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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당화 그늘
  •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 오구라 기조
  • 14,250원 (5%750)
  • 2017-12-20
  • : 3,156

오구라 기조는 새로 읽는 논어의 저자로 알게 된 일본 철학자다.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는 리(理)와 기(氣)로 한국을 분석한 책이다. 리(理)는 보편 원리를 의미한다. 기(氣)는 구체적 현상을 의미한다. 저자에 의하면 한국 민족에게는 리(理) 신앙이 존재한다. 하나의 보편 개념이나 원리 또는 도덕 이념으로 세계를 설명하려는 욕구를 가졌다는 말이다. 성리학은 인간의 마음에서 사회와 우주에 이르는 모든 영역을 리와 기의 관계로 설명하는 학문이다. 조선은 성(性)을 심(心)으로 바꾸는 것도 이단으로 낙인을 찍은 사회였다. 성즉리(性卽理)를 심즉리(心卽理)로 바꾼 것을 말한다. 


전자는 우리가 갈 길은 사물이 가진 고유한 가치에 따라 결정된다는 말이고, 후자는 우리가 갈 길은 나의 마음에 따라 결정된다는 말이다. 한국인은 강력한 도덕 지향적인 사람들이다. 이는 한국인은 강력한 리(理) 지향적인 사람들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리(理)는 보편이고 기(氣)는 특수다. 리(理)란 오늘 말로 진리, 원리, 윤리, 논리, 심리, 생리, 물리 등의 총칭이다. 근대 이전에는 하나의 리(理)가 있었다. 기(氣)는 물질성을 뜻한다. 기는 하나이지만 음, 양으로 나뉘기도 하고 금목수화토의 오행으로 나뉘기도 한다. 성리학을 다른 말로 주자학이라 한다. 이 학문은 성선설의 학문이다. 


주자학은 인간이 악한 것은 기(氣) 때문이라고 본다. 기에는 좋은 기와 좋지 않은 기가 있다. 밝은 기는 원래의 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만 탁한 기는 리를 흐리게 한다. 상승형 성선설을 사회제도적으로 뒷받침한 것이 과거(過擧)라는 장치다. 주자학적 사회는 체현(體現)된 리의 많고 적음이라는 위계질서로 인간을 측정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을 수직적인 잣대로 점수 매기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는 대학, 학군, 연봉, 주거(住居) 공간의 평수 등 숱한 서열화에 열심인 나라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는 한국인의 깊고 깊은 정(情)의 세계는 주로 기의 세계에서의 일로 그 배후에 지극히 준엄한 리의 세계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정치의 세계, 역사의 세계, 학문의 세계, 혈통이나 학통의 세계 등 여행자가 들어갈 수 없는 리의 세계에는 엄격하고 굳건한 질서 의식이 존재한다. 리의 공간과 기의 공간이 있다. 가령 선생님과 식사를 하는 자리는 리의 공간, 친구들끼리 술을 마시는 자리는 기의 공간이다. 전자는 흐트러져서는 안 되는 자리이고 후자는 감정이 자유로운 자리다. 리(理)만의 사람도, 기(氣)만의 사람도 없다. 지식인이기만 한 사람도 없고 대중이기만 한 사람도 없다는 말이 생각난다. 


리의 공간과 기의 공간의 총체가 한국 사회다. 리의 공간에도 기가 있고 기의 공간에도 리가 있다. 한국은 하나의 철학(제목)이라 규정한 저자는 한국은 복수(複數)이지만 유일한 리에 귀의한다는 점에서 한국은 하나의 리이고 하나의 극장이라 말한다. 한국에서 기를 소리 높여 주장하는 사람들도 실은 모두 그 기를 지배하는 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민족 정기, 풍수지리 같은 기의 논리는 사실 기의 구조, 질서, 원리, 도덕성 즉 리를 말하는 것이다. 풍수지리는 기 자체가 아니라 기의 흐름과 힘의 질서 즉 리를 논하는 것이다. 지기(地氣)가 아닌 지리(地理)인 것이다.


 ‘플라톤과 다르게 형상을 구현하고 있는 세상을 이야기한 아리스토텔레스‘(이정우 지음 ’가로지르기‘ 191 페이지)란 말이 생각난다. 저자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리는 보편적 도덕성인데 왜 수직적 질서(차별적 계층성)를 만들며 기는 청탁(淸濁)이라는 차별적 성질을 지니는데 왜 관용이라는 수평적 세계를 형성하는가?란 물음이다.(81 페이지) 관용과 관련하여 기의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사람들은 표정을 풀고 틈을 보이며 서로 용서하는 얼굴이 된다(71 페이지)란 글을 참고하면 좋다. 리는 모든 존재에 보편적으로 동등하게 부여되어 있지만 원래 그것은 계층적, 차별적인 구조물로서 있는 것이다. 이일분수(理一分殊)란 말이 생각난다. 이치는 하나이지만 그 나뉨은 다양하다란 의미의 말이다. 


저자는 주자학이 한국인으로 하여금 리를 선호하게 한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성향이 주자학에 열광하게 만든 것이라 말한다. 균열(전쟁, 위기 등) 상황이 리 즉 질서를 추구하게 한 것이란 말이 저자의 지론이다. 성리학은 성선설의 입장으로 성(性) 즉 본성을 강(江)에 비유하곤 한다. 성은 본래 물처럼 맑았는데 탁한 곳을 흐르면 더러워진다.(95 페이지) 한국 요리는 궁정, 양반의 리의 요리와 서민의 기의 음식으로 나뉜다. 리의 요리는 모두 소재 = 기의 논리로 이루어져 있다. 리의 요리는 우주, 자연의 대질서와 인간 몸의 소질서를 우주, 인간, 요리의 동형성에 근거하여 매개한다. 그렇기에 리의 요리는 리의 태도로 먹어야 한다. 리의 태도란 곧 예(禮)를 말한다. 


주자는 예를 천리의 절문(節文; 하늘의 질서가 분절된 질서의 무늬)으로 보았다. 기의 음식은 정념(情念)의 밥이다. 삶을 향한 서민의 에너지가 응축된 음식물이다. 리의 요리가 결코 맵지 않은 것과 대조적으로 기의 음식에는 거친 기가 용솟음쳐서 맛이 맵고 짜고 뜨겁고 진하다.(108 페이지) 기의 음식은 기의 태도로 먹어야 한다. 기의 태도란 곧 자유분방함을 말한다. 리의 음식은 리의 태도로, 기의 음식은 기의 태도로 먹어야 한다. 조선 시대에는 신분에 의해 요리의 가짓수가 정해져 있었다. 왕의 수라상은 5즙, 12채, 그 내용도 엄격하게 정해져 있고 오행의 오색을 조화시키는 등 소재에도 정연한 우주적 질서를 반영시켰다.


한국에서 이판승은 좋은 승려, 사판승은 나쁜 승려라는 이미지는 뿌리 깊다. 저자는 기독교도 리의 기독교와 기의 기독교로 나눈다. 전래 당시 지식인들이 믿었던 기독교를 리의 기독교, 서민들이 믿었던 기독교를 기의 기독교로 본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1) 양반 = 도덕 + 권력 + 부, 2) 사대부 = 도덕 + 권력, 3) 선비 = 도덕으로 구분한다. 3위 일체인 1)은 어렵다. 도덕은 권력 + 부와 결합하는 순간 부도덕(비리; 非理)으로 쉽게 전락하기 때문이다. 


사대부나 선비는 항상 과거 시험에 대해 비판을 했다. 과거가 응시자의 현실 타파를 지향하는 도덕적 잠재력 내지 도덕적 달성을 테스트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추종만을 양산해내는 사장지학(詞章之學)을 일삼는다고 하는, 과거의 공리주의적 성격에 대한 비판이다. 선비는 학문이 있으면서 벼슬하지 않은 사람을 말한다. 양반, 사대부, 선비는 모두 주자학의 틀 안에 있었지만 주자학에 대한 해석을 달리 했다. 야당인 사대부는 여당인 양반의 도덕을 공격했다. 핵심 권력과 손을 잡은 사대부는 쉽게 귀족화, 보수화했다. 선비는 이 소용돌이 속에서 항상 핵심 권력의 밖에 몸을 두고 양반과 사대부의 도덕을 싸잡아 공격했다.


한국인은 강렬한 상승 지향을 양식으로 삼아서 살아가지만 이 나라에 하강 지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유학자의 세계에는 재야로 내려간다는 인생철학이 있었고 그것을 자랑스럽게도 생각하였다. 실제로 재야로 내려가서 고상하고 멋있게 산 문인도 많다. 이것들은 모두 상승하는 하강이다. 단순한 하강이 아니라 리가 있는 하강, 리를 향한 하강이다. 아버지는 한국에서 전형적인 리의 존재이고 어머니는 한국에서 전형적인 기의 존재다. 아버지는 수직적 질서의 유지자이고 어머니는 수평적 질서의 유지자이다. 


한국의 가족에는 리의 가족과 기의 가족이 있다. 리의 가족이란 피의 질서와 규정에 근거한 족보상의 가족, 기의 가족이란 피의 질서를 넘은 정으로 결합된 가족이다. 주자학적 전통에서 중심은 왕이나 황제가 아니라 리다. 왕은 리에 합치되는 때만 왕이기에 리를 장악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대부에 비하면 그 힘은 오히려 미약하기까지 했다. 왕은 리에 합치되지 않으면 쫓겨날 수도 있었다. 


화폐가 사물로부터 초월해 있으면서 사물에 가치를 부여하고 사물에 깃드는 것처럼 리도 사물로부터 초월해 있으면서 사물에 가치를 부여하고 사물에 깃들어 있다. 한국에서 페미니즘이란 주자학적 보편 운동 중 하나이다. 그것은 여성이라는 새로운 도덕적 주체 즉 리의 담당자를 사회에 등록 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여성을 기 진영의 존재로 폭력적으로 규정하고 리 진영의 존재인 남자에게 지배되어야 한다고 하는 유교적 위계질서에 대해 여성은 기 진영의 존재가 아니며 여성도 리를 드러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한국의 페미니즘이다.


리와 기의 개념으로 한국 사회를 분석한 오구라 기조의 책은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일본이 조선을 병합한 것에 대한 해석은 저자의 문제의식을 비판적으로 보게 한다. 즉 일본을 새로운 리의 담지자로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변혁과 개혁에 매진한 조선인들도 많았다며 이들 친일파가 지금 완전히 부정되거나 무시되는 것은 오늘날 한국인을 지배하는 민족주의적 리 때문인 바 언젠가 이 민족주의적 리가 변혁되면 식민지 시대에 대한 시각도 변할 수 있을 것이라 결론지은 것은 아쉽다. 저자는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하고 이전까지의 리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새로운 리에 의해 조선 사회를 변혁시키려 했다고 말한다. 


일본은 정말로 새로운 리에 의해 조선 사회를 변혁시키려 했는가? 그들이 조선을 침략, 식민지화한 것은 조선의 많은 자원, 식량, 노동력을 취하고 동원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를 하나의 리를 새로운 리로 대체(代替)하는 차원으로만 보면 역사의 무대를 물들인 조선인들의 고통, 희생, 피억압의 실상은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철학의 한계인지 오구라 기조라는 일본 지식인의 한계인지 잘 모르겠다. 일본이 2차 대전 패전과 함께 자국에 진주한 맥아더 군대를 죽창 들고 때려죽이자고 하다가 맥아더를 칭송하고 납작 엎드린 것처럼 우리도 그랬어야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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