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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당화 그늘
  • 구석구석 북녘 탐방 : 강원도, 함경남북도, 라선특별시...
  • 김이경
  • 23,400원 (10%1,300)
  • 2022-10-20
  • : 310

김이경의 ‘구석구석 북녘 탐방‘(2022년 10월 출간)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통일연대 사무처장으로 북한을 드나든 저자가 쓴 북한 탐방기이다. 강원도, 함경남북도, 라선특별시를 담았다. 저자는 내년(2023년)쯤에는 백두산, 자강도, 평안남북도까지 쓸 것이라는 말을 했으나 2024년 4월 현재 나오지 않았다. 강원도편에서 우리는 북으로 가는 길이 파주를 지나 개성으로 가는 길, 고성을 지나 금강산으로 가는 길 외에 연천을 통해 원산으로 가는 길 등 세 가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연천에는 급수탑이 있다. 증기기관차가 물을 채우는 사이에 승객들은 기차 밖으로 나와 가락국수도 사 먹었고 원산에서 가져온 건어물을 사고 파는 시장이 생기기도 했다. 


연천에서 평강을 논하는 것은 그곳이 한탄강 용암대지를 이룬 용암의 시발점이 있는 오리산을 포함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고구려시대에는 어기내, 후기 신라시대에는 광평이었다가 고려 이후 평강이라고 부르는 지역이다. 오리산과 함께 거론되는 검불랑(劍不浪)은 칼이 나빠 왕건에게 졌다고 생각한 궁예가 칼을 강에 버렸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세포군 끝에 752미터의 추가령 고개가 있다. 고개 기슭에 흐르는 물은 안변군 남대천이 되어 동해로 흐르고 남쪽 기슭에서 흐르는 고미탄천은 임진강 상류가 된다. 추가령 고개를 지나면 25km의 삼방협곡이다. 삼방이라는 이름은 고려 시대 골짜기에 세 개의 초소를 설치하고 삼방관으로 부른 데서 유래한다. 삼방협곡 골짜기 아래쪽은 폭이 좁고 좌우측은 급경사면을 이룬다. 이 통로를 따라 옛 경원선 철도와 도로가 지난다. 


철령은 한 사람이 만 사람을 막을 수 있는 무쇠대문이라는 의미의 철관(鐵關)이 있는 고개라는 의미다. 중부와 관북을 연결하는 교통, 군사상의 중요한 고개였지만 추가령 구조곡을 통해 경원선이 들어선 후 교통로의 가치가 감소했다. 안변은 남북 공동 연어 방류지역이다. 안변군에는 북이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 초까지 혹독한 경제난을 겪으면서 건설한 안변 청년발전소가 있다. 1990년대 중반, 북의 최악의 경제난은 안변 청년발전소에서 보여준 혁명적 군인정신을 온 인민이 본받으며 극복의 실마리가 풀려나갔다. 통천군은 금강산 바로 위에 있다.


시중호 주변 소나무 숲을 따라 남쪽으로 7km 정도 내려가면 동해의 명승 총석정(叢石亭)이 나온다. 1,000미터 구간에 늘어선 6각, 8각의 좌총(坐叢), 입총(立叢), 와총(臥叢)을 빠짐없이 보려면 총석정 정각에 오르는 것도 좋지만 배를 타고 돌아보아야 제맛이 난다. 강원도와 경기도는 남에도 속하고 북에도 속했는데(분단되었는데) 북에서 경기도를 황해남도와 황해북도에 포함시켜 현재 강원도만 남과 북에 유일하게 있다. 일례로 한국전쟁 전 개성은 남한 경기도에 속해 있었으나 전쟁 후 북한 황해북도에 속하게 되었다. 북한 강원도의 도청 소재지인 원산은 천혜의 항구 도시다. 원산이란 으뜸 가는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처져 있다는 의미다. 원상 앞바다는 푸에블로호 사건이 일어난 지역이다. 


1968년 1월 23일 해상 순찰 임무를 수행하던 조선해군 함정이 원산 려도 근처에서 1,000여톤급 미국 함대를 나포하고 선원 82명을 체포한 사건이다. 푸에블로호는 소련, 중국, 북한 등의 해양에 접근하여 정보를 수집하는 정보수집선이었다. 함경남도 금야군(金野郡)은 고려시대 천리장성의 끝지점에 속하는 곳이다. 1258년 몽골에 점령당해 쌍성총관부가 설치되었다. 공민왕 때 수복해 화령부라고 불렀다. 영흥본궁이 있다. 태조 이성계가 태어난 곳이다. 이성계가 조선의 국호를 이곳의 이름을 따 화령으로 하는 것을 감안했다. 이성계는 화령에서 태어나 조선을 건국할 때까지 함흥에서 살았다.


1950년 10월 장진호 전투에서 패한 미군의 흥남 철수가 시작된 흥남은 유명하다. 함흥에 도착했지만 중국군이 이미 원산을 장악하고 있었다. 탈출로는 바다 밖에 없었다. 오판으로 패해 철수하게 된 맥아더는 원폭 투하를 계획했다. 당시 원폭 투하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주민들은 앉아서 죽으나 가다가 죽으나 마찬가지였다. 최선은 미군 가까이에 있는 것이었다. 1945년 일제가 물러나자 중국에서는 장제스의 국민당과 마오쩌둥의 공산당 사이에 본격적인 내전이 시작되었다.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장제스 군대는 만만치 않았다. 북도 건국 과정에 있었기에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컸다. 


하지만 김일성은 북의 우수한 지휘관들을 중국 동북지방으로 파견하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김일성의 지침에 따라 중국 전장으로 떠난 조선인 병력은 25만여명에 달했다. 당시 북이 보유하던 식량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는 중국의 오성홍기에는 조선 공산주의자들의 피가 스며 있다고 말했다. 함흥을 도시로 키운 젖줄이 성천강이다. 성천강을 따라 함흥 중심가로 올라가면 함흥본궁이 나온다. 이성계가 청년 시절 살던 집이다. 함흥본궁은 지금은 함흥역사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북청은 발해 5경 중 하나인 남경 지역으로 한반도에서 발해 유적이 가장 많은 곳이다. 


한반도 중북부의 만주에서 당나라를 몰아내고 고구려의 광대한 영토를 회복한 발해는 고구려의 민족사적 정통성을 이는 나라다. 남북국시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추세가 늘고 있지만 여전히 공식 견해는 통일신라시대다. 단천은 세계적인 지하자원의 보고(寶庫)다. 한반도에 분포된 거의 모든 지층이 모여 있고 지각운동의 결과 서로 다른 지질시대의 여러 가지 조성을 가진 관입암들과 분출암들이 많은 광상을 이루어 놓은 덕분이다. 길주군은 고려 예종 때 윤관이 여진족을 몰아내고 쌓은 9성 중 하나이고 세조 13년 이시애가 반란을 일으킨 곳이다. 


길주군 풍계리에 있던 핵실험장은 2018년 5월 2일 외국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갱도 폭파 방식으로 폐기되었다. 2000년 함경북도 화대군 석성리에서 세계 최초로 화산 용암 속에 완전히 묻힌 인류화석을 발굴되었다. 어머니가 두 자식과 함께 흐르는 용암 속에 묻히는 재난을 당한 화석으로 30만년전 것으로 추정된다. 함경북도 명천군 칠보산은 화산에 의한 단층 활동으로 생겨난 산이다. 옆으로 김책에서 어랑까지 110km에 이르는 길주 ? 명천 지구대가 있다. 함경북도 경성군의 가장 서쪽에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높은 관모봉(2, 541m)이 있다. (한라산은 59번째로 높은 산이다.) 


관모봉(冠帽峰)은 6월에야 눈이 녹고 8월이 넘으면 다시 눈으로 덮여 마치 하얀 관을 쓴 것 같아서 붙은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빙하침식곡을 볼 수 있다. 김정호는 대동여지도에서 관모봉을 장백산으로 표기했다. 함경북도 온성군은 한반도의 최북단 지역이다. 평양에서 온성까지 직선 거리로 대략 560km다. 온성은 고조선, 고구려, 발해의 땅으로 여진족이 함께 살던 지역이다. 온성이라는 지명은 성을 축조하여 외적을 막는 평온한 땅이 되었다는 의미다. 


회령시는 함경북도의 서북쪽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길림성 용정시 삼합진과 마주보는 국경도시다. 라선특별시는 중국 훈춘, 러시아 핫산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교통과 물류의 요충지일뿐 아니라 부동항인 라진항이 있는 경제무역도시다. 북은 2018년 람사르 협약에 가입하면서 평안남도 청천강, 대령강 하류구의 문덕철새보호구와 라선철새보호구를 람사르 습지에 등록했다. 


두만강역에서 서번포호수를 끼고 두만강 하구 쪽으로 가면 언덕배기 산이 나오는데 이 언덕이 조산(造山)이다. 이 언덕에 이순신 장군의 승전을 기리는 승전대비와 승전대 건물이 있다. 남쪽 바다에서 활약한 이순신 장군 기념비가 북쪽 최북단에 있는 것이 의아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9년전인 1583년 10월 38세의 이순신은 함경북도 경원에서 남쪽으로 16km쯤 떨어진 건원보의 권관으로 부임했다. 여진족이 백성을 해치고 재물을 약탈하는 일이 수시로 일어났는데 이순신은 우두머리인 울지내를 유인하는 계책으로 여진족을 토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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