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
오강남, 성소은(지은이), 최진영(그림) 판미동 刊
소는 마음공부를 하는 분들에게는 친숙한 상징입니다. 힌두교에서는 신의 화신(化神)으로 숭상되기도 하고, 고대 이집트에서도 소를 태양신의 현신(現身)으로 보았습니다. 선(禪)을 닦는 분들에게도 수행의 과정을 드러내 보여주는 비유에 많이 쓰이는 대상입니다.
선가(禪家)에서는 인간의 본성을 찾아 수행하는 단계를 동자(童子)나 스님이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해서 묘사합니다. 이를 『십우도(十牛圖)』라고 합니다. 중국 송나라 때의 곽암사원(廓庵師遠)선사가 지은 선서(禪書)로 선(禪)을 닦아 본래 마음을 찾아가는 순서를 밝힌 책입니다.
우리의 자성(自性), 불성(佛性), 영성(靈性)을 소에 비유하여, 마음을 찾아 깨치는 단계를 열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열 가지 단계는 심우(尋牛), 견적(見跡), 견우(見牛), 득우(得牛), 목우(牧牛), 기우귀가(騎牛歸家), 망우존인(忘牛存人), 인우구망(人牛俱忘), 반본환원(返本還源), 입전수수(入垂手)로 되어 있습니다.
소를 활용해 선을 설명한 또 다른 책으로는 한참 뒤인 명나라 때 보명 화상이 지은 『목우십도송』이 있습니다. 그 형식이 거의 비슷한데 곽암의 십우도가 본성을 찾아 이를 바탕으로 다시 세상에 뛰어드는 장면인 ‘입전수수’에서 마무리 된다면 보명의 목우십도송은 대상이 끊어지고 하나가 된 상태인 ‘쌍민(雙泯)’으로 마무리 됩니다.
선종의 전통이 성성하게 살아있는 국내에서는 ‘십우도’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원불교에서는 ‘목우십도송’을 채택해서 공부를 합니다. 이는 열 가지 수행의 과정을 돈오점수적 또는 묵조선(묵묵히 앉아 있는 곳에 스스로 깨달음이 나타난다는 선의 관점)적인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곽암의 ‘십우도’는 돈오돈수적 입장에서 소는 인간에게 주어진 본래의 마음이므로 별도의 수행 없이 자각하기만 하면 되는 소입니다. ‘목우십도송’에서 소를 길들이기 위한 고삐와 회초리가 동원되지만 ‘십우도’에서는 그것이 크게 필요하지 않으며, 소는 그저 목동에게 자신을 맡겨도 저절로 돌아왔던 마음의 고향에까지 이를 수 있다고 그려집니다.
이 ‘십우도’는 좌선의 매뉴얼이라고 볼 수 있는 『좌선의(坐禪儀)』, 선(禪)의 요체를 담은 『신심명(信心銘)』 ․ 『증도가(證道歌)』과 함께 ‘선종사부록(禪宗四部錄)’으로 불리며 지금까지도 선 수행자의 사랑을 받고 있는 책입니다.
십우도는 그림과 함께 함축적인 게송을 담고 있는 책으로 어지간한 내공으로 풀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행히 이번에 국내에서 가장 많이 읽힌 한글 『도덕경』 및 『예수는 없다』와 같은 무수한 저서, ‘종교의 표층과 심층’ 논의 등으로 많은 교무님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신 오강남 교수님과 예수의 말씀을 찾아 순복음교회와 성공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출가를 감행해 선수행자로 불조(佛祖)의 화두를 참구하기도 했던 성소은 선생님(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 운영위원장)이 『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이 출간했습니다.
특정한 종교적 전통에 의지하지 않지만 영성적인(Not Religious, But Spiritual)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이 책은 몇 가지 미덕을 갖추고 있습니다. 우선 원문과 한글 ․ 영어 번역을 동시에 실어 기존의 해석을 과하게 뛰어넘지 않고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또 하나는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십우도 삽화가 책 읽는 맛을 더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한 단락을 마무리하고 거기에 해당되는 서적 두세 권을 동시에 소개해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여러 권의 독서를 한 번에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첫 단락인 ‘심우尋牛’에서는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와 오강남 『예수는 없다』를 동시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주인공 ‘소’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본래 내 안에 있었지만 나의 무명(無明)과 미망(迷妄)에 의해 지금껏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온 나의 무한한 가능성이다. 이 무명과 망상의 어둠을 뚫고 새로운 나를 찾으려 발돋움하는 것이 바로 첫째 그림 심우(尋牛), 곧 ‘소를 찾아 나섬’이다. 물론 이 소는 사람에 따라, 혹은 그 사람의 사정이나 시기에 따라 다른 여러 가지를 상징할 수 있다. 독자는 각자 자기가 찾아 개발하고자 하는 그 무엇을 소로 상정하고 그것을 찾아 나선다고 상상하면 좋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한 마리의 소입니다. 산으로 들로 헤매고 다니다가 목동을 만나게 됩니다. 이 목동은 가족일 수도, 스승일 수도, 동료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자에서 만나게 될 무수한 사람들 그리고 무수한 경계들일 것입니다. 아니, 결국 나 자신일 것입니다. 다만 열 가지의 장면으로 담아내기 어려운 수백 수천 수만의 장면들이 소와 목동이 펼치는 한 바탕의 연극으로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펼쳐질 것입니다. 이 길의 위에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하게 될까요?
“삶의 어느 지점이 ‘다 이룬’ 목적지가 될 수 있을까? 삶은 통째로 여정(旅程)일 뿐이다. 가면서 배우고, 배우며 기쁨을 맛보고, 나눔으로 배움의 가치가 더해 가는 변화의 과정이다. 내가 하는 나를 위한 공부에는 오직 하나, ‘믿음직한 나’ 하나 있으면 족하다. 든든한 나는 샘솟는 힘의 원천인 ‘얼나’다. 얼나와의 조우를 기대하며 각자 길을 찾고, 스승을 찾아, 자기 길을 가는 거다.”
독자 여러분은 지금 여기, 어느 길로 가시렵니까? 그 길 위에 이 한 권의 책을 벗으로 권해 봅니다.