양잠은 먹는 것과 입는 것의 근본이니 왕도정치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 말했다. 정도전은 나주(羅州) 지역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곳이 상마(桑麻)가 풍부하다고 했다. 상마는 뽕나무와 삼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옷감의 재료를 뜻한다.(230 페이지) 정도전은 백성은 국가의 근본이며 임금의 하늘이라고 했다. 본실(本實)은 농업을, 말업(末業)은 수공업이나 상업을 의미한다. 천조(天朝)는 천자의 조정을 제후국에서 이르는 말이다. 정도전은 구리와 철은 그릇, 농기구뿐 아니라 무기를 만드는 소재이니 필수품이라 칭했다. 철장(鐵場)은 쇠를 단련하는 곳을 이른다. 


연경(燕京)은 북경(北京)을 말하는 것으로 원래 연나라의 수도였던 데에서 유래한 말이다. 본문에는 원나라의 수도인 대도(大都)라고 설명되어 있다. 정도전은 수공업자, 상인, 무당, 재인, 화척 등은 농사를 짓지 않고 남들이 생산한 것을 먹는 사람(생산하지 않는 사람)으로 분류했다. 견면(蠲免)은 세금이나 부역을 감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관헌(祼獻)은 술을 땅에 뿌리고 음식을 올리는 제사 의식(儀式)을 말한다. 선마(宣麻)의 선은 임금의 말, 하교(下敎) 등을 이르는 말이다. 마는 조서(詔書)를 의미한다.


사람은 토지가 아니면 설 수 없고 곡식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적전(籍田)은 임금이 몸소 경작하는 밭을 의미한다. 온 천하가 다 같이 제사를 지내는 것은 오직 문묘(文廟)뿐이다. 악(樂)은 성정(性情)의 바름에서 나오는 것을 성문(聲文; 소리)을 빌려 표현하는 것이다. 상제(喪製)편에는 참최복(斬衰服)과 재최복(齊衰服) 이야기가 나온다. 참최복을 재최복으로 갈아 입는 이야기다. 주나라 제도에서는 병(兵), 농(農)이 일치했다. 정도전은 평소 무사한 때에 군사훈련은 반드시 전렵(田獵)을 통해서 하게 된다는 말을 했다. 


정도전은 사마양저(司馬穰苴)의 병법을 가감해 강무도(講武圖)를 지어 바쳤다고 말했다. 수(蒐)·묘(苗)·선(獮)·수(狩)는 4계의 사냥을 지칭하는 말이다. 조선 성종은 1489년 "나라의 큰일은 사사(祀事)와 융사(戎事)에 있는바....수·묘·선·수(蒐苗獮狩) 하는 것을 중하게 여겼다...우리 나라의 강무(講武)하는 법은 곧 이 수·묘·선·수의 뜻이라 조종 때에는 오래 거행하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기해년(1479년 성종 10년) 이후 일이 많아서 여기에 미칠 겨를이 없다가, 전에 두 해 동안 외방(外方)의 군사를 징발하여 근교(近郊)에 벌였으나, 또한 사고 때문에 문득 다 파하여 보냈다...이제 다행히 일이 없고 곡식도 익어 가는데 이 큰 일을 강습하는 것을 그만둘 수 있겠는가? 9월 28일에 교외에서 열병(閱兵)하고 10월 2일에 경기와 강원도에서 사냥하고자 한다.“고 하교했다.


정도전은 사냥은 한가한 놀이에 가깝고 잡은 짐승을 자기가 갖는다는 의심을 살만하므로 성인은 이런 점을 염려해서 사냥의 법도를 만들었다고 썼다. 하나는 백성의 곡식을 해치는 짐승만을 사냥하는 것, 다른 하나는 잡은 짐승을 제사에 바치는 것으로 이는 종묘사직과 생명을 위한 계책이라고 풀이했다. 관(關)은 교통 요지에 설치한 관문, 진(津)은 교통 요지에 설치한 나루를 말한다. 정도전은 임진도(臨津渡)와 벽란도(碧瀾渡)는 서울에서 매우 가까우므로 특별히 별감을 파견해서 검문을 더 하게 했으니 이는 또한 서울을 존중하고 나라의 근본을 소중히 여긴 까닭이라 썼다.(120 페이지) 


매이(罵詈)는 말로 욕하는 것, 소송(訴訟)은 관청에서 싸우는 것을 말한다. 악독(嶽瀆)은 산과 강을 말한다. 정도전은 경제문감에서 재상의 업무는 임금을 바로잡는 것보다 더 큰 일이 없다고 말한다. 정도전은 마땅히 임금을 바르게 해야 할 사람이 옳은 것을 건의하고 그른 것을 고치도록 하지 않고 부화뇌동해서 임금의 뜻을 따르는 것을 능사로 삼으며 세상을 경륜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일에 마음을 두지 않고 자신을 보전하고 은총을 굳히려는 술수를 부린다면 재상의 직분을 잃은 것이라 말한다.(156 페이지) 정도전은 어찌하여 붕당이 없는 것을 옳다고 하고 붕당이 있는 것을 그르다고 하는가라고 말했다.(159 페이지) 


섭(燮)은 조화롭게 한다는 의미다. 정도전에 의하면 지엽적인 일에 얽매이는 것도 아니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저절로 다스려지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경제문감에는 중국의 여러 재상에 대해 논한 부분이 나온다. 주공(周公)은 성왕의 재상이 되어 예악을 정하고 천하의 모범이 되어 후세에 전할 만하다고 정도전은 평했다. 미단숙영(微旦孰營)이란 말이 있다. 주공(周公) 단(旦)이 아니면 그 누가 경영하겠는가?란 의미다. 한나라의 장량(張良)은 고제(高帝)의 재상이 되어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항우를 핍박해서 공(功)이 역시 극에 달했다. 정도전은 임금은 지극히 존엄하고 재상과 장수는 지극히 귀하지만 또한 간언하고 문책하며 규찰하고 탄핵할 수 있으니 나머지는 가히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정도전은 허물은 원래 임금이 피하지 못하고 간언은 신하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말했다. 다음의 글을 보자. ”조선은 탄핵의 나라였다. 조선왕조실록에 탄핵(彈劾)이 463번 언급되고, 유의어인 대론(臺論), 거핵(擧劾), 탄론(彈論), 대탄(臺彈) 등을 합치면 1852건에 이른다. 이해관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신진 관료들을 대간(臺諫)으로 임명하고 면책 특권을 부여함으로써 거침없는 직언의 길을 보장해 주었다. 이마저도 당쟁의 수단으로 전락한 면이 있지만, 적어도 왕이나 권세가의 폭주를 막는 제도적 기능은 이어졌다.“(송혁기 교수 글) 


정도전은 무릇 사물의 이치에는 하나의 옳고 그름이 있을뿐인데 오늘날 조정에서는 옳고 그름을 과감하게 말하려 하지 않아서 재상이라면 굳이 임금의 뜻을 거역하려 하지 않고 대간 역시 재상의 뜻을 거스르려 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옛날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문(文)으로써 태평을 이루고 무(武)로써 난리를 평정했다.(190 페이지) 정도전은 책임을 지지 않는 수령에 대해 개탄하며 관리는 백성의 유모요 목자라고 결론짓는다. 책임이란 남이 주는 음식을 먹는 자가 지는 책임을 말하며 남이 주는 옷을 입는 자가 지는 근심을 풀어주는 책임이다. 


경제문감별집은 주역에 근거한 서술이 전개되는 글이다. 몽괘(蒙卦)의 육오 효사(爻辭)에 동몽(童蒙)이니 길하다란 주역 구절을 예로 들며 임금이 된 자가 지성으로 어진 이에게 맡겨서 그 공을 이룬다면 자기에게서 나온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란 결론을 내린 글이 대표적이다. 정도전은 임괘(臨卦)의 육오 효사에 지혜로 임함이니 대군의 마땅함이니 길하다는 구절을 예로 들며 오직 천하의 선(善)을 취하고 천하의 총명한 사람에게 맡기면 두루 미치지 않음이 없으니 자신의 지혜만을 스스로 믿지 않으면 그 지혜가 큰 것이라 말한다. 26괘인 산천대축(山川大畜)괘의 육오 효사에는 멧돼지를 거세하여 어금니를 쓰지 못하게 함이니 길(吉)하다란 구절이 있다.(분시지아 길; 獖豕之牙 吉) 


정도전은 임금은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 덜어내어 아래 있는 어진 이에게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주나라 문왕이 위수(渭水) 북쪽에서 낚시질을 하던 강태공을 만난 것도 새길 만하다. 본문에 덕은 크고<원; 元> 길고<영; 永> 곧다<정; 貞>란 말이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정도전은 절개가 돌과 같아서 결단하기를 하루가 다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니 바르고 길하다는 주역 예괘(豫卦)의 육이 효사를 언급한다.(232 페이지) 정도전은 돌이 단정하고 단단하며 수려하고 의젓한 것이 덕 있는 군자의 모습 같다고 말하는가 하면 기기괴괴하게 생긴 돌은 고요한 산속의 선비와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연고로 사람들이 돌을 즐기는 것이라 풀었다.


공양왕에게 올리는 상소문이 눈길을 끈다. 정도전은 덕(德)이란 득(得)이니 마음에서 얻는 것이고, 정(政)이란 정(正)이니 몸을 바로잡는 것이라 한 뒤 덕이란 것이 처음에 타고나기도 하고 수양해서 얻기도 하는데 전하께서는 평소에 책을 읽어 성현의 모범을 깊이 헤아려본 적이 없고 일을 해서 지금 세상에 통용되는 사무를 안 적이 없으니 어찌 덕을 꼭 닦았다고 할 것이며 다스림에 결함이 없다고 하겠습니까 말했다. ”전하께서는 타고난 천성의 선함을 스스로 믿지 마시고 아직 수양에 이르지 못한 것을 경계하십시오. 그리하면 덕이 닦아지고 정치가 잘 행해질 것입니다.”(245 페이지) 


정도전은 임금은 하늘을 대신해 공을 세운 자에게 상을 주고 죄를 지은 자에게 벌을 내리는 것이라 말했다. 정도전은 공양왕에게 우왕(禑王)과 창왕(昌王)은 신돈의 아들이라 말한다. 그러나 이는 개혁세력이 자신들의 입지(立地)를 위해 내세운 설득력이 떨어지는 명분이다.(박종기 지음 ’조선이 본 고려’ 참고) 공양왕은 고려의 마지막 임금이다. 정도전은 삼봉집에서 천자의 문을 단문(端門)이라 한다며 단이란 바로 정(正)이라 풀이했다. 경복궁의 정문을 오문(午門)이라 한다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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